기고> 아베정권의 적반하장

김선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고문〉

124
김선호 편집에디터
김선호 편집에디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이 엉뚱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전면전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그 사건의 중심에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이 있다. 당시 13~15살 어린 소녀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으로 끌려가 1년 이상 노동을 착취당하고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광복 후에는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받아 일생을 숨어 살다시피 했다. 그런 아픈 세월 끝에, 1999년 3월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연거푸 패소하고 말았다. 10년 동안의 기나긴 싸움 끝에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도 최종 기각 당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그동안 일본 법원을 통해 수십 차례 권리구제와 명예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고, 급기야 한국 법원을 통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비인도적 불법행위인 강제동원이 시작된 현장이 바로 한반도에서부터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에 동원된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엔 일본제철에 동원된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2심 패소한 이들 사건은 2012년 5월 24일 분기점이 마련됐다.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해 일본기업이 배상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다시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우리 법원을 통한 권리구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각각 최종 승소하기까지는 6년여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애초 소송이 시작된 2000년으로부터는 장장 19년여의 세월이었다. 그 가운데 박근혜와 양승태의 사법거래가 있었다.

2009년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은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명목으로 99엔을 지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천 원 정도다. 반성도 부족해 사람을 이렇게까지 우롱할 수 있느냐는 원성이 빗발쳤지만, 일본정부가 지급한 99엔은 그 자체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무상 3억불을 경제협력자금으로 한국정부에 제공한 바 있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뒤늦게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65년 한국과 맺은 합의를 어겼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한번 돌이켜 보자. 만약 65년에 무상 3억불을 제공한 것으로 모든 권리문제가 끝났다면, 99엔을 지급한 근거는 무엇인가? 당시 후생연금 탈퇴수당만 빼 놓기로 한 것인가?

대법원 판결은 이와 관련해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명확히 지적한 바 있다.

같은 전범 국가이지만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은 사뭇 다르다. 전범 국가였던 독일은 피해국에 이미 80조원 이상을 배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사실이 밝혀지면 배상한다. 그런데 아베정권은 우리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유로 엉뚱한 경제보복 카드를 내밀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말 그대로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일제는 우리를 35년 이상 식민지로 삼고 우리의 선열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괴롭혀 왔다. 그로 인한 인적, 물적 수탈은 이루 형언할 수조차 없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도 또한 따지고 보면 일제의 침략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정중히 요구한다. 사죄하고 배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