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어머니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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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사진작가 문월식 제공) 편집에디터
어머니(사진작가 문월식 제공) 편집에디터

모욕적인 이름 씨받이

‘내가 사니 상투가 있나 죽으믄 무덤이 있나.’ 상투가 남근을 상징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아들이 없다는 뜻이다. 술만 먹으면 푸념을 늘어놓던 남편에게 대를 잇게 하는 특단의 조처를 강구한다. 후처를 보게 하는 것. 홍역으로 작은 아들을 보내고 사라호 태풍으로 남은 아들마저 보낸 본처 막이의 결정이었다. 당시 스물 네 살이던 후처 춘희를 들이고 나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10년 후 남편은 세상을 떴지만 한 영감의 두 마누라 동거는 평생으로 이어진다. 한 지붕 두 아내(MBC 스페셜 다큐멘터리, 감독 박혁지, 2015) 얘기다. 다큐는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까지 씨받이는 흔한 일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 돌아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자막처럼 씨받이가 그렇게 흔한 일이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씨받이는 작물의 씨를 거두어 받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종자 개량 혹은 번식을 위해 생식세포를 받는 짐승을 말한다. 사람에게 사용하면 아주 모욕적인 호칭이란 점 알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나서 여성의 난자를 사용하여 인공 수정하는 사례들이 늘었다. 범칭 대리모에 속한다. 씨받이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고 공히 윤리적 논란을 안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모욕적인 호칭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통해 대를 잇는 남성 가부장 제도였다는 점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아들을 강요했던 것일까.

씨받이로 이어진 경주이씨 3대의 3세기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중략). 스물 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하략).” 그 유명한 미당의 자화상이다. 미당의 애비는 인촌집안의 마름이었다. 친일행적과 친군부 행적 때문에 언급 자체가 난처하지만 내 출생을 말할 때 가끔 인용하는 시구이기도 하다. 내 아버지 또한 종이었다. 숱한 종살이를 마치고 어렵게 매입한 산자락 귀퉁이를 뜯어 사래긴 아홉배미 서마지기 논을 만들었다. 순전히 곡괭이와 삽으로 일군 산전답(山田畓)은 어른 키를 반 곱이나 더해야 윗 옹타리로 이어졌다. 먹을 것 없어 단지에 송쿠(松皮, 소나무의 속껍질)죽 쒀서 일군 농토다. 빠듯하지만 살림을 펴고 보니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나를 키운 어머니, 곧 아버지의 본처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른바 석녀(石女)였기 때문이다. 조상제사를 위해 조카를 양자 들였다. 하지만 양에 차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백방으로 수속해 씨받이를 얻었고 종내는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 나이 예순여섯 때의 일이다. 모욕적인 이름을 얻었던 나의 생모는 어쨌는가? 혼인 후 얼마 있지 않아 지병 앓던 남편을 잃었다. 올망졸망 아들 둘 딸 둘을 먹여 살릴 재간이 없었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단 속담(항문 미잘이 잘 빠져 고생하던 사람들이 있었다)이 엄살이 아니었다. 두 딸은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식모로 보내고 작은 아이는 고아원(목포 공생원)으로 보냈다. 큰 아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려웠다. 아들 낳아주면 밭뙈기를 떼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에 응했다. 내가 세상에 나오게 된 내력이다. 1898년생 아버지를 거쳐 내가 태어났고 내 둘째 아이가 2000년생이니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3대가 3세기에 걸쳐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원하시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경주이씨 익재공파 41세손, 남자들의 순열로 이루어진 항렬에 대를 잇는 계보를 만드셨으니 족한 일이었던가. 종이셨던 아버지의 위패는 여전히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으로 남아있는데.

행간과 여백을 읽을 이유,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간 사람들

빛도 이름도 없이 살다 가신 이가 어찌 아버지뿐이랴. 씨받이로 오신 나의 어머니는 쓰여진 글에도 그려진 그림에도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내 아버지가 그렇게 갈망하시던, 그래서 예순여섯에야 핏덩이 생명으로 나를 보실 수 있었던 경주이씨 익재공파 가승보(家乘譜)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2년여 전 이 칼럼을 통해 진도지역 호명방식 ‘바-‘와 ‘다니’를 소개한 바 있다. 관련되는 정보를 다시 인용한다. 바-‘는 남자 아이를 태어난 순서대로 부르는 호칭이다. 첫째 아들은 무조건 ‘큰놈’이다. 둘째는 ‘두바’라고도 한다. 셋째 아들을 낳게 되면 ‘시바’가 되고 둘째는 ‘간뎃놈’ 혹은 ‘작은놈’으로 호칭이 바뀐다. 자연스럽게 ‘니바’, ‘오바’, ‘육바’, ‘칠바’, ‘팔바’로 호칭된다.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첫째 딸은 그저 ‘큰년’ 혹은 ‘큰가’, ‘큰가이나(큰가시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딸은 ‘간뎃년’ 혹은 ‘작은년’ 아니면 ‘장가’, ‘장가이나(장가시나)’라고 불렀다. 셋째 딸은 거의가 ‘시다니’, 넷째 딸은 ‘니다니’라고 불렀다. 다섯 째 딸을 ‘오다니’나 ‘다섯다니’라고 부르는 예는 내가 들은 바 없다. 남자 아이들이 칠바, 팔바까지 불린 것에 비하면 여자 아이들은 ‘시다니’, ‘니다니’가 가장 많았다. 왜 그런지는 밝혀지지도 않았고 연구된 바도 없다. ‘바-‘와 마찬가지로 읍에서 출생한 아이를 ‘골다니’라고 부르는 예가 있다. 읍(邑)이 ‘고을’인 까닭에 붙여진 호칭이다. 어머니가 소포리 출신이면 ‘소개(소포)다니’가 된다. 남자 아이면 물론 ‘소개바’가 된다. 전경수는 이를 종지명제(從地名制, geononymy)가 적용된 사례로 해석했다. 다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보이는 ‘택호(宅號)’라는 뜻이다. 최근 안동연의 연구에 의하면 이름의 본질은 소리와 글자의 에너지라고 한다(안동연, 과학과 의학으로 밝혀본 이름의 힘, 도서출판 타래). 이름의 목표는 인체 에너지의 부조화를 해결해서 건강한 삶을 갖도록 해준다는 것. 이를 과학적으로 해명해낸 셈인데, 이름이 한 사람의 정체를 나타낸다는 점 재론의 여지가 없다. 왜 여기서 택호 방식의 이름 짓기를 문제 삼아야 하는가? 씨받이로 나를 낳으신 내 어머니와 그 어머니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을 문제 삼아야 하는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어 기왕의 주류사가 기록하지 않았던 그러나 이 땅의 기층이고 기반이었던 이들의 역사를 왜 드러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의심한다. 그들의 이름을 온전히 불러주지 않고서 어찌 젠더를 말하며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로소 불러 꽃이 된 이름, 어머니

이년 전 이맘때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나를 낳아주신 생모다. 이듬해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 2018)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아들자식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예순 여섯의 내 아버지에게 씨받이로 오신 분이다. 음력 5월 24일 유시, 내 생일날이자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간이었다. 자미원의 궁문을 열어 나를 이 땅에 내려놓으신 그 날 그 시에 어머니가 운명하시니 참 기묘한 일이라 생각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들른 고향땅 선산의 맹감이 주렁주렁 지천이었다. 유골함을 놓을 자리 흙 향이 어찌나 좋던지.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보다 왔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에게 이 글을 바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재생과 부활 그 거듭남을 묵상하며 애달픈 내 사랑을 어머니께 보낸다.” 진도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윷놀이 등 진도상장례가 총체적 축제이며 재생관념을 내포한 의례임을 밝히기 위해서 쓴 책이다. 단순히 의례만을 소개하거나 해석한 것이 아니라 행간과 여백에는 재생과 부활의 맥락들을 가득 담아뒀다. 어머니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100회째 칼럼에 어머니에 대해 언급해둔 바 있다. 내 어머니처럼 행간과 여백 안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온전히 소환하는 게 휴머니즘으로서의 인문학에 합당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놈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혈족간의 유연관계를 연구하는 데는 세포핵의 DNA보다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난자를 통해서만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무슨 뜻인가? 생물학적 DNA를 따져 묻는 것이라면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혈족들이 자손을 확인하는 데 더 유효하다는 뜻이다. 김춘수의 꽃을 인용해 오늘 얘기를 마치고자 한다. 통상 이 시가 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합당한 이름을 주는 것이다. 비로소 불러 꽃이 된 이름, 어머니를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남도인문학팁

어머니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자녀를 소생하지 않았거나 입양시킨 자녀라도 슬하에 두지 않고는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리지 않는다 했다. 틀린 해석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소생한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호칭이다. 일반적인 사전적 해석은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 풀이해뒀다. 남도지역에서는 어무이, 어무니, 엄니 등으로 호칭하는데 내 고향에서는 ‘엄매’ 혹은 ‘엄메’라 호칭했다. 경상, 전남, 평안지역의 방언이다. 다른 풀이로는 자녀를 둔 여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 했다. 또 자기를 낳아 준 여성처럼 삼은 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 했다. 사랑으로 뒷바라지하여 주고 걱정하여 주는 존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보다 무엇이 배태되어 생겨나게 된 근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일 것이다. 다른 지역 방언으로는 어마씨, 어멍, 엄머이, 오마니, 오마씨, 오마이, 오모니, 오매, 우매, 제마, 옴마이 등이 있다. 은어로는 암꼰대라고도 한다. 자당, 가모, 자친 등도 모두 어머니의 이칭이다.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로 선대부인, 자당(慈堂), 대부인, 모당, 모부인, 모주, 북당, 영당, 영모, 존당, 훤당 등이 있다. 어머니가 내 태어난 날 태어난 바로 그 시각에 돌아가시면서 원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온전히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신건 아니었을까. 모욕적인 이름 씨받이라니. 심지어 족보에도 올라가지 않는 그 이름말이다. 흔히 서양에서 혼인 후 여성이 남편 성(姓)으로 바꾸는데 우리는 성을 바꾸지 않아 여성존중이라 얘기한다. 언어도단이다. 역설적으로 여성이란 이름 혹은 어머니란 이름은 성을 바꿀 필요도 없는 존재였을 수 있다. 내가 장년으로 성장하도록 어머니는 자식인 나와도 한 상에서 식사하지 못하셨다. 수많은 의례들에 스며든 남존(男尊)의 방식은 이루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다만 바란다. 현존하는 방식들에 대한 성찰과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구습들을 전복할 수 있기를. 가칭이나 이칭 등의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불러줄 수 있기를.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이름은 진도 쪽골 사람 강유심(姜有心)이다.

어머니(사진작가 문월식 제공)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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