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판결 이행하라”… 도쿄에 울린 일제강제동원 아픔

日본사 방문한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등 “사죄 촉구”
우익 맞불집회에 ‘침착 대응’ 韓 방문단, 日매체 관심
미쓰비시 “청구권 협정으로 마무리됐다” 일관적 답변

136
27일 오전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89)와 한일 시민모임 회원 등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
27일 오전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89)와 한일 시민모임 회원 등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곽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그들이 빼앗긴 것은 노동의 대가뿐만이 아닌 삶 자체였습니다.”

27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는 이날 오전 9시부터 한시간가량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가 열리는 본사 앞에서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법원의 판결에 따른 배상을 촉구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 대해 피해자를 비롯한 시민모임이 미쓰비시 본사를 방문해 촉구 활동을 벌인 것은 지난 2012년 6월 이후 9년 만이고,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일본 기업 배상 책임 판결 이후 처음이었다.

● 한국 방문단 23명·일본 지원회 20여명 참여

“썩은 감자를 넣은 밥이지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하루는 주린 배를 채우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마시다가 반장한테 발로 차였다. 우리는 일본에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89)는 절절하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당시를 증언했다.

이날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를 맞아 진행한 항의 집회에는 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인 원고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해 옛 미쓰비시 광업(현 미쓰비시머트리얼) 동원 피해자의 유가족인 남해운(피해자 故 김영대씨 외조카)씨와 김동준(피해자 김영신씨 손자)씨가 함께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양 할머니는 “여전히 욕이라도 퍼붓고 싶을 만큼 분하고 분통한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본은 하루빨리 사과하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미쓰비시광업 이이즈카 광업소 나마즈타 탄광으로 강제동원됐던 故 김영대씨의 외조카 남해운(51)씨는 “올해 96세인 어머님에겐 여전히 젊은 나이에 모진 고초를 겪고 후손도 남기지 못한 채 돌아가신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한으로 남아있다”며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미쓰비시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어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았지만 미쓰비시 본사 앞에 와서 직접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미쓰비시광업 탄광에 동원됐던 할아버지를 위해 함께한 김동준(36)씨는 “원고 자격인 아버지를 대신해 한 손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서 왔다”며 “미쓰비시가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7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강제동원 피해 문제 항의 집회 현장에서 일본 우익 성향 단체가 한국 방문단에 접근하려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
27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강제동원 피해 문제 항의 집회 현장에서 일본 우익 성향 단체가 한국 방문단에 접근하려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곽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 ‘우익’ 맞불 집회… 침착 대응 충돌 無

이날 항의 방문 현장은 일본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일본 우익 성향 단체의 맞불집회 때문이었다. 수 명의 우익 성향 단체원들은 ‘한일 단교’ 플래카드를 내건 차량을 타고 미쓰비시 본사 앞과 한국 시민모임의 항의 집회 현장을 배회하며 확성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다시는 일본에 오지마라”고 외쳤다.

손팻말을 들고 한국 방문단에 접근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은 일부는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미쓰비시는 강제동원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 일본에 입국금지 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방문단은 일본 우익 단체의 도발에 일절 대응하지 않으며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해서 참가자들을 당부했다. SNS를 통해 미리 예고된 맞불 집회인 만큼 일본 언론 매체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일본 한 언론사 기자는 “최근 한국 정부가 제시한 자발적 기금 마련 방안에 대해 일본이 즉각 거절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일제 강제동원 소송대리인단 이상갑 변호사는 “한일 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이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일제 강제동원 문제의 본질은 1945년 이전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속이거나 강제적인 방법으로 일본에 데려와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는 제외한 상태에서 금전적인 배상 문제로 국한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 여전히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한편 이날 오전 진행된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장에는 일본에서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맡아온 아다치 슈이치(60) 변호사가 참여했다.

슈이치 변호사는 주주총회에서 발언 기회 얻어 “대법원에서 배상하라는 판결도 나왔는데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떤 조건이 마련되면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라고 질문했다.

미쓰비시 측은 “기본입장은 청구권 협정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정부와 연락하면서 적절히 대응해가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4명 정도의 주주들로부터 강제동원 피해 문제와 관련한 발언이 있었지만, 대부분 “타협하지 말라”, “화해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표명이었고 회사는 “화해하면 안 된다는 의견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곽지혜 기자

곽지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