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의 일본

이정희 한국전력 상임감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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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한국전력 상임감사위원 편집에디터
이정희 한국전력 상임감사위원 편집에디터

2011년 3월 11일.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370㎞ 떨어진 바다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사상 최대 규모 9.0의 강진은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파도(쓰나미)를 몰고와 도호쿠 지역을 아비규환 상태로 몰아넣었다. 불행히도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일 후, 일본 열도를 넘어 전 세계를 경악케 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굳건히 쌓아온 일본의 원전 안전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사실상 일본 국토 20%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8년이 지난 올해 5월, 필자는 직접 후쿠시마 원전 현장을 찾아보았다. 도쿄역에서 열차로 2시간 30분, 승용차로 1시간 30분을 더 달려 후쿠시마현 토미오카 소재 동경전력 폐로전시관에 이르러 다시 동경전력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가야 발전소에 도착한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전원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간혹 보이는 제염작업반원들 외에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유령의 마을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검은 자루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는데,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 등을 수거하여 모아 둔 것이라고 했다. 원전 사고의 무서움을 실감케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출입절차부터 모든 것이 아직도 전시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폭발로 천정이 날아가 버린 1호기는 마치 폭격을 맞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수습을 위해 4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사고원전의 핵연료 반출, 제염과 폐기물 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도 오염수가 매일 70톤씩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8년이 지났어도 원전사고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2016년 일본정부는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원전의 폐로 및 제염작업, 피해 배상 등 수습에 필요한 자금규모를 22조엔(약 220조원)으로 추산했다.

사고 이후 원전은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세계 각국 에너지 정책변화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독일, 대만 등의 ‘탈원전’ 선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프랑스와 함께 세계 최대의 원전 보유국이었던 일본은 전체 전력공급량의 28.6%를 차지하던 총 54기의 원전 가동을 멈추었다. 부족해진 전력은 신재생 및 LNG, 석탄발전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전력난 우려 속에서도 일본 국민들의 자발적인 절전이 전력소비량을 오히려 8.7% 감소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국의 원전 찬반 논란은 더욱 치열해지는 경향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지하기로 결정했고, 미국도 신규원전 건설이 중단되고 수익성 하락에 따른 원전 폐쇄 움직임 등을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은 늘어나는 전력수요와 온실가스 대응 방안으로 2016년 13차 5개년 계획에서 원전을 확대키로 했고, 대만도 2018년 ‘탈원전 법조문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59%가 찬성했다. 한편 원전 강국인 프랑스는 당초 202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로 축소키로 했다가 2035년으로 연기하는 등 속도를 조절 중이다. 그 사이 러시아는 차츰 세계 원전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및 신규원전 건설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키로 했다.

그런데 막상 극심한 원전사고의 피해를 겪은 일본은 현재 9기의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었다. 또 야당 및 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제 5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 까지 원전의 비중을 20-22% 까지 유지하기로 발표했다. 최근에는 정부가 직접 원자력 인재 육성에 나섰다고 한다. 기후변화 대응, 전기요금 상승, 에너지 안보, 게다가 중국·러시아 등과의 세계 원전시장 수주경쟁에서 경쟁력 약화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라고 한다.

에너지 정책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찬반이 팽팽히 맞서 있는 우리의 경우, 일본을 비롯하여 에너지 환경이 비슷한 여러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경제성장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환경과 안전의 관점에서 원전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