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심각할수록 해결책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
이순신 장군이 명장인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창의적 솔루션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늘 우리 주위에 있는 반면 해결책은 늘 창의적이지는 않다.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에서 창의적 솔루션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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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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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4년 프러시아에 대흉작이 휩쓸었다. 식량이 부족했기에 감자같은 구황작물을 먹어야 했는데도 사람들은 밀에만 의존했다. 당시 감자는 개, 돼지나 먹는 작물이었다. 심지어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 감자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민중폭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감자를 대체식량으로 할 것을 강제하고 감자 농사를 장려했으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제기랄, 개를 줘도 안먹을 것을 나보고 먹으라고!’ 프리드리히 대제는 전략을 바꾸어 감자는 왕실 야채이고 왕실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왕실 농장에서 감자를 재배하면서 키 큰 근위대가 지키게 했다. 너무 잘 지키지는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왕실 농장에 슬그머니 잠입해 감자를 서리해 먹으면서 마치 자신이 왕족이 된 듯한 플라시보를 느꼈다. 이후 농민들이 왕실 채소인 감자를 몰래 재배하면서 엄청난 지하경제가 생겨났다고 한다. 오늘날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독일인들의 식습관은 이 때 심어졌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국가 절명의 위기에서 현명한 아이디어 하나로 문제점을 해결했다. 그는 마케팅에서 중요하게 활용되는 휴먼 인싸이트, 즉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잘 간파했기에 이런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감자대왕이란 애칭을 가진 그의 묘비에는 아직도 참배객들이 갖다 놓은 감자가 뒹굴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장하면 누구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그렇다. 그는 역사가 증명하는 명장이다. 온갖 모함으로 옥에 갇히고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역경을 이겨낸 그의 불굴의 의지를 우리는 어릴 때 부터 배웠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가 이길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수병과 볼품 없는 무기로 일본과 싸워야 했기에 그는 거북선을 발명했고, 학익진 같은 전술을 구상했다. 그 결과 1597년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의 배 13척으로 일본 수군 333척의 대함대를 격파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한 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은 용맹스런 군인이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전략가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크리에이티브 솔루셔니스트creative solutionist’였다.

 ’크리에이티브 솔루션creative solution’, 즉 창의적인 솔루션이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우리는 매일 문제점에 봉착한다. 크게는 국가나 회사의 경영위기에서 작게는 남은 재료로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줄여 말하면 ‘문제점 봉착-해결책 찾기’의 연쇄고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이 시대에는 문제점의 가짓수도 많아졌지만, 문제점의 구조도 복잡해서 쉽사리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졌다. 농사 지은 쌀로 밥짓고 자급자족하던 단순명료의 시대를 아주 멀리 벗어났다. 정치, 경제, 군사, 환경의 생태계가 전지구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AI의 두뇌를 가진 로보트 때문에 사라질 인간의 직업군에 대한 기사를 늘 접한다. 온통 디스토피아적인 전망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창의적인 솔루션이다. 문제가 크고 복잡할수록 솔루션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언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점과 마주했을 때 창의적 솔루션의 진가는 더욱 크게 부각된다. 식량난으로 국가 전체가 기아에 처할 뻔 했던 시기에, 일본의 막강 군사력으로 자칫 조선이 초토화 될 뻔 했을 시기에 프리드리히 대제와 이순신 장군은 창의적인 솔루션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운명을 바꿨다. 각각 통치자와 군인이라는 리더의 위치에서 그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이후 혁명과 같은 변화를 몰고왔던 것이다. 현시대 전세계의 국가 통치자들, UN과 같은 영향력있는 국제기구들, 그리고 빌게이츠와 같은 세계가 직면한 불행을 해결하려는 지도자들 모두 창의적 솔루션에 전력 투구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궤에 있다.

 그렇기에 정치, 즉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에서 창의적 솔루션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치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정신건강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고 출산율이 제일 낮다는 사실은 현재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도 희망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몇 해째 계속되는 이 현상을 타개할 창의적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국가부도의 위기로 IMF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때 모든 국민은 집단 우울의 시대를 겪었다. 미리 막았거나, 막지 못했으면 재빨리 봉합할 솔루션을 찾아야 했다. 이순신 장군처럼, 프리드리히 대제처럼 창의적으로 나라를 구했어야 했다. 한 마디로 정치가 삐끗하면, 나라가 틀어질 수 있다.

 한국전쟁 69돌을 맞이하는 오늘, 남북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여전히 불투명한 오늘, 해방 후 극도의 혼란기를 말끔히 걷어낼 창의적 솔루션이 있었다면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는, 이어지는 분단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어이없음의 상황을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단일국가 체제를 유지했지만, 왜 한국만이 남북으로 갈라섰을까?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현명한 정치 리더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독립투쟁을 위해 중국을 떠돌던 임시정부 요원의 면면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원했던 것이 분단이었을까? 권력의 욕망, 이념의 열망은 왜 그토록 맹목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