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선택’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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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도 컸고, 영화를 벗어나도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솔직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영화였다. 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얼마 전 뒤늦게 봤던 ‘증인’이란 영화다.

올 초 개봉했던 ‘증인’은 휴머니즘을 강조한 법정 드라마다. 범인을 추리하는 미스터리물이 아니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가 주인공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변호사 순호는 지우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지우를 법정에 세운다면 가볍게 승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의 증언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만 하면 승소는 떼 놓은 당상이다. 재판에서 승소는 순호에게 출세의 의미이기도 했다.

순호는 지우와 친해지기 위해 매일 자폐증을 공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사는 지우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쓴다. 지우는 순호를 경계하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1심 선고 날, 순호의 뜻대로 법정에 선 지우의 증언은 효력을 얻지 못한다. 지우는 가정부가 웃고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타인의 표정을 잘못 이해할 수 있으며 판단력이 흐릴 수 있다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견고했다. 순호의 재판에서 승소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새롭게 전개된다. 가정부와 숨진 할아버지 아들의 관계, 그 아들이 가해자 변호를 맡았던 대형 로펌에 고문 변호사를 요청한 일, 숨진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기부하려고 했던 계획 등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진실 앞에 순호는 혼란스럽다.

지우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세상에 살며 아픔과 슬픔을 혼자 감당해 낸다. 웃으며 자신을 이용하려는 단짝의 속내를 잘 알지만 엄마에게 말할 수 없다. 법정에서 자신을 정상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취급한 것도 지우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면서 지우는 순호에게 묻는다. “신혜(지우 단짝 친구)는 늘 웃는 얼굴인데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늘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해요. 그런데 아저씨는 대체로 웃는 얼굴이에요.”

그리도 또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결국 ‘돈의 논리’에 물들어 가던 순호는 지우의 증언이 ‘참’임을 양심껏 입증해 준다. “엄마, 증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진실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라는 지우를 위한 ‘좋은 사람’이 되는 순호, 영화는 그렇게 ‘해피앤딩’이다.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지우가 던진 질문이 너무도 오래 가슴에 남아서다.

지우가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치 스크린을 뚫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송곳처럼 폐부를 찌른다. ‘좋은 사람인 척’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이들도 주변에 수두룩하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선거 때만 잠시 머리 조아리며 표를 구걸하다 배지 달고 나면 제왕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허세의 정치인들, 그동안 수없이 봐왔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며 허리를 굽신거리며 지역을 찾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터. 군림하는 정치 권력이 아닌, 발로 뛰는 생활 정치, 공공의 정치, 사람을 위한 정치를 꿈꾸는 ‘참’ 정치인도 분명 많다. 그래서 더 무거워지는 어깨다. ‘제대로 된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인 탓이다. ‘인물과 능력’보다는 ‘특정 정당 중심의 선택’을 그동안 해왔던 우리이기에 더 그렇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당신도 나를 이용만 할 겁니까?”. 이제는 당당히 묻고, ‘증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진실이 뭔지 알려주고 싶다’던 지우처럼 우리 역시 ‘증인’이 돼 제대로 된 검증을 해야 할 때다. 그래야 우리 정치는 물론, 우리의 삶도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장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