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임을위한 행진곡

박상지 경제문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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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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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1982년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불리워진 것을 시작으로 이 곡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곡이 됐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구절구절 가슴을 뒤흔드는 가사에 행진곡 형식을 띄고있어 ‘투쟁가’로도 알려져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빨갱이의 노래’라고도 한다.

그런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 K팝이 전세계 가요계를 정복하기 전부터 10여개의 언어로 전 세계에서 불리워진 이른바, K팝의 원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의 소외받고 핍박받는 이들의 현장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해외에서 가장 먼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워졌던 나라는 홍콩이었다. 때문에 최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100만 행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 것은, 사실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5·18을 상징하는 이 곡이 홍콩에 알려진 것은 5·18의 역사와 거의 맞먹는다는 사실이다.

홍콩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알려진 것은 1982년 홍콩중문대의 한 교수가 서울에서 열린 청년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곡에 큰 영감을 얻은 교수는 홍콩으로 돌아가 이 노래를 전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작곡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홍콩에 이어 대만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전파됐다. 1988년 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대만의 노동자 왕리샤가 이 곡을 듣고 ‘노동자전가’라는 노래를 만든것이,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만에서 불리워지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 곳곳의 시위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나라 말로 번안돼 애창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광주가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세계의 민중들에게 이 노래는 간절함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밤의 현장에서 ‘광주정신’은 조용히 힘이되고 있다. 현대사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던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박상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