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전라도 분장청자, 자신의 멋을 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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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청자분장인화상감'내섬'명국화문접시(곡성 구성리 요장 출토, 전남문화재연구원) 편집에디터
01-청자분장인화상감'내섬'명국화문접시(곡성 구성리 요장 출토, 전남문화재연구원) 편집에디터

전라도 분장청자, 자신의 멋을 갖추다

고려 말기는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매우 혼란했던 시기로 이 시대를 대표하던 상감청자 역시 조형성을 갖춘 정예품 생산에서 실용성을 갖춘 대량 생산으로 변화하면서 태토와 유약의 색상이 짙은 암갈색으로 변하고 문양은 간략해지거나 밀도가 낮아지는 등 품질이 낮아진다. 이와 같은 대량 생산과 조질화의 경향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일단락된다. 새로운 정부에 의해 사회제도가 안정되고 문물이 정비되면서 일상용기도 빠르게 변화하였다. 고려 말 14세기 후기에 최악의 상태로 떨어졌던 상감청자는 고려와는 다른 재질과 조형, 장식 기법으로 변화 발전하는데, 이것이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분장청자이다. 분장청자는 태토와 유약, 장식기법을 포함한 여러 요소가 고려 상감청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나 형태와 문양 등에서 독창성을 갖추며 발전하였다.

조선 전기 분장청자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록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있는 자기소(磁器所)와 도기소(陶器所)에 대한 내용이다.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다음 기록한 ‘세종실록 지리지’는 전국 모든 지역의 호구(戶口)와 특산물 등을 파악하여 국가 통치체제의 확립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편찬된 것으로 지역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 기록된 자기소와 도기소는 관청과 왕실 등 국가에서 사용하던 도자기를 공물로 보냈던 곳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전국의 가장 대표적인 분장청자 요장(窯場)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요장은 치소(治所)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상·중·하 가운데 하나를 정하여 평가하는 등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들 전국의 도기소와 자기소는 모두 324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자기소가 139곳이고 도기소는 185곳이다. 특히, 전라도는 자기소 31곳과 도기소 39곳이 분포하고 있어 자기소 37곳과 도기소 34곳이 분포하고 있는 경상도와 함께 가장 많은 요장이 분포하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에도 자기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경기도 34곳, 충청도 61곳, 황해도 22곳, 강원도 21곳, 평안도 25곳, 함길도 20곳 등에 분포하고 있어 요장의 수량에는 차이가 있으나 전국에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려 말 정치 사회적 혼란으로 강진에 집약되어 있던 청자 장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졌던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장인들은 자신들이 정착하였던 지역의 풍토와 문화 등이 반영된 수요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릇을 제작하여 분장청자는 점차 지역적 특색을 갖추면서 변화 발전한다.

분장청자는 거칠지만 대담하면서 자연스러운 무늬와 형태 등으로 신선한 조형미를 갖추면서 전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일반 대중들을 위한 일상 생활용기가 중심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역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어 경상도는 관청 이름이 적힌 인화분청이 가장 많이 확인되며, 충청도는 계룡산을 대표로 하는 철화분청이 유명하다.

인화분청은 다른 분청에 비해 품질이 좋은 태토와 유약을 사용하여 매우 견고하며, 무늬도 도장을 이용하여 치밀하고 정성을 드려 새기고 있어 정교하면서 높은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왕실과 관아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보내거나 양반 사대부에게 공급되었는데, 중앙 관청에서 엄격하게 생산을 관리하여 전국적으로 품질이 균등하여 조형미가 대부분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 인화분청 가운데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 있는데, 지역 이름과 관아의 이름을 함께 새긴 명문(銘文) 분청이다. 이들 지역+관아가 새겨진 인화분청은 경상도 지역의 특징적 생산품이다. 이외의 지역에서는 광주 충효동 무등산 요장에서 확인된 ‘무진(茂珍) 내섬(內贍)’ 등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지역 또는 관아 이름만 적고 있어 경상도 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 명문 그릇은 장흥고(長興庫) 등 중앙 관청과 恭安府(공안부) 등 왕실 관련 관부(官府)에 주로 공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주 장흥고’라 적혀 있는 그릇은 경주 지역에서 만들어 지역 관아에 현물로 받친 것으로 중앙의 장흥고에 보내거나 일부는 중앙의 위임을 받아 지역에서 사용하였다. 이들 그릇에 적힌 지역 이름은 엄격한 품질 보장을 위해 새긴 것으로 공납한 그릇의 품질이 불량하면 만든 지역에서 다시 만들도록 하는 등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이를 더욱 강화하여 그릇을 만든 장인의 이름을 굽 안바닥에 적은 그릇들도 등장하는데, 특히 광주 무등산 요장에서 장인의 이름이 많이 확인되고 있어 특징적이다. 관청 이름을 적은 것은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공납 과정과 실제 중앙 관청에서 이를 사용하면서 그릇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기고 있다.

철화분청은 분장된 백토 위에 철사 안료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공주 계룡산이 가장 유명하다. 다른 지역의 철화분청은 대부분 초화문 등 간략한 무늬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충청도 지역에서 생산된 철화분청은 필력이 강하고 중심 소재만을 대담하게 표현하여 생동감이 있다. 무늬의 소재는 풀과 꽃, 새와 물고기 등 대부분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도식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회화적인 것, 익살스러운 것 등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 무늬 가운데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상징하는 물고기인 쏘가리가 가장 많이 그려지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철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다고 할 있으나 그릇을 굽는 과정에서 온도가 너무 높으면 산화 안료가 날아가 버리며, 온도가 낮으면 원하는 철화 색상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 따라서 높은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가마를 다루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철화분청이다. 특히, 거침없이 휘돌린 질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무늬에서 느끼는 추상적이며 해학적인 아름다움은 현대적 감각으로 보아도 매우 세련된 모습으로 이러한 조형미가 계룡산 철화분청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의 특징적 분장청자는 조화박지와 귀얄, 덤벙 기법을 이용한 그릇들이다. 특히, 순박한 아름다움이 특징인 분장청자 가운데 덤벙과 귀얄 분청은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은 가장 단순하면서 깊은 멋을 지니고 있어 이를 가장 많이 생산하였던 전라도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귀얄 기법은 덤벙 기법이 함께 확인되는 고흥 운대리와 보성 도촌리, 장흥 신촌리 이외에 몽탄면 사천리 요장을 비롯한 무안 지역 요장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귀얄은 풀칠을 하는 거친 빗자루 같은 솔을 이용하여 그릇 표면에 백토 물을 묻혀 빗자루 흔적이 남도록 칠하는 것으로 그릇의 바탕을 이루는 태토와 백토가 조화를 이루어 무늬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때 그릇의 겉면은 귀얄이 지나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구분되는데, 이를 가마에 넣고 구우면 백토가 그대로 드러난 하얀 부분과 바탕 흙의 회청색이 대비를 이룬다. 또한, 그릇 전체에서 차지하는 백토의 면적이나 윤곽선 등이 전혀 의도되거나 꾸밈이 없어 귀얄분청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귀얄 흔적 이외에 하얗게 칠한 백토 위에 박지와 조화, 철화 등으로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무늬를 표현하고 있다. 모양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하면서 대담하게 자신을 표현한 붓 자국은 그릇 전체에 빠르고 힘찬 율동감과 함께 추상화적인 효과까지 안겨주는데, 이는 특정한 도안과 의도가 전혀 없는 장인의 자유로운 필치(筆致)와 붓의 흐름, 가마의 변화 등에 따른 무기교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이다. 귀얄분청은 백자처럼 그릇을 하얗게 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만들었으나 또 다른 분장청자의 조형미를 완성하고 있어 남도 장인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백자를 원하는 끝없는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백자를 닮아가려는 분장청자는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임진왜란 이후 자연스럽게 소멸하며 귀얄분청도 이때 역사에서 퇴장한다.

덤벙 기법은 그릇의 전체 또는 일부를 백토 물에 담가 그릇을 하얗게 하는 것으로 “담금”으로 부르기도 한다. 백토가 차분히 씌워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쾌한 귀얄문과는 달리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릇 전체에 백토가 입혀져 백자와 구별하기 힘든 그릇도 있으며, 백토 물에 담그면서 손으로 잡았던 굽 주변에 백토가 묻지 않아 태토가 노출된 것도 있다. 또한, 그릇에 바른 백토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안겨 주는 등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귀얄처럼 백토 위에 박지와 조화, 철화 기법을 이용하여 물고기와 모란, 연꽃 등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무늬를 기하학적으로 변형하거나 추상화하여 자유분방하고 활달하게 표현하고 있다. 덤벙분청 역시 백자를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처음 등장하였으나 백자가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퇴장한다.

덤벙분청은 다른 지역에서는 매우 소량 생산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고흥 운대리와 보성 도촌리, 장흥 신촌리에서만 전문적인 요장이 확인되고 보성만을 끼고 해안에 집중 분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덤벙분청은 일본인들에 의해 ‘粉引(고히키·고비비키; 덤벙분청)’으로 불리며 널리 애호되고 있으며, 특히 ‘寶城粉引(호조고비키)’로 불리는 다완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다완 가운데 하나이다. 덤벙 분청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였던 고흥과 보성, 장흥 등을 포함하여 보성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어 일찍부터 이를 인식하고 애호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덤벙분청은 국내보다 남아 있는 수량도 많고 조형성도 높아 일본을 대상으로 한 수출품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지리적으로도 덤벙분청을 전문적으로 만들었던 요장이 모두 일본과의 교역에 유리한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덤벙분청의 이해는 조선 전기 일본과의 대외 교역과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향후 이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게 진행되어야 하겠다.

광주 무등산으로 대표되는 조화박지분청은 기형과 문양의 활달함을 비롯하여 생략과 변형, 빠른 속도감이 주는 경쾌한 표현들이 특징적이다. 주로 호와 병, 푼주, 대호, 장군 등 운반 또는 저장 용기 등 면적이 넓은 그릇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위세품의 성격을 갖는 큰 기물에 주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늬는 다른 기법의 분청처럼 모란문과 파초문, 당초문, 물고기 등 대부분 자연에서 소재를 얻고 있다. 남도의 조화박지분청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릇은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전라도(全··道)’가 새겨진 모란문호이다. 다른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되지만 복잡한 획수의 ‘羅’를 ‘··’로 간략하게 새긴 대형의 항아리로 도자기에서는 유일하게 확인되고 있다. 목에서 살짝 밖으로 벌어진 아가리와 곧고 짧은 목 언저리를 가졌으며, 어깨가 팽창되고 몸통이 길며 아래로 갈수록 날씬한 형태이다. 그릇 전체에 백토를 얇게 바르고 몸통에 음각으로 초화문과 제작지를 알 수 있는’전라도’라는 명문을 새겼다. 어깨에는 연판문을 새겼는데 일부가 결실되어 보수하였다. 특히, 몸통에 세로로 새긴 ‘전라도’라는 명문과 무늬 등을 통해 충효동 무등산 요장에서 지역의 특색인 조화박지분청을 제작하였음 알려주고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전기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분장청자는 고려청자의 본고장 남도의 전통을 이어 받아 생산된 새로운 도자문화로 독특한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대표적 생산지인 고흥 운대리 지역이 2016년 3월 18일 중소기업청의 지역특화발전특구위원회에서 “분청사기 문화예술특구”로 선정되어 국내의 대표적 문화유산임이 현재에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분장청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빛나는 전통과 뛰어난 가치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당시의 지역적 역사 의식과 문화가 응축된’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많은 자기소와 도기소가 학술적 조사나 성격 규명 없이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어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더 이상의 이들 요장이 훼손되거나 유실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여 예향(藝鄕) 남도의 긍지와 품격을 잃지 않도록 하였으면 한다.

02-청자분장인화상감'경주장흥고'명새끼줄문호. 호림박믈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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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청자분장덤벙문발(三好)-일본 三井記念美術館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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