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박성원 전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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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전남취재본부장 편집에디터
박성원 전남취재본부장 편집에디터

“이 면죄부는 여러분이 이미 범한 죄에 대해 유효할 뿐만 아니라, 장차 범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홍보 문구다. 황당무계하지만, 죄를 저지른 자가 돈이나 재물을 봉헌하면 죄를 면해준다며 로마 교황청이 교부한 증서가 면죄부다. 면죄부는 교회의 재정 확보 수단으로 악용돼 극심한 부패와 타락을 야기했고, 결국 종교개혁의 촉매제가 됐다.

요즘 면죄부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대부분 경찰이나 검찰, 법원 등 사법기관의 이른바 ‘봐주기 수사’나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면죄부다.

지난 4일 검찰의 김학의 전 법무차관 수사 결과 발표에 또다시 면죄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차관으로 발탁된 그는 2007∼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 소유의 별장 등지에서 윤씨 등과 함께 특수강간을 저지르고, 성 상납 향응 및 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기존 2차례 수사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김 전 차관을 모두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 바 있다. 이에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재수사 권고에 의해 시작된 이번 3차 수사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검찰 수사단은 김 전 차관에 대해 1억7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른바 ‘별장 성관계’ 동영상의 주인공이 김 전 차관이 맞는다면서도 성범죄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또 2013년과 2014년 2차례 이뤄진 김 전 차관에 대한 청와대 등의 수사 외압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사 당사자들이야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항변하겠지만,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커지니 김 전 차관에게 최소한의 혐의만 적용하고, 성범죄엔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론의 눈치를 보는 수사도 경계해야겠지만, 범죄 혐의자에게 너무 쉽게 면죄부식 처분을 내리는 것은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키우는 일이다. 이제라도 검찰은 강한 의지를 갖고 김 전 차관과 관련해 쏟아지는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 세 번 수사했는데 네 번 못할 것도 없다.

박성원 전남취재본부장

박성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