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행사는 ‘축제’로 치를 수 있을까

137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

어수선한 39주년…속절없이 또 5월이 간다

‘계절의 여왕’ 5월을 잊고 살아온 광주 시민

신록과 장미 향기 대신 구호와 분노만 가득

진상규명 빨리 마치고 ‘5월 있는 삶’ 찾아야

내년 40주년 기념식은 축제로 치러야 한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노래한 사람은 여류시인 노천명이다. 시인·수필가 피천득은 5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라고 비유했다. 이해인 수녀는 5월을 두고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쓴다.’고 했다.

5월에 대한 시인 묵객들의 찬사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굳이 시인들의 찬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눈 앞에 펼쳐진 5월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나무들은 서로 도란거리면서 연초록에서 검푸른 색으로 옷을 바꿔 입고 있다. 담장마다 어우러진 덩굴장미, 라일락, 철쭉이 내뿜는 향기도 어지럽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기념일이 5월에 몰려 있는 것도 연중 최고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5월에 대한 찬사는 부족하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언제부턴가 ‘계절의 여왕’ 5월을 잊고 살아왔다. 1980년 이후 90년대까지 5월의 광주 하늘에는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가 진동했다. 신록과 장미가 내뿜는 향기 대신 날 선 구호와 분노만 이글거렸다. DJ의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추모 열기에 묻혀 5월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도록 막아 유족들이 참석을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나 헬기 사격과 계엄군의 성폭력, 행불자, 발포 명령자 등 진실 규명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광주의 5월은 5·18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삼켜 버린다. 광주 시민들은 5월이 와도 신록과 장미꽃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우리는 운명인 양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올해 5월에도 광주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 5·18 진압의 총사령관 격인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를 가장한 사탄’이라고 비난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주 재판에 참석한 그는 사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왜 이래!’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극우 논객 지만원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내려와 5·18을 일으켰다는 황당한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까지 여기에 동조해 망언을 일삼았다.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5·18을 ‘폭동’으로, 유공자를 ‘괴물 집단’으로 묘사해 광주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한국당은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시늉만 내고 있다. 5·18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유족과 광주시민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후벼 파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올해 5·18 39주년 기념식은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진상 규명 의지를 재천명했으나 공허하게 들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광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강행해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그는 분향도 하지 못하고 쫓기듯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한국당은 행사 후에도 본질은 외면하고 엉뚱하게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황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았다. 일부 극우단체는 전야제가 열리는 금남로에서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5월 영령과 광주 시민을 모독했다. 그래도 광주 시민들은 화를 안으로 삼키면서 성숙하게 대응했다.

물론 올해 5월에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헬기 사격 목격자들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진상규명에 한 가닥 기대를 갖게 했다.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용장 씨는 지난주 국회와 광주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전두환 씨가 1980년 5월 21일 정오께 헬기를 타고 광주비행장에 왔다. 오자마자 비행단장실에서 약 1시간 회의를 열고 서울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21일 오후 1시 집단 사살이 이뤄진 정황으로 미뤄 전 씨가 사살을 명령하려고 광주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5·18의 미해결 과제 중 하나인 ‘발포 명령자’ 규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80년 5월에 군 수송기가 시신을 김해공항으로 이송했다는 추정을 할 만한 기록도 나왔다. 이러한 증언들은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출범이 왜 필요한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5·18 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해야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8개월째 닻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문명국가·선진국을 자임하는 나라에서 40년이 되도록 인권침해와 학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진상조사위를 하루빨리 출범시켜 헬기 사격, 발포 명령, 행방불명자 처리 등에 대해 진상을 빠짐없이 밝혀내야 한다. 국방부는 조사위가 출범하면 관련 자료를 모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지금이라도 미국에 김 씨의 정보보고서를 비롯해 5·18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하도록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진상조사위를 통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면 이를 국가보고서에 기록해야 비로소 5·18은 마무리된다. 이와는 별개로 5·18 왜곡처벌법을 만들어 제2의 지만원이 나오지 않도록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조치가 이뤄진다면 광주 시민들은 비로소 5월의 신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수선한 5·18 39주년의 5월이 저물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내년 40주년 행사를 세계인의 축제로 치르겠다고 말했다. 5·18 재단은 가수 방탄소년단(BTS)을 초청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내년 40주년 행사를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완벽하게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에 주어진 숙제다. 내년에는 광주 시민들이 5·18의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신록과 장미를 보면서 ‘5월이 있는 삶’을 되찾아야 한다. 광주가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논의해야 한다. 지난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장은 슬픔이 아닌 희망으로 가득 찼다. 내년 5·18 40주년 행사는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축제로 치러야 한다.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