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풍수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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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풍수(風水)란 무엇일까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겨울에는 북서풍이 드세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많다. 이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이 풍수 명당이다. 국어사전에는 “집, 무덤 따위의 방위와 지형이 좋고 나쁨과 사람의 화복(禍福)이 절대적 관계를 지닌다는 학설, 또는 그 방위와 지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 뒤편에는 산이 있어야 좋고 앞쪽으로는 물이 흘러야 좋다는 배산임수의 원리들이 여기서 나왔다. 모두 땅에 대한 관념과 철학이자 과학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풍수를 양택(陽宅)이라 하고 죽은 자들을 위한 풍수를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모두 유기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풍수의 기본 원리다. 대학교의 지리학과에서 풍수를 배우고 건축이나 환경공학에서 풍수를 다루는 데까지 이어졌다. 명당에 조상을 모시고 발복했다느니 명당을 찾아 묘를 옮겼다느니 하는 옛이야기들이 자주 전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한의 3대 명당, 금환락지(金環落地) 운조루

구례 운조루는 풍수로 유명한 곳이다. 운조루 공식 홈페이지는 이렇게 설명해두고 있다. “지리산은 그 후덕한 기운 탓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3대 명당인 금환락지를 만들어 놓았다. 해발 1506m의 노고단이 형제봉을 타고 내려오다 섬진강 줄기와 만나면서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그 천하대지가 구례 들판 어느 곳엔가 위치한다는 비기가 전해왔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가 그곳이다. 속칭 ‘구만들’이라고 부르는 이곳의 마을들은 모두가 금환락지 명당터를 잡기 위해 외지인들이 몰려와 개척한 곳이라고 한다.” 금환락지는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금반지를 떨어뜨린 땅이라는 뜻이다. 영험을 말하기 위해 지리산의 선녀를 등장시킨다. 비녀도 함께 떨어뜨려 금잠락지(金簪落地)라고도 한다. 한해륙(한반도)을 아기를 낳는 여인의 모습에 비정하며, 이 미녀가 잠자리를 하기 위해 가락지를 풀고 비녀를 풀어놓았다는, 그 명혈(名穴)자리가 오미리이고 운조루라는 뜻으로 설명된다. 지리산 주봉인 노고단을 이어 월령봉이 왕시루봉을 대면하고 섬진강을 끌어안은 모습이라는 설명을 부가한다. 땅에 대한 인격화, 여성의 생산성, 재화와 복락에 대한 욕망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음부와 자궁을 성적으로 말하면 음란한 요설이라고 폄하하다가도 풍수를 대입해 말하면 음덕(蔭德)의 충만으로 칭송한다. 남한 3대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운조루에는 남쪽으로 연못을 팠다. 풍수로 완벽한 땅인데 왜 연못을 팠을까? 길지(吉地, 좋은 땅)에 대한 관념과 축적된 욕망들은 어떤 상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전남도청, 천혜의 명당일까

전남도청을 무안으로 옮기면서 풍수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지금도 위키백과 등의 설명에는 길지에 대한 해석이 부가되어 있다. 뒷면 오룡산과 앞면 영산강은 배산임수의 전형으로 설명된다. 우리나라 수도의 주산은 북악산이요 남도의 주산은 남악산이라는 언설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도청 이전의 명분이 되었다고도 하는 삼각 길지의 꼭지점이라는 풍문도 그야말로 바람과 같은 말들이었다. 무안에 승달산이 있고, 목포에는 유달산이 있으며 영암에는 선황산이 있는데 이 세 개의 산을 연결해 그 꼭지점에 전남도청을 세웠다는 뜻이다. 풍수학자 김창조는 경향신문 연재물 ‘한국풍수의 재발견 51’을 통해 이를 상세하게 주장한 바 있다. 다섯용이 구슬을 다투다 되돌아오는 땅이라서 회룡(回龍)이라 한다. 오행이 상생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전라도가 어머니 품속 같은 구실을 하게 되는 개벽의 승지(勝地)라며 통일 이후의 비전까지 언급했다. 북악은 대륙을 관장하고 남악은 해양을 경영하는 통일의 시대를 남악 도청 터에서 기대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유불선의 삼신산을 모두 찾았고 그 꼭지점의 안쪽을 살펴 현재의 터를 잡았다는 것. 이 땅이 융화와 회통의 천하 대지명당이라는 것이었다. 땅의 이름과 산의 이름들이 대거 동원되고 의미가 부여되었다. 유달산은 유교, 승달산은 불교, 선황산은 도교의 맥락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었다. 영암에서 출생한 도선국사는 이들을 융합한 유불선의 고승으로 풀이되었다. 하지만 이 설이 도청을 옮기기 위한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거셌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김창조의 주장을 요설(妖說)로 취급한다. 도깨비 같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럴까? 이것이 요사스런 수작에 그치지 않으려면 적시한 남북과 해양의 시대를 전남도청을 통해 열어 가면 될 수 있을까? 회룡(回龍)의 본질은 결국,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로 회귀(回歸)하는 것 아닌가.

풍수와 문화(민속)경관의 함수

나는 땅에 대한 관념과 욕망을 민속경관의 관점에서 풀어오곤 했다. 민속경관 속에는 경관지리학에서 말하는 ‘문화경관’적 맥락과 우리의 전통 경관 관념인 풍수적 맥락을 담고 있다. 베노베를렌에 의하면, 경관지리학에서 말하는 경관이라 함은 지표면의 일부분이 지닌, 일정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개성적인 전체 인상을 말한다. 이 중 자연적인, 인간에 의해 창조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표현상의 일부는 자연경관(Naturlandschaft), 인간에 의해 창조된 부분은 문화경관(Kulturlanddchaft)이라 한다. 이은숙은 그의 연구 ‘몽골인의 자연관과 인문경관’이란 글에서, 경관은 거주지의 생활양식의 표현이며, 인류에 의해 창조된 경관의 일부, 즉 문화경관은 인간을 매개로 한 자연적인 지리요소의 작용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적 풍수지리론은 자연지세의 맥, 맥을 따라 흐르는 기, 기가 모이는 결절점 혹은 기를 접할 수 있는 장소인 혈을 논리체계의 기본요소로 하고 있다. 최영조는 그의 책 ‘신한국풍수’에서, 우리의 풍수란 자연환경의 생성과 변천에 대한 법칙을 연구해 이 법칙을 최선으로 이용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들 논의를 바탕으로 민속경관을 “민속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민속생활 및 연희들을 관찰하거나 체험하는 것을 통해 민중들의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정의해두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졸고, 「여수 영당의 역사와 지속가능한 민속경관 전략」(남도민속연구 제14집, 2007)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풍수의 본질은 비보론(裨補論)과 상보론(相補論)

풍수 비보는 풍수적 환경에 부족함이 있을 때 인문적 환경을 보족함으로써 풍수적 조화를 통한 주거지 생태 환경의 항상성과 안정성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응 방식을 말한다. 최원석이 이를 잘 설명해두었다. 비보 조산은 흙, 돌, 숲(나무)을 산 모양으로 조성하여 공결한 곳을 메움으로써 보허효과를 얻는 비보 유형이다. 흙무지, 돌무지(돌탑), 조산숲이 대표적인 형태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수살, 경기도 북부의 축동, 제주도의 거오기 등이 조산의 기능을 한다. 전통적인 비보의 형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솟대, 입석 등의 마을 경계물과 조산을 포함한 수구 및 동구 등이다. 남도지역 대부분의 마을에 세워져 있는 남근 형태의 입석도 이러한 비보적 기능을 한다. 도서해안이 많은 전남의 경우에는 우실이 대표적이다. 호남 좌도 지방의 조탑이나 우도 지방의 입석들은 수구막이 기능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담양의 수구맥이 등이 전형적인 것들이다. 본래 비보풍수에서의 수구나 동구는 ‘나(我)’와 ‘너(他)’를 구분 짓는 지표물이다. 이러한 ‘구분 짓기’의 표시는 사람을 포함해 장소(영역)를 기초로 삶을 영위하는 모든 동물들에게도 포함된다. 풍수 상보는 무엇인가? 예컨대 산업화로 치우친 도시경관에 민속경관을 비보함으로써 그 부족한 환경을 보족해주는 의미로 이해하면 쉽다. 여기에 비보론을 대입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도시경관을 조화로운 상태로 복원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경관의 황폐함을 민속경관으로 비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인문학적 대응방식이요, 비보적 풍수 아니겠는가. 자꾸 신도시를 지어 원도심을 황폐화시키는 현재의 도시재구성 방식을 되돌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수가 좋은 땅을 찾거나 획득하는 일이라고 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명당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굶어죽으라는 뜻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것이 어찌 땅의 일에만 국한되겠는가. 좋은 환경에 태어나서 등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 이익을 독차지하는 것, 이른바 결정론적 사회제도와 결정론적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현재 살아가는 공간을 비보하고 상보하는 방식으로 명당터를 가꾸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을 돕는(裨補) 일, 그것이 풍수의 본질이다.

남도인문학 팁

이중환의 택리지와 풍수관

일찍이 이중환도 ‘택리지’를 통해 수구론을 펼친 바 있다. “어찌하여 지리를 논하는 것인가. 먼저 수구를 보고, 그 다음으로 들의 형세를 본다. 그리고 다시 산의 모양을 보고, 다음에는 흙의 빛깔을, 다음은 조산(朝山)과 조수(朝水)를 본다”라고 했다. 수구(水口)는 물을 끌어들이거나 흘려보내는 곳으로 풍수론에서는 이익(得)이 흘러간 곳의 의미로 쓴다. 담양지역의 ‘수구맥이돌’이 잘 알려져 있다. 물의 기운을 지킨다는 뜻으로 세운 돌이다. ‘고려국사도선전’이라는 고려말의 문헌에서는 비보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만약 병이 들어 위급할 경우 곧장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곧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천의 병도 역시 그러하니 절을 짓거나 불상을 세우거나 탑을 세우거나 부도를 세우면, 이것은 사람이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것과 같은지라. 이름하여 말하기를 비보(裨補)라 한다. 산천의 부조화와 그에 의해 생겨나는 인사(人事)의 난조(亂調)를 해결하기 위해 도선이 제시한 방법론이자 처방전이 산천의 혈맥에 절, 탑, 불상, 부도 등 불교적인 수단을 세워 치유하는 이른바 비보탑설이었다. 요컨대 비보란 풍수적인 산천인식에 기초하여 파악된 문제점에 대한 인문적인 대응방식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신도시개발을 통해 새로운 정주터를 만들고 구도심을 방치하는 방식, 그래놓고 다시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천문학적 세금을 낭비하는 방식은 많은 문제가 있다. 풍수의 본질은 좋은 땅을 찾아, 좋은 나라를 찾아 이주하거나 이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땅을 비보(裨補)하고 상보(相補)하여 살기 좋은 땅으로 가꾸는 데에 있다.

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구례 지리산 오미리와 운조루 원경, 구례군청 제공 편집에디터
전남도청과 오룡산 일대 풍경. 전남도 제공 편집에디터
전남도청과 오룡산 일대 풍경. 전남도 제공 편집에디터
전남도청과 오룡산 일대 풍경. 전남도 제공 편집에디터
전남도청과 오룡산 일대 풍경. 전남도 제공 편집에디터
여수 영당풍어굿(1983년 5월 8일), 고 정홍수 제공 편집에디터
여수 영당풍어굿(1983년 5월 8일), 고 정홍수 제공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