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고려 청자 새롭게 변신하다, 조선 분장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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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청자분장상감용문호(국보 제259호, 국립중앙박물관) 편집에디터
01-청자분장상감용문호(국보 제259호, 국립중앙박물관) 편집에디터

분장청자(粉粧靑瓷)는 자유분방함을 특징으로 모양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대담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꾸밈없고 자유스러운 솔직한 자연의 멋과 정감을 품고 있어 독특하면서 신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실용적이며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소박하면서도 활달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 가장 현대적인 미감을 담고 있는 자기로 알려져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술품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전기에 유행하였던 분장청자는 고려청자와 같이 철분이 포함된 회색 또는 회흑색의 바탕 흙 위에 하얀 흙을 바른(粉粧) 다음 청자에 쓰인 회청색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를 뜻하는 것으로 백토를 바랐다는 점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고려청자의 기술과 조형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릇의 종류와 형태가 장식적인 것보다 기능적이며 일상적인 것이 많으며 섬세하고 세련된 것보다 실용적인 모양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등 세부적 요소에서 고려청자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요소들이 있어 고려 상감청자와 구별하기 위해 분청사기(粉靑沙器)로 이름하기도 한다.

분장청자의 유약은 회청색이 많고 회색이나 녹갈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려청자에 비해 색깔이 좋지 않고 바탕 흙도 거칠어 이를 감추기 위해 백토 분장을 하였다. 즉, 분장을 통해 새로운 청자로 변신하여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춘 자기로 등장한 것이다. 기술의 쇠퇴를 기회로 활용한 것으로 사람이 얼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장을 하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분장청자는 청자의 쇠퇴가 아니며 청자가 널리 확산되면서 새롭게 변신하여 실용성과 대중성을 갖춘 참신한 제작 기법으로 대량 생산된 결과인 것이다.

분장청자는 고려청자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나 가장 조선적인 아름다움으로 재창조된 독특한 미감을 지닌 도자문화로 발전하였다. 특히, 분장청자의 기본을 이루는 분장기법에 사용하는 백토는 이미 고려청자의 상감과 백화(白畫), 퇴화(堆花) 기법 등에 사용되어 백토의 사용이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분장청자에 사용되는 상감과 철화, 조화, 박지 등의 시문 기법도 고려청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 고려청자와 분장청자의 깊은 연관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점차 고려청자의 조형에서 벗어나 15세기 중엽 조선의 새로운 문화가 무르익으면서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또한, 고려 후기부터 시작된 수요층의 확대와 대량 생산은 이 시기가 되면 더욱 커져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적 미감을 보여주는 등 조선 전기의 독창적인 문화로 발전하였다.

조선 전기 왕성하게 제작되었던 분장청자는 고려청자가 실용성을 갖추고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탄생한 조선 고유의 도자문화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간직한 자유분방함을 특징으로 많은 지역에서 널리 제작되었다. 또한,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등 지역적 특색을 갖추며 발전하여 지방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즉, 경상도 지방은 명문(銘文)과 인화분청이 많이 발견되며, 계룡산으로 대표되는 충청도 지역은 철화분청이 유명하다. 전라도는 조화기법과 박지기법을 통한 회화적인 분청과 그릇 전체를 하얗게 칠한 덤벙분청이 발달하였다. 한편, 모양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대담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귀얄 백토 분장은 그릇 전체에 율동감을 주고 있으며, 그 위에 그린 자유로운 무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전통으로 손색이 없다. 따라서 분장청자는 꾸밈없고 자유스러운 솔직한 자연의 멋과 정감을 품고 있어 독특하면서 신선한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조상들의 순수한 마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무늬의 소재는 고려청자처럼 자연에서 얻은 물고기와 연꽃, 모란 등 동식물과 추상적인 것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실용적이며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소박하면서도 활달한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의 자기는 크게 분장청자와 백자를 비롯하여 백태청유자(白胎靑釉瓷), 흑유자, 도기류 등도 제작되었다. 특히, 분장청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磁器所) 139개소와 도기소(陶器所) 185개소의 분포에서 보듯이 생산과 수요가 넓게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 후기 잦은 전란과 사회적 혼란으로 강진과 부안에 집약되어 있단 청자 장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많은 지역에서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15세기 전반에는 상감과 인화분청이 중심을 이루는데 세종대(재위; 1418~1450년)에 다양한 기법이 나타나 크게 발전하며 세조대(재위; 1455~1468년)에 완성된다. 이 시기에는 왕실과 관청 이름을 도장으로 찍은 분청이 많이 만들어져 이들 기관에서 특히 분장청자를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중․후기를 지나면 분장청자는 중심에서 벗어나 조질화되면서 16세기 초반부터 점차 소멸하기 시작하여 임진왜란(1592년)을 전후한 시기 백자에 흡수되어 완전히 소멸한다. 분장청자의 소멸은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의 정립과 지방 사기장의 정착으로 백자가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분청보다 고품질인 백자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분장청자를 빠른 속도로 지방화 조질화시겼으며, 전쟁이라는 큰 사회적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소멸한 것이다. 한편, 분장청자도 후기에 백자와 같은 느낌을 주도록 귀얄과 분장 기법을 이용하여 하얗게 생산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백자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분장청자의 문양은 회청색 태토와 흰색의 분장토가 어울리도록 여러 기법을 이용하여 시문하고 있지만 대부분 청자의 장식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시문 방법에 따라 크게 상감분청계와 분장분청계로 나누어진다. 상감분청계는 선상감(線象嵌)과 면상감(面象嵌), 인화상감(印花象嵌) 등이 있으며, 태토와 유약이 정선되고 비교적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고급품들이 대부분이다. 분장분청계는 조화(彫花)와 박지(剝地), 철화, 귀얄분장, 덤벙(담금)분장 등으로 다양하지만, 대체로 태토가 거칠고 유약도 얇아 저급품인 경우가 많은데, 일부 박지와 조화, 철화 분청은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상감분장청자는 금속기에 은입사(銀入絲) 등의 무늬를 새겨 넣는 기법을 계승한 것으로 그릇 바탕 위에 무늬를 그리고 이를 새긴 다음 그 부분에 붉은 흙이나 하얀 흙으로 메꾸는 방법이다. 분장청자의 상감기법은 독보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고려 상감청자의 시문기법을 계승한 것으로 크게 선상감과 면상감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면상감에서 가장 큰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박지기법으로 이행 발전된다. 상감기법은 백자에도 영향을 주어 상감백자가 일부 만들어졌으나 15세기 후반 이후로는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무늬를 도장에 새겨 이를 눌러 찍어 표현하고 있는 인화상감 분청은 우수한 태토와 양질의 투명한 유약을 사용하여 견고하며 무늬도 정성스럽게 새겨 넣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국가에 공납하거나 상류층을 위해 만든 것으로 중앙 관청이 직접 생산과 관리를 감독하여 지역적 특징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품질이 균등하다. 인화분청은 태종과 세종 년간인 15세기 전반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15세기 중엽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화분장청자는 고려 음각청자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음각분장청자라고도 하며 흔히 박지기법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백토 분장을 한 다음 예리한 도구를 이용하여 선으로 무늬를 그린 것으로 백색의 그릇 겉면과 바탕 흙인 회청색이 대비를 이루어 무늬가 표현된다. 박지분장청자는 고려의 역상감기법과 유사한 시문기법으로 그릇 겉면에 백토를 분장하고 무늬를 그린 후 무늬를 제외한 배경을 긁어내어 백색 무늬와 회청색 바탕 흙을 대조시키는 기법이다. 즉, 선으로 그린 조화무늬가 뚜렷하지 않아 무늬가 없는 면을 긁어내어 바탕 흙과 백토 분장을 뚜렷하게 대비시킨 것이다. 조화박지분장청자는 성형한 날 그릇 겉면에 백토를 분장한 뒤 조화기법과 박지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조화와 박지를 각각 별도로 사용한 사례들도 있으나 대부분 함께 사용하여 문양을 표현하고 있다. 조화박지 기법을 이용한 분장청자는 광주 충효동을 대표로 하는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발전하여 지역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철화분장청자는 대부분 귀얄 기법을 이용하여 백토를 그릇 전체에 분장한 다음 그 위에 철분이 많이 섞인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무늬를 그린 다음 유약을 입혀 번조한다. 무늬는 흑갈색 또는 흑색으로 나타나는데, 무늬를 그릴 때 붓을 사용하기 때문에 선이 짧고 굵지만 대담하고 율동감이 있는데 이것이 철화분청의 가장 큰 매력이다. 회화성이 높고 서민들의 생활 감정이 정겹게 표현된 철화분청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많이 만들어 졌다. 특히,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기슭에서 주로 만들어져 “계룡산 분장청자”라고도 한다. 철화기법의 화화성은 고려청자에서도 확인되며 조선시대에는 분장청자뿐만 아니라 백자에도 충실하게 계승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귀얄분장청자는 털끝이 뾰쪽하고 뻣뻣한 풀비(귀얄)에 적신 백토를 그릇 겉면에 발라 겉을 하얗게 만드는 기법으로 풀비 자국이 나타나 활달한 운동감이 있다. 조화와 박지, 철화기법에는 기본적으로 귀얄 분장을 실시하고 있으며, 순수한 귀얄기법은 분장청자의 쇠퇴 과정에서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는 백자화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포개구이로 대량 생산하여 일상 생활용기에서 많이 확인된다. 분장청자에서만 확인되는 독창적인 시문기법이다.

덤벙분장청자는 그릇 전체를 백토 물에 덤벙 담갔다가 꺼내 전면(全面)을 하얗게 만드는 기법으로 담금분장청자라고도 한다. 귀얄과 같은 붓 자국이 없어 표면이 차분한 느낌을 주며 무심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를 주고 있어 마치 현대 회화를 보는 듯하다. 백토가 두텁게 씌워져 거의 백자처럼 되며 역시 분장청자 말기에 많이 만들었다. 즉, 백자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분장청자의 바탕 흙으로 백자를 만들 수 없자 지역에 따라 분장청자의 겉면을 하얗게 분장하여 백자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하였다. 백자 제작에 필요한 높은 기술력과 바탕 흙을 정제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인력,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력 등은 검약한 생활을 강조하였던 조선 사회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현실적으로 백자의 구입이 쉽지 않자 덤벙분청이 한 때 유행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릇 전체를 태토와 유약 이외의 안료로 칠하는 시문기법의 경우 청자에는 철채청자와 진사채청자가 있다. 철채청자와 진사채청자는 초벌구이 그릇에 산화철과 산화동을 바르고 그 위에 유약을 시유하여 재벌구이를 하는 것으로 전체에 안료를 칠하는 것에서 분장청자의 백토 분장과 유사한 시문기법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철채청자는 백토로 무늬를 그린 백화기법이 함께 시용되는 예들이 많아 분장청자의 시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백토를 이용한 시문기법은 퇴화기법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백토를 이용한 시문기법이 다양하게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분장청자는 질적으로도 양질과 조질 등으로 나누어지며, 그릇의 종류와 시문기법, 문양 소재 등도 다종다양하게 나타나 우리 민족의 정서를 어느 문화유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고려청자를 계승한 시문기법은 백자에도 전승되어 우리 도자문화의 전통과 내용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과 계승, 창조, 발전은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법고창신(法古倉新)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현대 분장청자의 창작에도 적극 인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의 미를 간직한 멋스러우면서도 자유분방한 특징을 갖추고 있는 분장청자는 가장 현대적인 미감을 담고 있는 자기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통 분장청자의 답습에서 벗어나 효율적으로 이를 계승하여 현재적으로 재창조하고 미래에 전승될 오늘날의 새로운 분장청자를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02-청자분장인화상감화문발(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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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청자분장조화박지연꽃물고기문편병, 국보 제179호, 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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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청자분장철화모란문장군, 보물 제1387호, 호암미술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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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청자분장귀얄문접시, 고흥 운대리 14호 요장 출토,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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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청자분장덤벙문접시, 보성 도촌리 요장 출토,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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