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잊혀선 안 되는 역사… 후세에 전하겠다”

니시모리 시오조 일본 고치현 일한친선협회 명예회장
43년 전부터 한일친선협회 설립하고 한·일 교류 앞장
목포서 고아 돌본 일본인 윤학자 여사 기념비 세우고
고치현에 있던 안 의사 유묵 한국에 기증토록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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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광주 북구 삼각동 국제고등학교에서 니시모리 시오조 일본 고치현 일한친선협회 명예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20일 광주 북구 삼각동 국제고등학교에서 니시모리 시오조 일본 고치현 일한친선협회 명예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

“역사라는 것은 반드시 잊혀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도 역사다. 이제 새로운 교류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국과 일본이 해나가야 할 일이다.”

20일 광주를 찾은 니시모리 시오조(79) 일본 고치현 일한친선협회 명예회장의 얘기다. 그는 고치현 의회 10선 의원으로 2차례 의장을 역임한 그 고장의 대표적인 정치인. 한국에서는 고치현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 숨은 공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일 교류의 확대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그의 지론이었다. 현역 의원 시절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앞장섰던 일본 정치인 다케시타 노로부 전 총리에 감화돼 지난 1976년 한일친선협회 설립에 앞장 선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는 부친을 따라 조선으로 건너와 영면하기 전까지 목포지역 고아를 돌봤던 ‘목포의 어머니’ 윤학자(1912~1968·일본명 다우치 치즈코) 여사의 일대기에 깊은 감명을 받고 보다 적극적인 한·일 교류에 뛰어들었다. 윤 여사가 고치현 출신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국적을 떠나 인간애로써 고아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던 윤 여사의 이야기는 고치현 주민들에게도 큰 감동을 전했다. 1997년 의장이었던 니시모리 회장은 고치현 한 가운데 윤 여사의 기념비를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달 만에 2800만엔(한화 2억8000만원)이라는 거액이 모금됐다.

니시모리 회장은 “당시 일·한 합작으로 윤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사랑의 묵시록’이 나왔는데, 이를 현민들에게 보여줬다. 일본인이지만 한국의 고아를 헌신적으로 돌본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서 “성금은 기념비 설립과 일본의 고아원, 현에 기부에 한·일 교류 사업에 쓰이도록 했다”고 회상했다.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일제강점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역사 속 안중근 의사와도 마주치게 된다.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와 인연을 맺었던 검찰관과 변호사, 간수에 대해 알아갈 쯤 우연찮게 이들이 대부분 고치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일 교류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당시 고치현 출신 간수의 후손이 어느날 조부의 유품을 살피던 중 발견한 안 의사 유묵을 한국에 돌려보내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된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유묵이 그것이다.

또 다른 유묵의 존재를 알았던 니시모리 회장은 이를 보관 중인 사람을 찾아가 무려 10년 간 설득을 이어갔다. 안 의사 재판 때 취재에 나섰던 고치현 출신 기자의 후손이었다. 니시모리 회장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지난 2016년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 유묵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한 일본 정치인의 부단한 노력은 한국사회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15년 이낙연 전남도지사 시절 명예 전남도민에 위촉된 배경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 속에도 전남도와 고치현은 니시모리 회장을 매개로 꿋꿋이 교류를 이어갔다.

교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니시모리 회장은 이날 21년 전 본인이 직접 고치현과의 연을 맺어준 광주 북구 삼각동 국제고등학교를 찾았다. 그와 동행한 고치현 메이도쿠 고등학교 학생 수십여명은 한국 학생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국제고가 주최한 ‘2019 한·중·일 국제문화교류 행사’의 첫날을 맞았다.

니시모리 회장은 한·일 교류의 끈을 이어가고자 안 의사를 알리는데 진력하겠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에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고치현에 초청해 현민들에게 안 의사의 행보와 사상을 전파했다.

니시모리 회장은 “일본인 입장에서는 안 의사를 언급하면 아무래도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현재 한·일 관계는 정치적으로 결코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안 의사처럼 잊혀서는 안 되는 역사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