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째 미완의 진상규명… ‘시민의 힘’으로 밝힌다

●서른아홉번째 오월, 이제 미래로(5·끝) 좌절하지 않는 진상규명
광주청문회부터 5.18 진상규명특별법제정까지 난관 속 의미있는 성과
한국당 조사위원 추천 지연...18일 이전 출범 불투명
법 개정 잠정합의로 자격 미달 한국당 위원 임명 우려

345
지난해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5.18민주화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기념사업추진위와 광주 7대종교단체협의회가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 조속가동 및 역사왜곡 저지대책 수립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지난해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5.18민주화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기념사업추진위와 광주 7대종교단체협의회가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 조속가동 및 역사왜곡 저지대책 수립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최근 “마음속 십자가가 너무 무거웠다”던 김용장(72) 전 주한미군 정보관이 허장환(70) 전 505보안대 수사관과 함께 39년 동안 밝히지 못했던 5·18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짐작은 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한 신군부의 진압계획이 당시 기획 참여자와 보고자의 증언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5·18 진상규명을 향한 국민적 갈망이 39년 지나 사그라들었다면 이들은 과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매번 좌절됐던 진상규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5·18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광주청문회부터 전두환 재판까지

제도적 차원의 첫 진상규명인 1988년 11월 광주청문회부터 그랬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5·18에 대한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청문회 제도의 도입과 함께 5·18 광주 학살 관계자들을 온 국민 앞에 불러세웠다.

군 관계자들이 자위권 발동 운운하며 발포 명령을 부정하고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의 비협조로 조사결과보고서 하나 내놓지 못했지만, 피해자들이 5·18 당시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면서 은폐됐던 5·18의 참혹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995년 7월18일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와 공소시효 완료를 이유로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내렸을 때도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5·18 학살자 기소관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 시민모임을 결성해 전국 농성·집회를 벌였고 전국의 교수들도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항의 서명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5·18특별법 입법을 청원했다.

압력을 못 이긴 김영삼 정부는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법에 따라 1997년 4월18일 5·18 책임자들을 모조리 구속했다.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각각 무기징역, 징역 17년을 받았다. 17년 만에 시민들이 이뤄낸 쾌거였다.

하지만 5월의 피눈물이 다 마르기 전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를 내건 1997년 12월22일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어떤 사죄도 없이 풀려났고, 1998년 3월13일 김대중 정부 때 복권됐다.

● 국방부 과거사위부터 5·18진상규명특별법 제정까지

그렇게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지만 5·18 진실을 향한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재판 당시 밝혀내지 못했던 내용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노무현 정부가 받아 2005년 5월27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해당 병사의 진술 거부와 군 기록물 공개 거부로 최초 발포와 집단 발포 명령자, 실종자 규모 등을 밝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국방부 511위원회, 보안사 511분석반 등의 자료를 확보해 5공 청문회를 대비해 비밀리에 활동했던 80위원회 및 511연구위원회에 대한 의혹을 새롭게 제기했다.

허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일주일 후 12월13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 10층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발족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조위는 5·18 진압이 육해공 3군 합동작전이었음을 최초로 밝혀내면서, 육군이 광주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을 가했던 사실, 공군의 전투기가 폭탄 장착한 채 대기했던 사실, 해군까지 광주 출동을 대기하다가 해제됐던 사실 등을 확인했다.

이후 등장했던 암매장, 계엄군의 성폭력 의혹은 아직 특정하지 못한 발포 명령자와 행방불명자의 규모 등과 함께 진상규명의 과제로 부상했고 2018년 3월13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까지 끌어냈다.

지난했던 5·18 진상규명의 역사에 대해 전남대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제도 정치영역에서 진행한 5․18 진상규명의 과정은 정치권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는 사회적 압박에 의한 산물이었다”면서 “많은 난관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진상규명을 향한 부단한 노력과 지속적 요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 5·18진상조사위 출범을 앞두고

하지만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지난 9월 출범이 예정됐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는 자유한국당 조사위원 추천 지연으로 아직 구성도 채 안 된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5·18이 오기 전에 진상조사위 구성을 마무리할 것”을 주문했지만 한국당이 장외투쟁으로 국회를 떠나있어 사실상 18일 이전 진상조사위 출범은 물 건너간 셈이다.

새로 임명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회를 정상화한 뒤 5·18 관련 논의를 바로 추진하겠다”며 “홍영표 전 원내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진상조사위원에 관한 법 개정을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 합의된 내용을 존중해 5·18 진상조사위 속히 출범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법 개정을 통해 자격 미달로 탈락한 기존 한국당 추천위원이 진상조사위원으로 임명될 것이 점쳐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조진태 광주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폄훼 경력 있는 인사가 조사위원으로 포함되는 것이 걱정된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이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있는 이상 20대 국회 내 5·18에 호의적인 인사들로 조사위가 꾸려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21대 국회도 장담할 수 없어, 부족하더라도 조사위를 하루빨리 출범시키는 게 맞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한국당 조사위원이 5·18 진상규명을 방해하거나 보수세력이 북한군 개입 등을 주장하며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진상규명의 본질을 흐리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행인 것은 역사적으로 그랬듯 국민들은 앞으로 출범될 5·18 진상조사위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 진실까지 몇 발자국 남지 않았다.

이한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