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서른아홉번째 오월은 어떤 의미인가요?

질문>> 1> 당신에게 5·18은 무엇인가. 2> 미래로 향하는 5·18이 되려면. 3> 당부하고 싶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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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환한 봄이었으면 합니다.

더 이상은 먹먹하지 않은 풍성한 오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밝혀져야 할 것들이 밝혀지는…

더는 눈물로 맞이하지 않는 그런 오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전남일보가 물어보았습니다. 서른아홉번째 오월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고.

오월을 경험한 사람도, 오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여기에 그들의 오월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 1면 QR코드에 접속하시면 해당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실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협조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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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당신에게 5·18은 무엇인가. 2〉 미래로 향하는 5·18이 되려면. 3〉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가 들은 5·18

 아버지에게 5·18을 들은 광주 토박이 김소연 (전남대 2년)씨

 1〉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많이 접했지만,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그러다 아버지가 5·18 당시 중학생이셨는데 직접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5·18이 이런 일이었구나’ 라는 걸 자세히 알게 됐다.

 수업시간 읽었던 역사책에서는 5·18이 마치 동화책 읽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아버지가 직접 최루탄 맞고 눈가에 치약을 발랐다는 걸 들으니까 이게 단순히 책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이상 5·18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 이웃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2〉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 구조 안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중 하나로 어떠한 이유든 폄훼돼선 안된다. 5·18 민주화운동은 대통령직선제를 이끌게 했던 6월 민중항쟁으로 이어지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폄훼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5·18 민주화운동 왜곡, 폄훼될 수 없도록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교과서에서 5·18을 접한 ‘서울 토박이’ 이수민(전남대 4년)씨

 1〉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광주 내려오기 전인 작년까지만 해도 5·18을 교과서에서만 접했다. 그냥 ‘민주화 운동’,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역사를 전공하게 되고 또 광주에 와서 5.18에 대한 기록들을 직접 따라 가보니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하루 빨리 진상규명이 돼야 하는 슬픔인 것을 알았다. 또 유가족들의 아픔도 이해해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작년에 5·18 전야제를 갔었는데, 영상을 보고 사진도 보니까 5·18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 내 또래였다.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면 만약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나는 절대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고 집안에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의 용기를 더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거고. 내가 지금은 이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알고 배운다면 언젠가는 저도 제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2〉 5·18이 미래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국화가 되어야 한다. 사실 서울에 있을 때 전혀 이 사실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5월이 돼도 평소랑 똑같았다.

 광주에 사는 사람들만 이렇게 기억하고 아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이 알기 위해서 정부도 어떤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3〉 지난해 오월 어머니들을 뵌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기억하시고 힘들어하시고 슬퍼하셨다. 3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듯이, 그 분들이 이 노력들로 인해 위로를 받는 오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5·18도 중요하지만 취업도 걱정인 취준생 김선찬(4년)씨

 1〉 기억해야하는 역사다. 아직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안됐고, 그 전에는 5·18 자체가 삶에 와 닿을 수 있는 계기도 없었고 역사책에서 배우는 사건일 뿐이었다. 20대들에게는 취업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국가유공자에 가산점이 붙으니까.

 2〉 역사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과거의 일들이 앞으로의 일들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돼야 한다.

 3〉 5·18은 다시는 일어나서도 안 되고 잊혀지지 않아야 할 역사적인 사건이다.

내가 겪은 5·18

 5·18 당시 시위를 이끈 전남대생 김태종씨

 1〉 1980년 5월 전남대 4학년이었고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래서 신군부가 불법적인 쿠데타를 일으키니까 당연히 거기에 항의해야된다 생각하고 참여했다.

 주로 시위 참여와 신군부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 작업을 했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뿌렸고 공수부대가 물러난 23일부터 26일까지 도청 앞에서 열린 시민궐기대회 사회를 봤다.

 5·18은 학살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 시위하지도 않은 나이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들, 그리고 체포된 사람들을 살해했다. 명백한 양민학살이었다.

 2〉 원래 5·18은 민주화투쟁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생존 투쟁이었다. 신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국가 폭력을 행사한 것이니까. 굉장히 우리 국가의 불편한 진실인데 그것이 지금은 정치적인 것으로 변질이 많이 됐다. 그래서 국가 폭력의 민낯, 그 당시 사람들의 인간이고자 하는 본질적인 모습 그런 것들이 드러나야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그래도 광주지역 언론들이 5·18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는 것이 굉장히 고맙다. 언론들이 나서고 끊임없이 관심을 촉구해야 숨겨진 진실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한다.

 3〉 5·18은 광주 사람들이 전 도시적 차원에서 살상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이 목숨 걸고 싸워준 덕분에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즉, 다시는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사 독재자가 나타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5·18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5·18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엄군 총탄을 피해 겨우 살아난 스무살 처녀 김순이씨

 1〉 1980년 5월26일과 27일 나는 전남도청에 있었다. 계엄군들이 새벽 3시경 도청을 진압하기 직전 수습대책위원장이 여성들은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여성들 13명은 총소리가 막 들려오는 상황에서 빠져 나왔다. 겨우 도망쳐 간 곳이 동명교회였다. 그곳 유치원에서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거기서 나오는 데 계엄군이 총을 들이대면서 “너희들 어디가” 그러더라. 얼른 전대병원 간다고 둘러댔다. 간호사라서 전대병원에 출근하러 간다고. 그렇게 살아 남았다.

 그렇기에 나에게 5·18이란 앞으로 남은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주어진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건 제가 해야 되는 책임감, 의무감 그런 숙제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5·18은 광주에 살면서 광주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한 돌아가신 분들이랄지 그런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후대에 올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허나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후대들에게 알려는 주고 싶은데 계기가 많지 않다. 앞으로 여성단체랄지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서 5·18을 올곧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옛 전남도청서 겨우 살아난 어머니의 딸 김보람씨

 1〉 무섭고 가슴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특히나 내 어머니가 5·18에 참여했고, 어렸을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어렸을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이 잘 안됐었다. 그게 그렇게 큰일인지 몰랐었는데 이제 역사적으로나 배우고 영화나 티비에서 직접 그런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실감하게 됐다.

 특히나 그때 어머니 나이를 생각해보면 20살, 21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더 하겠지만 광주에 사는 내 친구들만 봐도 5·18을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냥 좀 무심하다 그럴까 광주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잘 모르는 친구들도 있고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저 5·18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 하나이지 실제로 나에게 와 닿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왜곡이나 폄훼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아직 정확하게 확립이 되지 않은 느낌이다. 결국 진상규명을 통해 5·18을 명확하게 확립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3〉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아직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굉장히 안타깝다. 앞서 말했듯 그런 것들이 제대로 정립돼야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올바르게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