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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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뜨거웠던 해였다. 그해 4월26일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사흘 후 29일 전남대 박승희, 5월1일 안동대 김영균씨가 분신했다.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 이어졌다. 5월3일 경원대 천세용, 5월8일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5월10일 전남대에서 윤용하, 5월18일 연세대 굴다리 위 철길에서 이정순, 보성에서 고교생 김철수, 5월22일 전남대 병원 영안실 옥상에서 정상순씨가 분신했다. 5월25일 성균관대 김귀정씨가 시위과정에서 최루탄 세례와 백골단의 무차별 구타 속에서 압박 질식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안타까운 젊은이들의 죽음에 당시 노태우 정권은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정원식 외대 교수를 총리서리로 임명하는 개각으로 분위기 쇄신을 노렸다.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밀가루 달걀 세례’가 불러온 결과다. 6월3일 고별강의를 위해 외대를 찾았던 정원식 총리가 학생들로부터 밀가루 달걀 세례를 받은 사건이다. 문교부 장관 시절 전교조 교사 해직을 주도했다는 게 이유였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정국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돼 버렸다.

언론을 통해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총리서리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도됐고, 학생들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학생운동권은 ‘패륜아’로 매도됐고, 노동자들 파업 기세도 학생들 가두시위 기세도, 운동권의 노태우 정권 비판도 힘을 잃었다.

뜨거웠던 그해 5월 봄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6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민자당은 압승했다. ‘정원식 효과’였던 셈이다.

얼마 전 광주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물세례를 받았다. 황 대표의 물세례를 보면서 언뜻 떠올랐던 ‘정원식 사례’다.

황 대표의 물세례를 두고 일부 보수언론은 ‘반대한민국 세력이 백주에 야당 대표에 물벼락’이라며 황교안과 자유한국당의’의도’에 부응했다. ‘보수 결집’을 염두에 둔 계산된 행동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5·18기념식 참석 ‘강행’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다. 그의 기념식 참석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틀리지 않다. 당연한 목소리고 정당한 요구다. 다만 그들의 ‘꼼수’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광주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장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