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꽃 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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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

300여 년 전 조선시대에 큰 흉년이 들었다. 갓난아기들이 젖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어미의 빈 젖을 물고 죽어갔다. 아비들은 아기의 시체를 곱게 싸매 지게에 짊어지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양지 바른 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아비는 곧바로 돌아서지 못하고 아기 무덤 앞에 꽃이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살아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의미였다. 전북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부근 천연기념물 제214호 ‘평지리 이팝나무 군(群)’은 그렇게 조성됐다.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이팝나무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5~6월에 나무 전체를 뒤덮는 하얀 꽃이 핀다. 큰 것은 높이가 20m에 달하고 노거수가 많은 걸 보면 수명이 꽤 긴 나무다. 우리나라에는 200~500년 된 노거수 20여 그루가 현존하고 있다. 그 가운데 8주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에 소재한 이팝나무는 수령이 5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36호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정월 대보름날 모여 한해의 안녕을 비는 당산목 역할도 한다.

이 나무의 이름이 이팝나무가 된 데는 쌀밥과 연관이 있다. 이 나무가 꽃이 필 때는 전체가 흰 꽃으로 덮여서 고봉의 쌀밥(이밥)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이밥이 이팝으로 발음이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농촌에는 이 꽃이 만발하면 벼농사가 잘 되어 쌀밥을 먹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24절기의 하나인 입하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고 부른 것이 입하나무, 더 나아가 이팝나무가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이 나무를 ‘눈꽃나무'( Snow flower)라고 부른다.

쌀밥나무인 이팝나무가 광주에서는 5월 영령들을 추모하는 꽃이 되고 있다. 요즘 광주시내와 5·18 묘지 가는 길 등에는 하얀 이팝나무꽃이 피어 장관이다. 광주시가 지난 1995년부터 대대적으로 심은 것이다. 5·18 무렵에 소복을 입은 듯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는 광주 정서와 닮았다. 이 참에 아예 은행나무인 광주의 시목(市木)을 이팝나무로 바꾸면 어떨까. 더 많은 이팝나무를 심어 5월 광주가 하얗게 변한다면 추모의 의미와 함께 또 다른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상수 주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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