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얻은 행복한 삶,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보성 벌교 마동마을 귀촌인 나양숙씨
화려했던 서울살이 접고 7년전 내려와
심리상담사 자격증·원예치료 교육 수료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서 힐링 제공
마을 환경개선도 앞장… 공모사업 선정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소득 창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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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서울에 살다 보성군 벌교읍 마동마을에 귀향한 나양숙씨.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7년전 서울에 살다 보성군 벌교읍 마동마을에 귀향한 나양숙씨.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보성군 벌교에 있는 마동마을은 침체된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달랐다. 마을 초입부터 활기가 느껴졌다.

황토와 돌로 정겨우면서도 아름다운 돌담을 쌓는가 하면, 주민들이 쉬어갈 정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깎는 사람들도 여럿 보이는 등 마을 곳곳이 ‘꽃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노인들만 남아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가 뭘까 궁금해하던 중 동네 할머니들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씩씩하게 인사하는 나양숙(60)씨가 눈에 띄었다. 나씨를 대하는 노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언뜻 마을 토박이처럼 보이지만 나씨는 파란만장한 서울살이를 접고 7년 전 고향에 돌아온 귀촌인이다. 나씨는 마을 노인들의 안부를 살뜰히 챙기는 것은 물론, 원예치유농원을 운영하며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보살피고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990년대 웨딩 사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서울에서 웨딩숍을 운영했던 나양숙(왼쪽에서 네 번째)씨.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1990년대 웨딩 사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서울에서 웨딩숍을 운영했던 나양숙(왼쪽에서 네 번째)씨.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살이 접고 2011년 귀향

나씨는 13세 때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다. 성인이 된 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10년 넘게 웨딩드레스 숍을 운영했다. 1990년대는 웨딩 사업이 호황을 누려 나씨의 웨딩숍도 번창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웨딩드레스 모델이 되기 위해 나씨를 찾아올 만큼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나씨의 사업도 위기를 맞았다. 결국 몇 년을 버티다 사업을 정리했는데, 가정불화까지 생기면서 애써 감춰왔던 슬픈 감정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나씨는 “엄마가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다섯살 때쯤 알게 됐다. 엄마 없이 외롭게 자란 슬픔이 가슴 깊숙한 곳에 맺혀 있다가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엄습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기독교 심리상담 과정을 밟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원예치료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웨딩숍 사업을 하며 꽃으로 일터 주변을 꾸미면서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화려하지만 치열했던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지난 2011년 보성에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열었다.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운영하는 나양숙씨는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꽃 심기와 향긋한 꽃차 시음으로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도와준다.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운영하는 나양숙씨는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꽃 심기와 향긋한 꽃차 시음으로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도와준다.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나씨의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에 방문한 체험객들이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국화를 수확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나씨의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에 방문한 체험객들이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국화를 수확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나씨의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방문한 체험객들이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국화꽃을 수확하는 모습. 편집에디터
나씨의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을 방문한 체험객들이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국화꽃을 수확하는 모습. 편집에디터
엄마품원예치유농원에서 생산한 국화차.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엄마품원예치유농원에서 생산한 국화차.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자연 속에서 힘든 마음 치유”

나씨의 ‘엄마품원예치유체험농원’은 2만3140㎡(7000평) 규모의 밭으로 매실과 동국(冬菊) 등이 자라고 있다. 매년 국화가 만개하는 가을이면 꽃을 수확해 덖어 차로 만든다.

국화가 피는 가을이면 농원은 손님맞이로 바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농원을 찾아 꽃차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한다.

특히 농원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나씨는 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그리 특별한 활동은 아니라고 말한다. 밭에서 꽃을 심으며 자연을 느끼고, 실내에서 꽃차를 마신다.

그는 “어릴 적 흙에서 놀던 대로 흙을 만지게 해주는 것이 기본 체험 활동이다. 특별한 치유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도시의 삶에 찌들어 흙을 만지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이들은 무척 즐거워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사연을 말이나 글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나씨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편지로 담아내고 있는 체험객들. 편집에디터
나씨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편지로 담아내고 있는 체험객들. 편집에디터

나씨는 농원을 운영하며 기구한 사연을 지닌 체험객들도 많이 만났다.

그는 “어느 날 5·18 때 힘든 일을 겪은 분이 농원에 찾아왔다. 1980년 5월, 청년이었던 그분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고 광주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그 후 뉴질랜드로 갔다가 귀국했는데,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힘겨워했다”면서 “그분이 마음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면서 편지를 쓰고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회상했다.

체험객들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면 처음 올 때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농원을 나가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농촌체험 휴양마을’ 조성 계획

나씨가 사는 마동마을은 수백 년을 이어온 양씨 집성촌으로 양사언 선생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산업화로 많은 주민이 떠나고 농사를 짓는 이들만 남아 어렵사리 터전을 지키고 있지만, 다들 연로한 탓에 생계를 유지하는 농사 외에 마을의 낡은 것들을 바꿀 여력이 없었다.

나씨는 요즘 자신의 농원일 뿐만 아니라 마을을 가꾸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귀촌 직후 흉물처럼 남아있는 빈집들이 아름다운 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있어 거슬렸다”면서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보성군이나 전남도에서 관련 공모사업을 찾아보라’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나양숙씨가 추진해 선정된 '새뜰마을사업' 예산으로 낡았던 마동마을 주택의 담장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나양숙씨가 추진해 선정된 '새뜰마을사업' 예산으로 낡았던 마동마을 주택의 담장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나씨는 먼저 노후화가 심각한 마을의 주거환경개선에 나섰다. 그는 지난 2016년 마을환경개선 국가공모사업인 ‘새뜰마을사업’을 신청했다.

그는 사업신청서를 내기 위해 집집마다 주거환경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을씨년스러운 빈집부터 재래식 화장실, 낡은 담장 등 마을엔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또 보성군 관계자 앞에서 발표하며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나씨의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마동마을이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총 3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지난 2017년부터 마을 곳곳에서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됐고, 지난달 완공됐다.

나씨는 “‘새뜰사업’으로 빈집과 담장이 깔끔하게 변하고 화장실이 집집마다 새로 설치되니 어르신들이 ‘참 고맙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변하는 마을환경을 보고 뿌듯해한다”고 자랑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씨는 요즘 마동마을을 활기가 넘치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농촌체험휴양마을’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동마을 농촌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될 다목적 회관인 '마동감성'이 최근 완공됐다. 김화선 기자 hwasun.kim@jnilbo.com
마동마을 농촌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될 다목적 회관인 '마동감성'이 최근 완공됐다.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나씨가 기획하고 있는 체험 마을의 테마는 ‘마동감성(마동마을의 감성)을 찾아 떠나는 시골 여행’이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동감성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딸기 따기 체험’, ‘컬러 꽃밥 체험’, ‘국화차 시음’, ‘마을 둘레길 탐방’ 등 계절별 체험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마을환경개선사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할 계획이다.

나씨는 “시골살이로 제가 안정을 찾은 것처럼 다른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더불어 삶의 터전인 마을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보성=문주현 기자 [email protected]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