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부추기던 한 청년, 돌연 권총 꺼내 “손들어”

5·18 때 편의대 활동 피해자 최초 증언
30대男 시위대 합류 ‘전두환 물러나라’ 구호 가르쳐
검문소 앞서 갑자기 “이놈도 시위자야” 군인에 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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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에서 1980년 5월 당시 광주서석고 3학년이었던 오일교씨가 편의대 활동에 따른 피해 증언을 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2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에서 1980년 5월 당시 광주서석고 3학년이었던 오일교씨가 편의대 활동에 따른 피해 증언을 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

“이 놈도 시위자야.”

1980년 5월, 광주 서석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오일교(58)씨는 39년이 지난 지금도 옆구리를 찌르던 권총의 촉감과 ‘손 들어’라는 위협적인 명령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더욱 혼란스러웠던 건 그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이 바로 이틀간 함께 “전두환 물러가라”를 외쳤던 시위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였던 이 남성은 오씨를 ‘시위자’라 지칭하며 검문소 계엄군에게 인계하고 사라졌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돼 광범위하게 운용됐던 사복 차림 선무공작부대, 이른바 ‘편의대’ 활동에 의한 피해자의 육성 증언이 나온 것은 39년 만에 처음이다.

본보가 지난해 6월12일자 6면 ‘광주 MBC 방화는 민간인 위장한 군인들 소행’이라는 기사에서 편의대를 주장한 지 1년여만이다.

2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에서 1980년 당시 서석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들의 증언을 담은 ‘5·18, 우리들의 이야기’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오씨의 사연은 이 책 176~189쪽에 걸쳐 ‘상무대 영창에 갇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편의대는 가발과 사복을 갖추고 시민들 사이에 파고들어 ‘북한군 개입’, ‘경상도 군인 투입’ 등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일반 시민들을 선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 조직이다.

신군부 세력이 펴낸 ‘제5공화국 전사’, 육군본부가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 ‘계엄사’ 등 5·18이 등장하는 각종 군 문서에 광범위하게 적혔지만 정작 편의대가 광주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 규모와 실체가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간 ‘전남도청 독침사건’, ‘MBC 건물 방화사건’ 정도가 편의대 공작의 결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날 새로운 피해 증언이 나온 것이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던 남성.’

오씨는 39년 전 기억을 더듬어 가며 당시 자신을 계엄군에 인계한 편의대 추정자를 묘사했다. 오씨가 시위대에 참여한 것은 1980년 5월20일, 시민들을 따라 시위대 버스에 올라탔고 거기서 처음 이 남성을 봤다.

시위대에 ‘김대중을 석방하라, 전두환은 물러나라’ 등 구호를 가르친 인물이기에 인상이 남았던 것이다. 시위가 벌어진 전남대 정문으로 가자고 부추긴 것도 그였다.

오씨는 “당시만 해도 일반 시민들은 전두환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이 남성이 진두지휘하고 나서니 다들 따르는 분위기였다”며 “그가 전남대 학생들이 갇혀있다며 구조하러 가자고 해서 버스가 그쪽을 향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전남대 시위현장에서 최루탄 범벅이 된 오씨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정동 집으로 귀가했다가 다음 날인 21일 새벽 집을 나섰다. 인근 화정사거리에서 또다시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위대에 합류한 오씨는 그날 오후께 큰형에게 발각돼 귀가하라는 말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날 버스에서 본 남성과 우연히 마주친 게 이때였다.

오씨는 “국군통합병원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전날 시위를 하다 귀가했기 때문에 이후 상황을 물어보는 등 대화를 나누며 같이 걸었다”며 “상무대를 지나 서창다리에 이르렀을 때 검문소 앞에서 갑자기 내게 ‘손 들어’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남성의 한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오씨는 그가 검문소에 근무 중이던 군인들에게 “이 놈도 시위자야”라고 말한 뒤 인계했다고 증언했다. 그 뒤로 수갑과 포승줄로 구속돼 상무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오씨는 “그 남자를 믿고 형처럼 따르면서 함께 활동하고 다녔다니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며 “최근에서야 그가 보인 행동들이 5·18 때 시위대로 위장해 공작을 펼친 편의대여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39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누구도 편의대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편의대를 정밀 해부하면 장막에 갇힌 광주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향후 5·18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혀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