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아홉 번째 이야기 – ‘인간’을 생각한다.

펠릭스 누스바움(Felix Nussbaum, 1904-1944), 절망의 끝, 그림으로 남은 인간.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 1954~. 탄자니아生), 인종 너머 동등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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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말한다.

연둣빛 새싹들이 하나둘 싹을 틔우더니 어느새 온통 초록빛이 넘실댄다.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늘 변함없고, 여느 인간에게나 공평하다. 누군가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도, 또 누군가만을 위해 더 많은 꽃을 피워내지도 않는다. 허나 인간은 인간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한 생명의 존귀함은 차등일 수 없지만, 과거 역사 안에서, 또 현재에도 인간은 인간에게 균등하지 않은 존재임을 쉬이 볼 수 있다. 오월의 싱그러운 초록빛 앞에서 ‘인간’이라는 단어를 두고 이야기하기엔 짐짓 무거울 수 있으나, 마냥 푸릇푸릇할 수만은 없는 오월이기에 한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두 작가의 그림을 들여다본다.

펠릭스 누스바움,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증명.

높은 담벼락 끝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길, 한 남성이 불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가슴에 새겨진 노란별과 손에 쥔 신분증. 당당하게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불안함과 걱정스러움으로 내민 손에 들린 신분증엔 ‘JUIF-JOOD’라는 유대인임을 알리는 글씨가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림 속 인물은 펠릭스 누스바움, 그의 자화상이다. 누스바움은 인간이기 이전에 유대인이었다. 독일에서 살았기에 독일 국적을 가졌지만, 유대인의 꼬리표는 늘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누스바움은 네덜란드 국경 근처 독일 마을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 당시 기병대에 입대해 독일을 위해 싸우기까지 한 충성스런 국민이자 유대인이었다. 누스바움도 특별할 것 없이 자연스레 독일인으로 자라났다. 허나 나치 정권 아래 그의 모든 국적은 모호해졌다. 그저 원래 유대인이었지 한 인간일 수 없었다. 벨기에로 피신했지만, 독일의 침공에 ‘적대적 외국인’이 되었고 피신은 거듭되었다. 은둔생활 속에서도 그림은 누스바움의 작은 희망이었다. 자신의 비극적 삶은 하나하나 그림에 담겨갔다. 나치에 체포되고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하기까지 누스바움은 한 인간이기 이전 그저 유대인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을 때 그는 세상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작품을 지인에게 맡겼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더라도 내 그림은 죽이지 말아주게.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나’라는 말을 전했다. 누스바움은 그저 한 인간으로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처절함은 그림 <수형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배설의 욕구마저 감시 하에 이뤄지는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처절하게 다가온다. 몸을 채 뉘이기도 힘든 은신처에서 결국 게슈타포(나치 독일 정권의 비밀국가경찰)에 잡히기까지 정신착란에 가까울 정도로 그림에 집착하며 꽤 많은 양을 남겼다. 누스바움에게 그림은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 터, 절망의 끝에 선 한 인간은 그렇게 그림으로 남았다.

펠릭스 누스바움 1943, 캔버스에 유채, 독일 오스나브뤼크 펠릭스 누스바움 하우스 소장. 편집에디터
펠릭스 누스바움 1943, 캔버스에 유채, 독일 오스나브뤼크 펠릭스 누스바움 하우스 소장. 편집에디터
펠릭스 누스바움 편집에디터
펠릭스 누스바움 편집에디터

루바이나 히미드, 한 인간의 가치는 같다.

“터너상 사상 첫 흑인여성”, “63세로 최고령 수상자 기록”, 그녀를 따라붙는 몇 개의 수식어들이다. 언뜻 영광스런 수식어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이란 단어의 이면은 그 이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국에서 1984년 터너상이 제정되고 30여 년간 ‘흑인’과 ‘여성’은 그 반열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루바이나 히미드는 탄자니아 태생의 흑인여성예술가이다. 흑인이고 여성인 인간. 그래서일까, 그녀는 사회 속 많은 문제들 중 식민역사와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줄곧 그려왔다. 무겁고도 마음을 짓누르는 주제들이지만, 예술이란 옷을 입은 작품들엔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 다시 생명력이 부여된 듯하다.

작품 <돈의 명명 Naming the Money 2017>은 18세기 유럽 궁정에서 일했던 노예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 사람 크기의 모형에 밝고 다양한(다채로운) 색상으로 채색된 100여개의 구조물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모두 흑인으로, 이들은 노예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흥겨워하기도 하며,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수행해가는 그저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질 뿐이다. 또 다른 작품 , 등의 그림에서도 흑인들은 고유한 하나의 인간이다. 히미드는

스스로를 ‘흑인예술가’, ‘페미니스트’라 자저하며 인종과 인간을 넘어 사회 속 불온한 구조들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을 이어간다. 흑인이면 어떻고, 여성이면 어떠한가, 모두 한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불평등하고 불온한 사회가 낳은 부조리함은 히미드의 당당하고 용감한 메시지와 감각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색채들을 안고 다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한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

Installation view_from Navigation Charts_Spike Island_Bristol_2017 편집에디터
Installation view_from Navigation Charts_Spike Island_Bristol_2017 편집에디터
Lubaina Himid's Man in A Shirt Drawer (2017&ndash;18). Photo by Andy Keate, courtesy of Hollybush Gardens Gallery. 편집에디터
Lubaina Himid's Man in A Shirt Drawer (2017&ndash;18). Photo by Andy Keate, courtesy of Hollybush Gardens Gallery. 편집에디터
Ball on Shipboard, 2018 Lubaina Himid.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편집에디터
Ball on Shipboard, 2018 Lubaina Himid.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편집에디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존엄한 우리.

불평등하고도 불온전한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마음에 파고든 불편한 진실들은 그림이 되었다.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진실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감시하며, 위에 서고자 하고 아래 내려놓고자 한다. 자연도 시간도 인간에게 공평하건만 인간만이 인간을 지배했으며, 그 불편한 진실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사라진 인간다움은 다시 처절하게 인간에게 외친다. 세상 그 무엇보다 존귀한 단어 ‘인간’, 그 이름 아래 불평등할 게 뭐 있냐고. 남성이고 여성이건, 얼굴색이 다르건 같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음에 규정되는 인간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똑같은 한 ‘인간’이지 않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