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봄날의 혼인, 잔치음식의 인문학

300
1-진달래화전-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1-진달래화전-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봉채떡은 왜 만들까

찹쌀 3되와 붉은 팥 1되로 찰시루떡을 했다. 2켜다. 중앙에는 대추 7개를 둥글게 돌리고, 그 가운데 밤 하나를 놓았다. 떡시루의 술이 바깥원이요 안으로는 팥이 원이며 7개의 대추가 또한 원이다. 찹쌀의 흰색을 더하니 마치 여러 개의 원이 겹을 이룬 듯하다. 사과에 비유해본다. 사과껍질이 떡시루의 술이라면 안으로 꽃받기가 있고 씨방이 있으며 배(씨앗)가 있다. 감을 잘라본다. 외과피(껍질)가 있고 중과피, 내과피로 이어져 씨앗이 들었다. 시루 가운데 밤 한 톨을 놓으니 마치 이러한 과실과 씨를 닮았다. 하나의 큰 씨앗을 형용한 것이리라. 이를 봉채떡 혹은 ‘봉치떡’이라 한다. 봉차(封茶)라는 말에서 왔다. 결혼하기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채단과 예물을 보내던 의식, 차(씨앗)를 보내던 의례다. 지금도 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그리 하는 모양이다. 차나무는 옮기면 죽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정절을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씨앗이 무성하여 자손번창을 바라는 마음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신부가 신랑댁으로 들어올 때 대문 밖에서 바가지를 발로 밟아 깨트리는 의례를 한다. 장례 때 관을 들고 방 밖을 나가며 바가지를 밟아 깨트리는 것과 같다. 남도 해안 지역에서는 새끼줄(금줄)로 대문을 막아두고 뛰어넘게 한다. 이전의 세계를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나는 이를 죽임과 살림의 의례로 설명해왔다.

일생에 다섯 개의 주머니(五囊)를 받는 세 번의 기회

중매를 통해 궁합을 보고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 혼인을 결정하면 납폐(納幣)로 이어진다. 요즘말로 하면 함보내기다. 예물을 드린다는 뜻이다. 함에는 다섯 개의 주머니, 오낭(五囊)을 넣는다. 첫 번째 주머니에는 목화씨를 넣고 두 번째 주머니에는 오곡을 넣는다. 목화씨는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오곡은 쌀, 보리, 조, 콩, 기장 등을 넣는다.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오곡은 부귀와 다산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고추 주머니, 네 번째는 숯주머니다. 모두 악하고 흉한 것들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는 동전주머니를 넣는다. 부귀공명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오낭(五囊)은 혼인 때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일생에 다섯 개의 주머니를 받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 출생(돌)과 혼인, 장례다. 돌에는 까치두루마기나 오방장두루마기를 입힌다. 까치두루마기는 분홍이나 보라색으로 하고 색동 소매를 단다. 오방장두루마기는 다섯 방위의 색깔에 따라 옷을 꾸민다. 돌옷에 두르는 돌띠 양쪽에 주머니를 셋, 혹은 열두 개를 달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내용물이 다르긴 하지만 대개 오곡, 목화씨, 솜, 동전 등을 넣어준다. 장례 때는 어떻게 할까? 망자의 머리카락, 양 손톱, 양 발톱을 조금씩 깎아 주머니에 담고 입관할 때 넣어드린다. 숨은 끊어져도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은 일정한 시간 자라기 때문이다. 죽었으되 죽지 않은 증표니 곧 생명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을 죽음과 대비되는 삶, 곧 재생의 의미로 해석해왔다. 그런데 왜 다섯 개를 강조할까? 침윤된 음양오행의 관념들이 의례 절차와 의복 혹은 공간구성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위계질서를 재구성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정착으로 이어져왔다.

숭어 놓고 대추 놓고 초례상을 차려

혼례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부간 겉궁합과 속궁합이 있듯이 음식에도 겉궁합과 속궁합이 있다. 우리 안에 침윤된 음양오행의 의미들을 음식재료(레시피)의 조합과 장식(데코레이션)으로 구성해두었다. 사례편람으로부터 강제되는 원리원칙이 있으나 지역에 따라 가문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 여성 중심의 의례는 내 지난칼럼 ‘순칭록’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의례음식 중 남도지역의 표본이 될 만한 사례를 들어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두었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의례음식장 이애섭 선생의 초례상을 참고한다. 광주든 전주든 남도지역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합하여 초례 혹은 대례라 한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은 화병 한 쌍, 촛대 한 쌍, 흰쌀 두 그릇, 닭 암수를 보자기에 싸서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밤, 대추, 목화씨, 숭어, 술잔을 놓는다. 남도 해안지역에서는 소나무 대신 사철나무, 동백나무를 꽂기도 한다. 목화씨는 정절을 의미하고, 대나무와 소나무는 절개를, 쌀과 닭, 대추, 밤 등은 다산을 의미한다. 용떡은 부귀를 상징하는데 남도지역에서는 올리지 않는 것으로 보고된다. 청실홍실은 음양의 또 다른 표현이니 일심동체를 의미한다. 전주지역에서는 초례상의 북쪽에 청보자기에 쌓은 암탉을 놓고 남쪽에는 홍보자기에 쌓은 수탉을 놓는다. 북쪽부터 북어, 대나무, 사과, 배, 적, 곶감, 밤, 대추, 소나무, 사철나무, 북어 순으로 놓는다. 남도지역에서 북어 대신 숭어를 사용하는 점이 이채롭다. 지역성 탓이다. ‘지단닭’이든 생닭이든 결혼식에 닭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부가 시댁으로 떠나기 전 닭이 알을 낳으면 좋은 징조로 여겼던 까닭은 무엇일까? 사위가 오면 암탉을 잡아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닭이 울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관념적 상징과 서사의 재구성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닭이 봉황으로 확장되었다는 점도 다시 확인해 둔다. 관련해서 따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다.

폐백은 왜 하는 것일까

근래의 결혼식은 국적불명이라 할 만큼 많이 변화했다. 혼인(婚姻)은 문자 그대로 저물녘에(昏) 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말이 일제 때 생긴 조어라면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고려 때의 ‘결혼도감’은 어떻게 설명할까? 불필요한 논쟁이다. 혼례식 중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해오는 의례가 폐백(幣帛)이다. 신부가 신랑의 부모께 공식적인 인사를 하는 의례이지만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처가살이를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석은 좀 달라진다. 신부 부모에게도 예를 갖추는 의례였기 때문이다. 대추고임은 양쪽에 잣을 박고 실로 꿰어 탑처럼 쌓아 시아버지께 드린다. 육포나 편포는 시어머님께 드린다. 가운데에는 봉채떡과 마찬가지로 밤을 올린다. 대추의 붉은 색은 양(陽)을 의미하고 밤의 흰색은 음(陰)을 의미한다. 폐백닭은 지단, 실고추와 은행, 대추 채 썬 것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근자에는 폐백닭 대신 오징어오림 원앙닭이나 문어오림 봉황을 올리기도 한다. 오징어나 문어로 장식하는 것은 바다와 관련된 지역성을 나타낸다. 찬합에 담아내는 구절판이 있다. 문어오림이나 육포, 곶감쌈, 호두튀김, 밤초, 대추초, 잣솔, 은행 꼬지, 다식 등을 담는다. 본래 구절판은, 가운데 칸에 밀전병을 담아 둘레의 음식을 조금씩 전병에 싸서 먹는 그릇이다. 이것이 폐백상에 놓임으로써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시집가서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 벙어리 3년으로 9년을 참고 견디라는 의미란다. 그럴까? 혼례음식뿐만이 아닌 음양오행의 전래적 번역들이다.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우실하 교수에 의하면 3수분화 문화권에서는 9를 완성의 수로 이해하고 각종의 의미들을 부여해 온 바 있다. 구절판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피카레스크식 서사다.

봄날의 혼인, 전래의 번역에서 전통의 해석으로

시경에 의하면 봄은 연애하는 계절이다. 춘향이가 춘심이 도도하여 광한루에 나가 그네를 뛰다가 이도령의 눈에 띠지 않았나?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봄은 그렇게 청춘남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계절이다. 들판의 꽃들처럼 가슴이 타오른다. 봄바람 났다는 형용이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곧바로 결혼하지 않는다. 가을걷이까지 기다린다. 가정형편과 집안 어르신들의 이해관계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전망 등, 그 과정이 문화권별로 문명권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사례편람에 의하면 중매를 하고 상당한 기간 혼인 준비를 한다. 의례뿐이겠는가. 음식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준비해야 할 음식이 있고 일시에 준비해야 할 음식들이 있다. 모두 궁합을 맞추려 한다. 겉궁합은 재료의 색깔과 모양으로 조화를 꾀하는 일이다. 속궁합은 레시피의 궁합이다. 곡식과 과일과 제반 향토음식들의 특질을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구성하고 배치한다. 재료들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장식의 효과도 떨어진다. 잔치음식을 보는 두 시선이 있다. 전통의 맥락을 이해하는 눈, 이데올로기화된 맥락을 극복하는 눈이 그것이다. 문제는 침윤된 관념으로서의 음양오행을 어떻게 우리 시대로 소환해내고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가에 있다. 예컨대 음양의 이론을 우열이나 서열, 권위나 차별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래의 것에 대한 번역일 뿐이다. 맞니 틀리니, 높니 낮니, 지위고하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고 모양이 달라진다. 여성은 여전히 일부종사를 강요받고 시댁귀신 되기를 강제 받는다. 단순 번역이다. 음양은 우열이나 서열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다. 역(易)의 본래 취지는 대대(對待)에 있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는 원리, 대칭성이 원칙이다. 고정된 것을 혁파하고 변화생동하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혼인은 이전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의례다. 오낭(五囊)을 받는 일생의 세 시기를 상고해본다. 돌과 장례의식이 그렇고 동학의 향아설위(向我設位)가 그러하다. 연애하고 혼인하는 청춘남녀들의 춘심(春心), 향아(向我)의 진설(陳設)을 도모하는 봄날의 혼인 잔치가 마냥 부럽다.

남도인문학팁

신방 엿보기는 왜 하는 것일까

춘흥에 못 이겨 봄나들이를 갔다가 연애를 하고 혼인을 한다. 합환주를 마시고 신방에 들면 마을사람들이 창문에 구멍을 내고 이른바 ‘신방 엿보기’를 한다. 이에 대한 번역은 있으되 해석이 없다. 신랑이 벗기고 신부는 참으라 해서 죽었다는 일설이나 조혼(早婚)풍속에 의한 성교육 정도의 단순번역만 있을 뿐이다. 그럴까?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입춘날의 목우나경(木牛裸耕)에 빗대어 해석해왔다. 한 계절의 봄은 한 시대의 시작에 비유되고 한 쌍의 일생에 비유된다. 혼인을, 오낭(五囊)을 부여받는 출생(돌)에 비유하고 장례에 비유하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출발이자 재생 혹은 부활의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암 유희춘은 나경(裸耕)이 먼 변방 비루한 풍속에서 나왔다고 비판했다. 사례편람의 고정된 인식에서 비롯한 고루한 생각이다. 입춘의 날에 총각이 알몸으로 따비(쟁기)를 들어 밭을 가는 것처럼 혼인은 인생의 봄을 시작하는 첫 밭갈이다. 엿보기의 관음증으로 번역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 거세된 이후의 현상이다. 신방 엿보기가 혼인 의례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내 이론을 수긍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의례였다. 〈이윤선 (사)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

2-봉치떡-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2-봉치떡-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3-초례상(혼례본상)-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3-초례상(혼례본상)-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4-폐백상(양부모)-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4-폐백상(양부모)-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5-결혼이바지(전통)-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
5-결혼이바지(전통)-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