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는 소회

최성훈 육군 보병학교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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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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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추석 연휴에 가장 화제가 됐던 영화는 ‘남한산성’이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병헌·김윤석 등 호화 캐스팅에 당시의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또 다른 1000만 영화의 탄생을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명량’과 달리 승리의 역사가 아닌 패배의 역사였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인조의 무능에 화가 났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대신들의 무지에 한숨을 쉬었다. 그까짓 명분에 집착하는 김상헌의 척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최명길의 화친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명분은 전략이고 실리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명분이라는 깃발을 명백하게 들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는 짓을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돌이켜 보면 2017년 한반도는 전쟁의 공포가 뒤덮인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말 폭탄이 난무했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러나 2018년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혔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오면서 남북한의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에서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지고, 함께 경기를 치르면서 한반도의 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한 한반도의 봄은 4월27일 판문점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다정하게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서로 넘었으며, 도보다리 산책에서 40분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후 미·북 정상회담인 ‘6·12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에서도 이를 확약했으며, 다시 남북정상회담인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재확인됐다. 북한은 2017년 11월 이후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발사를 멈췄고, 풍계리 핵시험장을 파괴했으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시험시설 일부를 폐기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DMZ와 서해에서는 군사적 긴장감이 크게 감소했다.

한반도의 평화에는 비핵화와 함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비통제가 필수적인데,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전방지역에서의 남북상호간의 GP 철수를 비롯해 늦어도 다음달 안에 비무장화된 남쪽지역의 공동경비구역에 대한 첫 도보관광이 시작될 예정이다. 2017년과 비교해 현 상황을 북은 ‘사변적 변화’, 남은 ‘혁명적 변화’라고 할만큼 놀라울 정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2월27일~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두 번째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나서 미·북 사이 비핵화 협상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70년간 쌓인 불신과 반목이 단 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뜻이 있으면 길은 보인다. 이제 그 길은 찾기 위한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그 길을 어떻게 찾을까? 먼저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외교정책은 사상이 담겨있어야 한다. 조선시대의 외교는 성리학적 이념질서를 가진 사대교린 정책이었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해가는 명에 의존을 해야 했고, 이러한 외교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외교정책의 메시지는 사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정책의 기본핵심은 냉전이었다. 사실은 이것을 붕괴시키고 동북아의 평화공존이라는 사상의 체계로 전환이 돼야 그걸 바탕으로 해서 올바른 외교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틀 사이에서 북한이라는 변수를 앞에 두고 적극적 조정자·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한 북한 핵 해결이다. 한미동맹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다. 지난달 미 백악관은 4월 한·미 정상회담 일자를 발표하면서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역내 평화·안보의 린치핀(linchpin·구심점)”이라며 “문 대통령의 방문이 동맹과 우호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한·미간의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견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더 성숙한 한미동맹의 시대를 위해서는 갈등과 이견의 과정을 극복해내야 한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다. 더 큰 신뢰와 우호를 다지고 동맹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국방력을 강화해나가려는 노력은 필수다.

지금 우리는 희망과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 결말은 알고 있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결말은 아직 모르고 있다. 아무도 가본 길이 아니기에 두렵고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2017년 전쟁의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로 돌아 갈 것인가? 어렵지만 평화의 씨앗을 심었던 2018년 4월27일 이후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

대답은 당연히 평화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은 한반도의 역사에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