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합문(闔門)의 시간

박용수 광주 동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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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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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기억처럼 강인한 것도 드물다. 그래서 강인한 절제나 욕구 불만으로 뇌리에 남거나 아픈 상처나 그리운 추억으로 되새김질 되는 것이 허기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훌쭉한 창자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제삿날 하루, 그날의 강인한 기억이 거미줄처럼 칭칭 내 몸을 감고 놓아주지 않는지 난 여태 그날 제사상을 찾아올 조상들보다 상 위에 놓인 형형색색의 음식들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태 바동거리고 있다.

제삿날은 친척들도 만나고, 음식도 맛나는 날이었다. 마을 전체가 맛 나는 날이었다. 멀리 사는 친척들이 속속 대문에 들어설 때마다 한바탕 반가움이 소용돌이가 쳤고, 떡을 하고 전을 볶는 냄새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를 따라 모락모락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고샅은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었다. 꽃그늘 아래서 친척들은 두런두런 그간 나누지 못한 덕담을 주고받았고, 생전 낯도 모르는 증조 고조의 전설 같은 삶을 들으며 우리는 조상들이 안중근 의사처럼 위대하고 징기스칸보다 용맹하다는 것을 배웠다.

낮이 산자의 시간이라면 밤은 혼령의 시간이었다. 우린 사자들이 오는 한밤중까지 쏟아져 내리는 눈꺼풀을 치뜨면서 기다렸다가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피안의 조상들이 도착했음이다. 그러면 우린 그 두루마기 어른들 뒤에 서서 정말 조상들이 앉아 있나 빼꼼이 내다보고 보이지 않는 데 도착했다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윙윙거리는 축문소리를 이명인양 듣다가 화들짝 잠을 깬 것이 바로 합문의 시간이었다.

우리들은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방의 불을 끄고 밖으로 일제히 내몰렸다. 그리고 마루로 나와 문을 닫고 조상들이 식사를 마칠 시간 동안, 조용히 엄숙하게 침묵을 지켰다. 2~3분 길어야 5분이었을 그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1시간은 족히 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나는 쩝쩝 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시 방문을 열고 촛불을 켰을 때는 음식도 그대로였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합문의 시간. 저승의 고인들이 생일상을 받고, 후손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시간이란다. 사자와 만나는 생멸이 공존하는 시간이고, 이승과 저승의 물길이 만나 소용돌이치는 문을 닫는 시간이도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어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당신들이 먹은 음식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피가 되고 그것들이 혈관을 타고 수천 년 조상에게로 올라가는 시간이자, 조상들이 내 몸으로 현현(顯現)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근원이 그러하듯 내 생도 유한하다는 것을 감각하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젯밥에 꽂힌 굶주린 육신을 달래고 고인의 영혼을 기려야하는 번뇌의 시간이기도 했다.

합문이 끝나면 음식을 함께 나눠먹었다. 어머니에게는 힘든 행사였겠지만 우린 해마다 몇 차례 그렇게 제사를 모셨다.

이제 지하에 묻힌 고인들이 다시 살아오지 않는 이상, 그 시절 사자의 넋을 기리는 합문은 부활하지 않을 것이다. 친척은 없어졌고, 가족도 희미해졌다. 달랑 식구만 근근이 밥상을 맞대고 있다.

나이를 드니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되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듣게 되는 내공이 생긴 것 같다. 그때 그분들에게 계시지 않아도 마음에 들이는 것,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리라. 표정만 보아도 행복한지 아픈지를 가늠할 수 있고, 이야기만 들어도 그의 내면이 풍요한지 빈곤한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껴안고 있으면 나무가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만지고 있으면 돌이 전하는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깊이가 깊어지고 인식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어쩌면 이런 합문의 시간이 축적되어서일 것이다.

기다림과 그리움은 누군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간이었다. 합문은 단단한 자신의 세계를 허물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으로 사유하며 자신이 나아갈 바를 찾는 사색의 문을 여는 일이었다. 물질을 넘어 정신까지 인식의 세계를 확장하는 창조의 순간이었으며, 현재를 넘어 죽음까지 다가가는 영원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생각했으되 정작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촌 팔촌까지 모였던 제사를 주변에서 보기 어렵다. 겨우 형제들만 단출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조 증조 혈연은 이미 끊어졌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밀어내고 있다. 우린 지금 육신의 포만을 얻었지만 영혼이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한 시대에 서 있다. 그 결핍 그 허기를 느끼지 못하니 영혼이 더 궁핍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