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극장, 오케스트라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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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enchen-Friedensengel-bjs- 황금 평화의 천사 편집에디터
Muenchen-Friedensengel-bjs- 황금 평화의 천사 편집에디터

‘뮌헨'(München)은 독일 바이에른 주(州)의 주도(州都)이다. 알프스 북부의 이자르(Isar)강가에 위치한 뮌헨은 독일 내에서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 큰 도시로 인구는 약 150만 명이다. 1972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던 뮌헨의 당시 슬로건은 “뮌헨은 당신을 좋아합니다.”(München mag Dich)였다. ‘뮌헨’의 영어식 발음은 ‘뮤닉크’다. 뮌헨이라는 도시명은 독일어로 “옛 고산 지대 수도승들의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무니헨(Munichen)에서 유래하였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뮌헨’의 휘장에는 수도승이 새겨져 있다. ‘뮌헨’시(市)를 상징하는 색(色)은 신성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흑색과 금색이다. 현재 뮌헨은 유럽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여러 나라 중 최고의 이민 희망 지역으로 손꼽혀왔으며 매년 계속되는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수년째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빅5’에 꾸준히 선정되고 있다. 다수의 뮌헨 시민들은 중, 상류층의 삶을 누리고 있으며 조사 결과 현재 ‘뮌헨’의 땅값은 세계 39위, 독일 1위에 랭크되고 있다. ‘바이에른 주'(州)는 BMW등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산업의 메카이며 ‘뮌헨’은 IT, 생명공학, 출판 등의 영역에서 독일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뮌헨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하고 있고 금융과 보험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과학과 연구의 중심도시로도 손꼽힌다.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막시밀리아네움/Maximilianeum)은 60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럽 최대의 도서관이며 독일 최대의 종합대학인 ‘뮌헨대학’ 등 고등교육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이렇게 경제, 문화적으로 안정을 이루고 있는 부유한 도시 ‘뮌헨’은 ‘함부르크’나 ‘베를린’ 등의 다른 독일 대도시들에 비해서 범죄율이 현저하게 낮으며 최소의 실업률을 자랑하는 이상적인 주거지로서의 거의 완벽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도시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2주 동안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페스티벌 ‘옥토버페스트’는 전 세계 관광객 500만 명 이상 방문, 소시지 20만 개 이상, 맥주 500만 리터 이상이 소비되는 거대한 축제로 너무나 유명하다.

“이제 너의 방은 언제나 비어 있겠구나.”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이 중반을 넘어선 어느 날 ‘뮌헨’에서 일어난 반 나치 사건의 중심에 놓인 자식을 둔 어느 어머니가 한 말이다. 2차 대전 기간 중 ‘뮌헨’은 1942년 6월에 결성되어 1943년 2월까지 활동했던 백장미 단(白薔薇團) 결사대의 중심지였다. 백장미 단은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수가 구성한 비폭력 저항 그룹이다. 그들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고 반인륜적인 나치에 대한 반대, 관용과 정의에 입각한 유럽의 연합을 주장하였다. 1939년부터 나치는 유럽인의 유전자 풀(gene pool)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안락사 정책을 벌이고 있었다. 아리안 족의 우수한 혈통 유지에 방해가 되는 존재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각종 불치병에 걸린 이 들에 대한 안락사를 적극 권장한 것이다. 평범한 의대생 ‘한스 숄’과 그의 여동생 ‘조피 숄’은 나치의 안락사 정책을 비난하는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의 설교를 감동 깊게 들었었고 나치의 정책에 경악한 ‘조피 숄’은 주교의 허락을 얻고 설교 전문을 복사하여 1943년 2월 18일 목요일 뮌헨 대학 교정에 뿌렸다. 뮌헨 대학교의 학생이었던 ‘한스 숄’, ‘조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빌리 그라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그들의 교수였던 ‘쿠르트 후버’가 백장미단의 구성원이었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그들을 체포된 지 단 4일 만에 형식적인 재판 후 항소절차 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들 중 ‘한스 숄’, ‘조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는 첫 공판 이후 단두대에서 사형 당했으며 나머지는 두 번째 공판 후 사형 당하였다. 이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롤란트 프라이슬러'(Roland Freisler)였다. 그는 이전까지 나치를 위한 모든 재판에서 피고에게 그 어떤 동정이나 자비도 보이지 않아 나치 정권의 ‘사형 재판관’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다. ‘프라이슬러’는 세 명의 어린 대학생들에게 <국가 반역죄와 군대의 전복 및 군수산업의 파괴를 선동한 예비 반역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붙였다. 감옥의 간수 들은 훗날 이들의 최후에 대해 증언했다. “그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꿋꿋하게 처신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모험을 감행해 그들이 처형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모이게 해 주었다.” 간수 들은 몇 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형 직전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모여 담배 한 대를 나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단두대에 오른 것은 ‘조피’였다. 단두대까지의 거리는 40여 미터였으나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걸었다. 재즈를 좋아하던 22세의 평범한 여대생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 다음 차례인 ‘한스’는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기 전에 큰 소리로 외쳤다. “자유여 영원하라!”(Es lebe die Freiheit!)

극장, 오케스트라

인구 150만의 도시 ‘뮌헨’에는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과 거장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가 지휘하는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Münchner Philharmoniker)를 비롯하여 ‘뮌헨심포니오케스트라'(Munich Symphony Orchestra), ‘뮌헨 챔버오케스트라'(Munich Kammer Orchestra), ‘바이에른 주립 오케스트라'(Bavarian State Orchestra)까지 유명한 프로 오케스트라만 해도 5개가 있는 오케스트라의 도시다. 그밖에도 ‘바바리안 주립 오페라단’, ‘바이에른 방송합창단’, ‘바이에른 뮌헨 발레단’ 등 유수의 공연 단체들은 월드클래스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뮌헨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대단하며 독일의 ‘문화 수도’는 바로 뮌헨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낫다는 식이다. 뮌헨 국립극장(München Nationaltheater)과 콘서트 전용 홀인 ‘가스 타익 필하모닉'(Gasteig Philharmonic), 레지던츠 궁전 내의 헤라클레스 홀(Herkulesaal)외에도 뮌헨의 여러 개 공연장에서는 거의 매일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물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뮌헨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회에서는 세계적인 지휘자, 솔리스트를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홍보 감독인 ‘피터 마이젤’은 나의 친구다. ‘피터’가 준비해준 좌석은 1층 중앙의 좋은 좌석이었다. 2019년 2월21일부터 3일간 뮌헨의 ‘가스 타익 필하모닉'(Gasteig Philharmonic)에서는 올해 91세의 나이에 이른 거장(巨匠) ‘베르나르드 하이팅크'(Bernard Haitink)가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는 은퇴 연주회가 있었다.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합창’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바이에른 방송 합창단’이 연주했다. 세계 지휘계의 산 역사인 거장 ‘하이팅크’가 영욕의 세월 끝에 화려한 무대에서 명예롭게 퇴장하는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거의 40년도 훨씬 전쯤, 당시로서는 드물게 우리 집에는 클래식 LP판이 수백 장이나 있었다. 나의 부친은 특별히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꺼내 자주 듣곤 했는데 그 두꺼운 LP판 전집 케이스의 지휘자 사진이 ‘베르나르드 하이팅크’였다. 선명하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란 내가 이제 나이 50이 훌쩍 넘어 바로 눈앞에서 그 거장의 생애 마지막 연주회를 보고 있었다. 어떤 운명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전개 속에 문득 전율이 일었다. 지팡이를 의존해야만 겨우 걸을 수 있는 ‘하이팅크’는 연주가 끝난 후 제1바이올린 파트의 어느 단원 한명이 내준 의자에 앉아 환호와 영광을 받았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모두 기립하여 15분 이상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뮌헨 시민들은 자기 도시 예술단체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각종 후원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공연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또 매우 객관적이고 냉정하다. 사실 뮌헨지역의 오케스트라, 합창단, 오페라단, 발레단은 그만큼의 인기와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보수와 부가적인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받고 있는 대신에 철두철미한 프로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와 피나는 노력으로 그 명성과 자존심을 유지하고 있다.

뮌헨 신시가지 야경 편집에디터
뮌헨 신시가지 야경 편집에디터
Residenz Palace 레지던츠 궁전 편집에디터
Residenz Palace 레지던츠 궁전 편집에디터
뮌헨 국립극장 편집에디터
뮌헨 국립극장 편집에디터
뮌헨 대학교 편집에디터
뮌헨 대학교 편집에디터
뮌헨 대학에 있는 백장미단 기념조각 편집에디터
뮌헨 대학에 있는 백장미단 기념조각 편집에디터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 편집에디터
바이에은 방송교향악단 리허설 헤라클레스홀 편집에디터
바이에은 방송교향악단 리허설 헤라클레스홀 편집에디터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은퇴 음악회(가스타익 콘서트홀) 편집에디터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은퇴 음악회(가스타익 콘서트홀) 편집에디터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섯명의 백장미단 단원들의 사진 편집에디터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섯명의 백장미단 단원들의 사진 편집에디터
연주단원 의자에 앉아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편집에디터
연주단원 의자에 앉아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편집에디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홍보감독 피터 마이젤과 필자 편집에디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홍보감독 피터 마이젤과 필자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