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대수롭지 않고도 특별한 모든 것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정선휘,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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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늘 그러하고도 특별한 순간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인 김혜자의 마지막 대사의 부분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기에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그녀에겐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게 두려웠다. 힘겨웠던 날도, 기뻤던 날도 그 어느 하루도 소중하지 않는 날은 없었고, 모두 눈이 부시게 특별한 일상의 날들이었던 것이다.

‘일상’은 늘 그렇게 여전하다.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생의 기쁨, 혹은 슬픔을 겪는 순간이다. 변함없는 삶의 모든 것, 일상은 늘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내려놓는다. 시간이 축적된 일상은 오늘을, 또 내일을 안온하게 지속시켜나간다. 늘 그러한 일상의 풍경들이 건네는 그림들로 지금 이 순간의 특별함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일상을 그림에 담은 화가들.​

1874년, 미술계의 혁명이라 할 만한 사건인 인상주의 첫 전시가 열렸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고, 폭풍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난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덟 번의 전시로 인상주의는 막을 내렸고, 인상주의를 시작한 모네는 거장이 되었다. 이들의 그림은 특별한 게 아닌 삶의 일상에 빛과 색을 더한 그림들이었다. 이 그림의 진가를 먼저 알아봤던 이가 있었으니, 화가인자 인상주의의 후원자이이기도 했던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이다. 카유보트는 운좋게도 법률가인 할아버지와 사업가로 성공한 아버지 아래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비록 그가 원했던 화가의 길은 순탄치 않았지만, 모네를 만나고 인상주의 그룹에 합류했다. <대패질을 하는 사람들 Raboteurs de parquet> (1875) 작품을 초기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하며 인상주의 작가 대열에 함께 했다. 부유했던 환경 덕분인지, 카유보트가 그린 그림들엔 일상 속 여유가 꽤나 느껴진다. 정원사, 보트를 타는 사람들, 낮잠 자는 사람,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 등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장면들이지만, 카유보트의 그림은 꽤나 세련됨이 도드라진다. 그가 심취했던 카메라 렌즈의 눈을 빌어온 그림들은 마치 우연히 찍힌 사진처럼 힐끗 포착된 일상의 장면들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카유보트는 화가이면서 동료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모네, 르누아르 등 동료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였고, 마흔다섯이란 이른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때 그에게는 67점의 인상주의 그림이 있었다. 비록 루브르에서는 거부당했지만, 오르세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카유보트와 인상주의자들이 보여 준 빛과 색의 찬연한 세계는 일상의 장면들을 다시 보게 했다. 하잘 것 없는 순간들이 아니라 특별한 순간들로 말이다.

일상의 두 단면, 노동과 쉼.

세탁실의 두 여인. 한 여인은 술병을 손에 쥐고 반쯤 감긴 눈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자신의 일은 모두 마쳤고, 옆 사람의 고됨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이 순간 절실한 건 ‘쉼’뿐이다. 또 다른 여인, 잔뜩 움츠린 어깨에 힘을 실어 다림질을 한다. 서민의 일상을 그려낸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다림질 하는 여인들’ 그림이다. 당시 근대 도시였던 파리 서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지만, 드가에겐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이었다. 일상의 두 축을 차지한 노동과 휴식, 바로 19세기 근대의 파리 시민 계층의 양분된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번화해가는 도시의 이면에 자리 잡은 노동자들의 일상. 소외된 이들의 일상은 드가의 그림 안으로 들어와 시대를 증명하고 있다.

애틋한 일상의 기억

광주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도, 철로가 마지막 소임을 치른 날, 새벽녘 푸르스름한 빛을 가로지르며 기차는 마지막 운행을 했다. 정선휘 작가의 작업실과 근거리였던 이곳은 작가에게 일상이었던 공간이다. 몸으로 마음으로 탐독되고 체득된 일상의 단면들이었다. <마지막 열차>는 우리의 일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지만, 끝없이 시간을 축적해가며 지난 삶의 애틋한 기억을 보듬어준다.

화면 가득 따스한 빛이 내려앉았다. 그림의 한 가운데 두 소년이 걸어간다. 느릿한 걸음걸이에는 두 친구의 한가로움과 정겨움이 짙게 베어난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느긋하게 노닥거리며 한가롭게 30분은 족히 걸리는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듯하다. 화면 전체를 감싸는 따스한 노란 빛 덕분인지 하잘 것 없는 풍경이지만, 그 무엇보다 따스한 일상의 모습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정선휘 작가의 두 작품 <마지막 열차>와 <하교길>은 20여 년 전 광주의 일상을 담고 있다. 그 때와 지금의 일상은 비록 외면은 달라졌을지라도, 사람살이의 안온함을 바라는 마음만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일상의 관찰자, 시대를 기록하다.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문화전당 하늘공원 앞에 자리한 포장마차. 작은 호떡집이다. 찬바람 불어오면 따스한 날 동안 내내 꽁꽁 묶어둔 허리춤의 줄을 풀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세련된 외모의 전당 건축물 아래 화려한 색깔 옷 입은 포장마차는 한눈에 들어온다. 달달한 호떡향기 베이듯, 그림엔 호떡집 할머니 인심도 함께 베였다.

파릇파릇한 연둣빛이 화면을 가득 메운 대학교정의 나무 그늘도 그림이 되었다. 대학 청년들의 각박한 현실이야 모르는 이 없지만, 화면 가득한 푸르름은 일상의 각박함을 모른척하게 해준다.

박성완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일기처럼 그려간다. 그리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문화전당 공사장, 공사장의 인부들, 대인시장의 풍경 등 그저 자신의 삶을 둘러싼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매일매일 일기 쓰듯 그려갔다. 그 순간의 빛을 가득 안고, 화려한 색채를 덧입힌 그림들은 일상의 기록이 되고, 시대의 기록이 되어간다. 긴 시간 무한 반복된 사생 훈련으로 다져진 박성완 작가만의 감각은 어제와 같은 일상의 장면일지라도 무언가 다른 특별함을 선사한다.

‘일상’ 늘 그러하지만 더 없이 소중한 순간들.

일상은 늘 그러하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시간을 축적한 일상은 애틋함을 품는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말처럼 오늘의 일상과 내일의 일상, 그 다음날의 일상은 모이고 모여 그림이란 특별한 저장장치로 변환된다. 카유보트와 드가가 그려낸 19세기 파리의 일상, 그리고 정선휘 작가와 박성완 작가가 그린 우리 시대의 일상은 축적된 시간만큼이나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었다. 지금 여기, 오늘의 일상도 언젠가는 또 다른 기억과 추억을 품은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귀스타브 카유보트_마룻바닥을 긁어내는 남자들_oil on canvas_102x146.5cm_1875_오르세미술관 편집에디터
귀스타브 카유보트_마룻바닥을 긁어내는 남자들_oil on canvas_102x146.5cm_1875_오르세미술관 편집에디터
귀스타브 카유보트_창가에 있는 남자_oil on canvas_116.2x81cm_1876_개인소장 편집에디터
귀스타브 카유보트_창가에 있는 남자_oil on canvas_116.2x81cm_1876_개인소장 편집에디터
에드가 드가_다림질 하는 여인들_76x81.5cm_oil on canvas_1884-86_오르세미술관 편집에디터
에드가 드가_다림질 하는 여인들_76x81.5cm_oil on canvas_1884-86_오르세미술관 편집에디터
[{IMG04}][{IMG04}]
정선휘作_하교길_72.7x60cm_oil on canvas_2001 편집에디터
정선휘作_하교길_72.7x60cm_oil on canvas_2001 편집에디터
박성완作_문화전당 호떡집_41x61cm_oil on canvas_2018 편집에디터
박성완作_문화전당 호떡집_41x61cm_oil on canvas_2018 편집에디터
박성완作_예대잔디밭 나무 그늘_50x60cm_oil on canvas_2018 편집에디터
박성완作_예대잔디밭 나무 그늘_50x60cm_oil on canvas_2018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