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심어도 죽고 물고기 풀어도 죽고”… 저쪽이 폐광

▶옛 폐광 터 순천 서면 죽청마을 주민들의 하소연
수은·비소 등 중금속 유출 건강 악화·생태계 오염 ‘재앙’
폐질환 앓던 주민 다수 사망…수십년간 자체 정화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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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폐광지역인 순천시 서면 운평리 죽청마을에 태양광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중금속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들이 태양광 개발사업이 진행될 옛 폐광 부지를 가르키고 있다. 편집에디터
옛 폐광지역인 순천시 서면 운평리 죽청마을에 태양광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중금속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들이 태양광 개발사업이 진행될 옛 폐광 부지를 가르키고 있다.

순천 서면 운평리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인 죽청마을. 이곳은 ‘순천광산’이라는 이름의 금광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지역에서 흔하지 않은 금광이 있는 탓에 죽청마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손수 금광석을 채굴해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일본인이 주인인 ‘일진개발 주식회사’가 들어와 ‘순천광업소’란 이름으로 대규모 채굴·제련 기기를 설치해 금을 수탈해갔다.

현재 폐광산 주변에는 개미굴처럼 수천개의 통로가 남아있으며, 금광석을 실어나르던 승강기의 흔적도 육안으로 확인된다.

과거 순천광업소는 지역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며 몸집을 키웠다. 당시 전국에서 찾아온 1000여 명의 광부가 이곳에서 일을 했다.

직원 중 300여 명은 일본인이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회상했다. 죽청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킨 장모(86) 전 면장은 “일제 강점기 시절 순천읍에서 버스 2대가 이곳 죽청마을까지 사람을 실어날랐다”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광산에서 일했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광산에서 채굴한 금광석을 지상으로 실어 나르던 '순천광산' 승강기의 흔적. 편집에디터
일제 강점기 광산에서 채굴한 금광석을 지상으로 실어 나르던 '순천광산' 승강기의 흔적.

⊙일제 금 수탈… 폐광 뒤 중금속 오염

주민들의 고통은 광양·순천지역에서 채굴된 많은 양의 금광석을 죽청마을에 자리 잡은 순천광업소에서 제련하면서 시작됐다.

일제는 금광석에서 금을 분리하는 제련작업을 진행하며 수은, 비소 등 사람에게 치명적인 중금속을 사용했다.

회사는 제련 작업 후 남은 중금속 폐수에 대한 오염 방제 등 관리를 외면한 채 오직 금을 채취하는 데만 집중했다. 때문에 수많은 직원들이 중금속에 중독, 각종 질병으로 사망했다.

중금속이 섞인 폐수는 저수지 형태의 저장소에 보관됐지만, 약간의 비만 와도 폐수가 넘쳐 민가까지 흘러들었다. 승주군(지금의 순천 서면) 사람들은 이곳을 ‘빨간 물이 내려오는 지역’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특히 중금속 폐수가 논·밭에 흘러들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다. 농작물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고 중금속 오염 우려 탓에 판로도 막혔다.

죽청마을 주민들이 폐광의 잔재인 중금속을 정화하기 위해 조성한 편백숲. 편집에디터
죽청마을 주민들이 폐광의 잔재인 중금속을 정화하기 위해 조성한 편백숲.

⊙ 주민들 폐질환 사망…자체 정화작업

1945년 광복 직후 일본 광산회사는 쫓기든 철수했다. 이 무렵 지역의 한 유지가 광양광산과 함께 순천광산을 매입했다. 이후 금이 더 많이 나오는 광양광산 운영에 집중하기 위해 제련 기기를 모두 옮겨가 순천광산은 폐광됐다.

폐광 후에도 주민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토양에 스며든 중금속 폐수는 ‘중금속 먼지’가 돼 바람을 타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덮쳤다. 많은 주민은 일제가 버리고 간 폐광의 중금속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죽청마을 한 주민은 “친구 부모님들이 모두 젊은 나이에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면서 “나 역시 어릴 때 폐광 부지에서 뛰어놀았다. 최근에야 그곳이 중금속으로 범벅이 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른 뒤 폐광의 중금속이 사람들을 죽게 한 폐질환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폐광 부지에 나무와 풀을 심는 등 자체 정화작업을 진행했다.

박한규(72) 죽청마을 이장은 “중금속으로 오염된 땅을 흙으로 덮고 나무와 풀을 심고, 물에는 물고기를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동·식물 모두 죽었다. 겨우 살아남아 가지를 친 게 편백나무”라면서 “마을 사람 모두 정성스레 키운 편백나무가 울창한 잎으로 중금속 바람을 막아준 뒤부터는 병을 앓던 사람들도 회복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도 2006년 한국광해관리공단을 설립해 전국 폐광 피해 관리에 나섰다. 공단은 지난 2008년 죽청마을 폐광 인근 논·밭에 대대적인 개·복토 작업을 진행했다.

정화작업 뒤 주민들은 다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생산된 농작물은 1년에 한 번씩 농산물품질관리공단에서 중금속 검사를 받고 통과하면 유통된다.

주민들은 “편백숲 인근 중금속 오염이 심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다. 논·밭의 오염도도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내 손으로 생산한 농작물을 먹기가 꺼려진다”고 하소연했다.

죽청마을 주민 20여 명은 지난달 27일 태양광 개발사업 허가 주체인 순천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편집에디터
죽청마을 주민 20여 명은 지난달 27일 태양광 개발사업 허가 주체인 순천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개·복토 과정, 중금속 유출 우려”

폐광 부지에 조성한 편백숲과 인근 토양의 꾸준한 개·복토 및 자체 정화작업을 통해 마을의 토양이 점차 회복되면서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곳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 건립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은 중금속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대에 나섰다.

죽청마을 주민들은 나무를 베고 흙을 파헤치는 정화작업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작업 중 비가 내리면 중금속이 대량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순천시의 대표 하천인 ‘동천’의 상류 지역으로, 물은 동천을 지나 순천만을 통해 바다에 흘러 들어간다. 중금속이 유출되면 최악의 경우 순천만 습지의 생태환경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이장은 “중금속 먼지를 막아주고 있는 편백숲을 베면 잠들어있던 중금속이 다시 논·밭과 공기로 유출될 수도 있다. 주민들에겐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것과 같다”면서 “우리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 저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숙희 순천시의회 의원은 “중금속 오염도가 낮아지는 등 겨우 안정화되고 있는 폐광 부지 정화작업 과정에서 자칫 또다시 중금속이 누출되면, 동천부터 순천만 습지까지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물질로 오염될 수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 순천시민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정옥 순천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은 “청소년 수련관도 지근거리인 이곳에서 환경오염 가능성이 있다면 개발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순천시가 ‘생태수도’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고 주민들의 걱정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화선 기자 [email protected]
순천=정경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