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 진 소설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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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소설 쓰는 일이 직업인 만치 글쓰기 강의 요청을 많이 받는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에서부터 자기만의 자서전 한 권을 지니고픈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수강생의 나이와 계층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왜 쓰려고 하는지?’를 묻는 내 첫 질문에 대해선 거의 엇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그냥 한 번 써보고 싶어서….’ 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며칠 전, 자신이 쓴 회고록(자서전)에서 ‘허위사실 적시 및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전직 대통령 전모씨가 광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 섰다. 그는 이미 역사적 사실로 판명되어 평가가 끝난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진실을 왜곡하는 억지 주장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내 직업적 감각은 그에게도 역시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왜 쓰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의 대답 역시 ‘그냥 한 번 써보고 싶어서….’였는지를.

분명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확고한 목적과 의지가 있었다. 그러니 도리어 내게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이거 왜 이래?’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의 의미를 전씨는 뼛속 깊이 새긴 듯하다. 1980년엔 칼로 정권을 탈취하더니,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엔 파렴치한 펜으로 국민의 의식을 장악하려든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대결과 분쟁, 편 가르기와 도를 넘는 혐오표현들을 보면 그의 의도가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은 입장에선 참으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글을 통한 자기표현에의 의지는 어디까지 실현되어야 하는가? 그 표현의 한계와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기억은 말과 글을 통해 남는다. 아마 전씨의 회고록은 우리의 집단적 기억 속에 남을 자신의 악행을 어떻게든 지우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글을 통해 진실을 왜곡하고 폄훼함으로써 자신의 거짓에 기반한 새로운 기억을 공동체에 새기려는 저열한 꼼수다. 우리가 진실을 똑바로 기억하고 세대를 이어가며 전해주지 않는다면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어린 초등학생들의 당당한 외침은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이 가는 팔뚝을 들어올리며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들의 깜찍한 일탈을 허용한 선생님들과, 당찬 행위의 본보기가 되었을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거짓된 글이 주는 해악을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일치감치 깨닫도록 했으니 말이다.

다시 글쓰기 강좌로 돌아와서, 만약 당신이 글을 쓰고자 한다면 왜 쓰려는지를 묻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길 바란다. ‘그냥 한 번 써보고 싶어서….’라는 어설픈 대답으로 말꼬리를 흐리지도 말길 바란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면 당신만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있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나만의 무엇, 온 생을 다해 풀어놓고 싶은 어떤 소중한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하고픈 진실이 거기에 있다. 변명이나 겉치레, 왜곡이나 폄훼로 더럽혀지지 않게끔 주의 깊게 살피다보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보이는가? 그러면 이제 마음을 기울여 한 바가지 퍼 올리자. 당신의 물 한 바가지는 목마른 이의 기갈을 해소할 달디 단 물이 될 것이다.

당신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