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위장 ‘편의대’, 군중 속 끼어 5·18 폭동으로 날조”

대공분야 1인자 홍성률 대령 총책 맡아
사복 차림 정보요원 시민들 사이서 공작
5·18 왜곡 시초… 진상조사위서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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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뉴시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뉴시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찬탈을 위해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둔갑시킨 경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사복차림 선무공작부대, 이른바 ‘편의대’의 실체와 행적이 면밀히 조사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4일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각종 군 기록물과 군 관련자의 증언 등을 분석한 ‘5·18 편의대 정밀 투시’ 자료를 공개하고 이 같이 밝혔다.

편의대는 가발과 사복을 갖추고 시민들 사이에 파고들어 ‘북한군 개입’, ‘경상도 군인 투입’ 등 유언비언를 퍼뜨리며 일반 시민들을 선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 조직이다.

●정보수집하고 악성 유언비어 살포

5·18 당시 광주에는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고 왔다’는 등의 각종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시민들이 분노했다. 시민들을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넣어 이들이 실수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나 관장 등 5‧18 연구자들은 80년 오월 당시 신군부가 광주 진압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무공작을 펼쳐 시민들로 하여금 폭력행위를 이끌어내려 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각종 기록을 종합 분석한 ‘5·18 편의대 정밀 투시’에 따르면 당시 편의대는 △주동자 색출 및 체포 △시위대의 위치, 무장 상황 파악 △광주시민 및 수습대책위원회 동향 파악 △사진병을 투입해 ‘폭도’ 또는 ‘폭동화’ 공작을 위한 시위 장면 선택적 촬영 △시위대의 모략 및 교란 △선무공작 등을 펼쳤다.

실제로 5월20일 광주MBC 건물 방화사건, 5월25일 발생한 ‘전남도청 독침사건’도 당시 기록과 증언에 비춰볼 때 편의대 소행으로 지목되고 있다.

나 관장은 “5월18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에서 벌어진 대학생과 계엄군 간 대치 상황에서도 편의대로 추정되는 신원불상의 남성이 ‘박관현이 계엄군에 붙잡혀 31사단에 연행됐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학생들을 극도로 흥분시킨 일도 있었다”며 “시민들을 폭도로 몰고자 과격 행동을 하도록 선동하는 임무를 수행한 자들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두환 측근 홍성률이 총책 나서

그렇다면 편의대는 어떻게 운영됐을까.

각종 군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보면, 전두환과 보안사는 5·18 당시 보안사 기획조정실장 최예섭 준장, 1군단 보안부대장 겸 합동수사본부 치안본부 조정관 홍성률 대령, 보안사 감찰실장 겸 합수본부 수사국장 최경조 대령, 중앙정보부 작정히 과장 등을 광주에 파견해 편의대를 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홍성률 대령은 육사 18기이자 광주일고 출신인 홍 대령은 ‘대공 분야 1인자’로 불렸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홍 대령은 당시 광주 시내로 잠입, 정보수집 및 특수활동을 벌였다고 나온다.

그는 광주시 사동 친척 집에 비밀아지트를 설치하고, 전남도경찰국 정보과 소속 경찰과 505보안대 요원의 지원을 받으며 통합지휘를 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1995년 ‘5·18 관련 사건 검찰수사결과’에서도 홍 대령은 80년 5월20일 아침 광주 시내로 들어가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21일 이후에는 시내에 은신하면서 시위대의 위치, 무장상황, 이동 및 공격상황, 시민들과 수습대책위원회 동정을 파악해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보안사 정보처 정보1과장이었던 한용원 중령은 지난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홍 대령이 보안사 17명의 대원들과 함께 광주에 갔고, 공작적 차원의 활동을 전개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보안사 요원 심지어 민간인도 동원

편의대를 이끌었던 중심 인물들과 행적은 파편적으로는 확인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체는 가려져 있어 정확한 구성원과 규모 등에 대해서는 정황을 통해 추측하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편의대는 홍 대령이 광주에 올 때 대동한 보안사 요원 17명을 ‘막후공작 기획 및 편의대 운용 기획팀’에 배속시켜 공작기획을 전담토록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관장에 제시한 분석을 보면 당시 편의대는 505보안대 장교 및 병사, 7·11·3공수여단 파견 보안대원 및 심리전 요원, 20사단 정보 장교 및 병사, 정보사령부 장교 및 병사, 전교사 정보 장교 및 병사, 31사단 정보 장교 및 병사, 중정 전남지부 요원, 경찰 정보팀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민간인도 포함됐던 것으로 보인다. 나 관장은 80년 5월25일 발생한 ‘전남도청 독침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시민군에 북한군이 섞여 있다는 소문을 발생시킨 사건으로, 이 또한 홍 대령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 관장은 “편의대 임무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광주를 폭동의 도시로 만드는 공작이었다. 이를 구실 삼아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은 5·18 이후 대통령을 탈취했다”며 “편의대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전두환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 관장은 이어 “39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누구도 편의대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편의대를 정밀 해부하면 장막에 갇힌 광주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향후 5·18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혀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