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영화 그린북(Green Book) / 노래 냇 킹 콜 To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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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북(Green Book) 포스터 편집에디터
영화 그린북(Green Book) 포스터

1800년대의 미국은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농업의 비중이 적은 북부에서는 노예제도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대형 농장의 목화생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남부지역은 노예제도의 존속을 주장했다. 면화는 원료로서 수출하기 전에 일단 재배를 하고 씨를 빼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를 위한 고된 노동은 모두 흑인 노예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백인 노예상에게 붙잡혀 뱃간에 화물처럼 처박힌 채 대서양을 건너온 서부아프리카 흑인 부족의 후손들이었다.

1852년에 출판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된 스토우 부인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은 노예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노예제로 인한 남부와 북부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험 링컨이 39.8%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공화당은 노예제 폐지라는 단일 의제를 갖고 있었고 링컨 대통령의 개인적 신념 역시 노예제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남부에서는 링컨의 인형을 불태우는 등 연방 탈퇴의 여론이 빗발쳤다. 이듬해인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4년여의 치열한 전쟁은 1865년 4월 1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말콤 엑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어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을 수상한 피터 패럴리 감독의 영화 <그린북>은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매니저의 우정을 그린 ‘버디 무비(Buddy movie)’이다. 영화는 우아한 백인 여성과 인간적인 흑인운전사의 우정(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혹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백인남성과 음지에서 이를 돕는 흑인조력자의 신의(영화 <배트맨>트릴로지)를 예상하는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깨뜨린다.

1962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는 ‘립 토니(떠벌이 토니)’로 불린다. 나이트클럽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각종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 로 평판이 높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그는 허풍이 심하고 무례하며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막무가내식의 사내이지만 자상한 아빠이고 다정한 남편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토니의 아내는 집을 수리하기 위해 흑인 인부들을 부른다. 토니는 일을 바친 그들에게 주스를 건네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지켜본다. 그는 인부들이 입을 댄 컵을 벌레를 만지듯 손가락 끝으로 집어 들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클럽이 내부수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일자리를 찾던 토니는 미국 남부의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운전기사로 채용된다. 너무나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삐걱댄다. 토니는 거친 말투에 쉴 새 없이 뭔가를 떠벌이며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뒷골목 출신인 반면, 음악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셜리는 품위와 품격이 넘치는 교양인이자 지식인이며 백악관에서 초청공연을 가질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두 사람이 순회공연을 떠난 남부 내륙의 인종차별은 극심했다. 토니는 자신들이 출발하기 전 공연기획사의 관계자가 ‘그린북(Negro motorists’ green book)’을 챙겨 준 이유를 실감한다. ‘그린북’은 흑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나 숙박시설 등을 안내한 책자였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임에도 셜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이른바 ‘유색인종전용(for colored only)’ 뿐이었다. 그는 마을의 한 술집에서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공연 중임에도 흑인전용화장실을 찾아 30분 거리의 숙소를 왕복해야 한다. 토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남부지역의 인종 차별에 분노하며 셜리에게 연민을 느낀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을 대표하는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는 같은 꿈을 가졌지만 다른 삶을 살았다. 목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이후 숱한 차별에 시달린다. 이른바 ‘로자 파크스 사건’이후 버스승차 보이콧 운동을 주도하였고, 버스에서의 차별금지판결법안을 이끌어낸다. 끊임없이 인종차별반대와 흑인의 인권을 위한 ‘비폭력’운동을 펼쳤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그로부터 4년 후 급진백인단체에 소속된 백인청년에 의해 암살되었다.

말콤 엑스는 어린 시절 흑인인권운동가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마저 갖지 못했다. 14살에 학교를 중퇴한 이후 갖은 노동에 시달리다 범죄에 휘말리며 감옥에서 장기 복역한다. 수감 생활 중 흑인우월단체인 ‘네이션스 오브 이슬람’에 흥미를 느낀 후 독학을 시작하고 출소 후 뛰어난 능력으로 조직을 급격히 성장시킨다. 백인과의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는 비폭력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을 비현실적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인혐오사상의 한계를 느낀 후 흑인인권단체와의 연대를 도모했고 마틴 루터 킹과의 협력도 시도하게 된다. 흑인급진단체의 살해협박에 시달리던 그 역시 총격으로 암살된다.

성장과정부터 신념을 실현하는 방식까지 많은 차이를 보였던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다. 마틴 루터 킹은 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우리의 아이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관객에게 구타당한 냇 킹 콜(Nat King Cole)

계속되는 공연을 위해 남부내륙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셜리에 대한 차별은 심각해진다. 잠시 차에서 내린 셜리는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흑인노동자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은 이유 없이 불심검문을 받은 후 구금되었다 풀려나고, 고매한 흑인보다 밑바닥 삶을 살아온 자신이 더 흑인에 가깝겠다며 힐난하는 토니에게 셜리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는 백인 부자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준 후, 끝나면 원래의 ‘검둥이(negro)’로 돌아간다. 난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셜리를 비롯한 모든 흑인들은 삶에 대한 노력이나 열정, 힘겹게 쌓은 경력이나 능력 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피부색으로 구분될 뿐이었다.

“셜리 박사는 북부지역의 공연을 통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며 남부지역에서 공연을 하는가?”

이렇게 묻는 토니에게 셜리박사와 함께 공연 중인 단원 중 한 사람은 말한다.

” 몇 해 전인 1956년. 미국 남부 버밍험에서 냇 킹 콜의 공연이 있었다. 그는 남부지역의 도시에 최초로 초대된 흑인가수였다. 무대가 시작된 후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 내려온 후 폭행당했다. 흑인이 백인음악을 한다는 이유였다.”

냇 킹 콜(Nat King Cole)은 20세기 중반 흑인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백인만의 전유물이던 이른바 ‘러브 송’을 불렀으며 지금도 많은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는 전설적인 가수이다. 그조차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 중 폭행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돈 셜리는 토니가 그에게 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사람에게만 기대할 수는 없다

스파이크 리(Spike Lee)는 미국의 흑인영화감독이다. 말콤 엑스의 삶을 영화화 하였고 <똑바로 살아라>,<블랙 클랜스맨> 등의 영화를 통해 꾸준히 인종차별과 흑인인권문제에 집중해 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색상을 수상한 그는 영화 ‘그린북’이 작품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과의 사전 협의, 각본가의 무슬림 혐오발언 논란 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화 <그린북>이 인종차별 이슈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종차별을 개인 간의 관계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 문제로 보는 영화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시상식의 상당수 참석자 역시 “영화 <그린북>은 또다시 ‘백인 구원자 서사’를 지속시켰다”고 비판했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선의와 우정으로 극심한 인종차별문제가 일소에 해결되는 듯한 영화의 결말은 아쉬웠다. 모든 구조적 문제는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강한 의지가 결합할 때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법정에 구인된 전두환 씨가 살아남은 이들에게 사죄의 한마디쯤은 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 했다.

“이거 왜 이래.”

다음 날 국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했다. 전두환 씨의 ‘당당한’ 한 마디는 5.18 망언 3인방 징계 문제와 함께 여야의 격한 대치 국면 너머로 사라졌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집요하고 영악한’ 적폐 기득권 세력의 간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회의마저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희망을 얘기한다. 자신들의 단체 대화방에서 ‘학부모들 똥줄 타게 해야 승리한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던 한유총은 학부모들의 단호하고 결연한 꾸짖음에 하루 만에 백기를 들었다. 촛불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침묵하는 다수’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말의 광화문 광장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에 점령되었다. 그들이 함께 들고 있는 태극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줌의 극우 세력에 불과하다. 한유총을 굴복시킨 부모들과 침묵하는 다수가 다시 일어났을 때 적폐세력은 미세먼지가 바람에 씻겨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만이 평생의 꿈이었던 백범 김구 역시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처럼 암살당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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