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잔교(浮棧橋)의 목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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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항운근로자복지회관옥상에서 본 목포 내항과 유달산.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시 항운근로자복지회관옥상에서 본 목포 내항과 유달산. 목포시 제공

배들은 쉽게 포구에 닿지 않았다. 바람과 파도가 많은 날은 더욱 그랬다. 다리가 필요했다. 수줍은 연인 마냥 손을 잡아줄 그 누구, 혹은 무엇인가 필요해서였을까. 문학적 수사 말고 이 관계를 어찌 적절하게 풀어놓을 수 있으랴. 포구 교량, 나는 이렇게 비유하곤 했다. 부잔교(浮棧橋)의 문화학, 물 위에 떠 약간씩 흔들리는 이 시설에 대한 기억은 종종 나를 있음과 없음을 교통하는 세계까지 이끌곤 했다. 물상의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교직의 세계라고나 할까.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보이는 것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부잔교를 목포권 문화 수렴과 발산의 메타포로 해석해왔다. 언제나 흘러나갈 태세인 양 물 위에 떠 있는 부유물로서의 정체가 그렇고, 항구에 붙박아 구속당해 있는 신세가 그렇다. 그는 말없이 떠서 섬과 바다를 육지의 한 끝에 연결시킨다. 아니지 내륙의 한끝을 새떼 같은 섬들과 바다로 연결시킨다. 뭍과 물의 전이지대, 실존과 부존마저 교직시키는 은유의 공간이다.

목포, 영해잔교의 추억으로부터

목포 선창 영해동, 몇 군데의 부잔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것으로 부영선구점 앞에 있는 부잔교를 ‘부영잔교’라고 불렀다. 조기잔교(죠끼 산바시)는 조선기선주식회사(朝鮮汽船株式會社)의 전용잔교였다. 이후 영해잔교, 조양잔교, 대흥잔교 등으로 불렀다. 물류와 사람의 교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문화 전반을 오가게 하는, 오히려 어쩌면 은유가 아닌 직유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부잔교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이들이 얼마나 있나. 줄곧 생각한다. 문학적으로 풀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교섭의 물증, 포구의 특성을 고스란히 함축한 시어 같은 것 말이다. 시인 김선태는 온금동을 그렇게 노래했다.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렇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일을 벌이고 그래서 올망졸망 아이들이 태어나던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물때에 맞춰 보름 어간에 혹은 달포를 넘어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포구로 들어오는 이들, 그들의 바다를 뭍으로 연결해주는 다리를 나는 부잔교라고 봤다. 어느 포구건 그렇지 않으랴만 유독 목포는 부잔교가 많았다. 왜 그랬을까? 지형지세와 생태적 조건이 일단 고려되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섬과의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를 빼곤 부잔교의 특성을 제대로 톺아보기 어렵다.

목포 공연예술학, 부잔교가 교섭하는 것들

제주에는 제주학이 있고 안동에는 안동학이 있다. 진도학회를 중심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해 온 진도학도 있다. 각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섬, 안동은 국학, 진도는 서화민속예술이다. 근자에는 도시마다 지역마다 ‘학’이니 ‘미학’이니 따위 이름을 붙여 지역적 정체를 드러내려 한다. 내가 일찍이 부잔교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목포학’을 주장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목포학이라니, 근대 이후 특히 일제강점기의 색깔로 덧칠된 목포, 대체 그런 미학적 접근 혹은 추적이 가능한 것일까? 하고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간 말해온 것들을 모아서 말한다면 ‘섬’과 ‘영산강’의 예술적 수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서남해와 영산강을 수렴한 유무형의 인프라가 오늘날의 목포문화 특히 공연예술문화를 창출했다는 뜻이다. 이를 이론화하고 미래적 가치로 재창조해내는 학문적, 실기적 작업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관여하고 있는 근대 공연사만 검토해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목포는 공연예술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위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를 ‘목포학’ 산하의 ‘목포공연예술학’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내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각처로부터의 수렴은 목포항의 부잔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다소 낭만적인 이 언술은 다도해와 영산강의 물류와 문화, 특히 공연예술이 목포항의 ‘부잔교’라는 키워드를 통해 교섭되었다는 측면을 함의한다.

목포권 공연예술의 실재

목포권의 공연예술적 강점은 누차에 걸쳐 분석되고 주장되었다. 목포공연예술의 인적 자원을 분석해놓은 클러스터 계획을 참고해본다. 2005년 자료이긴 하지만, 서울특별시의 공연예술단원이 총 640명(2002년기준)으로 서울시 인구 1만 명당 0.6명인데 반해 목포시의 공연예술단원은 목포시 인구 1만 명당 9.5명으로 서울시의 약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부산, 경기도, 인천, 대구 등 주요 대도시의 인구 1만 명당 예술단원 수에 비해서도 최소한 5배 이상의 높은 수치다. 동호인 그룹과 개별 단위의 공연패를 합하면 그 숫자는 배가된다. 목포권 공연문화산업의 전망에 관해서도 유사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총 15개의 문화산업 중에서 발전가능성 큰 문화산업분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첫째 공연산업분야를(46회, 25.5%)들었다. 둘째는 공예, 미술품분야(42회, 23.3%), 셋째가 방송영상분야(38회, 21.1%)순으로 조사되었다. 공연예술분야에 대한 가장 높은 경쟁력과 발전가능성을 데이터로 얘기해온 셈이다. 이 논의가 이루어진 때로부터 근 10여년이 훨씬 넘었다. 주목할 만한 공연예술이 연구되거나 기획되었던 적이 있나? 선학들이 꾸준히 제기했고 또 목포권역의 문화담론으로 견인하고자 했던 논의들을 실행 모드로 바꾸거나 성사시킬 단계가 지나버린 것 아닌가. 내가 과문해서일 것이다. 비단 공연예술과 문화뿐일까. 정치라고 다르겠으며 경제라고 다르겠는가.

모아서 수렴했으므로 다시 발산해야

서남해지역과 영산강지역의 전통예술이 목포로 수렴되고, 근대기의 새로운 문화와 만나 다양한 공연들이 재구성, 재창조되었다. 목포라는 항구를 기점으로 영산강물이 흘러내려 바다로 흘러나가고 또 다도해 바닷물이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 내륙으로 연결되었다. 목포가 이들 지역의 공연예술적 맥락을 수렴하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던 장면들이다. 고려시기 나주가 다도해와 내륙을 연결하는 결절지로 기능하였듯이,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목포가 그 교섭의 결절지로 기능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항 이후 100여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 목포의 공연예술은 각 지역들로부터 이입된 전형(프로토타입)으로서의 토대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재창조된 근대기의 공연예술을 보자. 다른 어떤 도시에 비해서도 강력하게 콘텐츠를 습합시켰던 장소가 목포라는 점 분명하다. 목포학의 중심을 공연예술 혹은 범박하게 예술학으로 설정하는 실효성을 생각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포는 주변의 공연예술을 수렴하여 그 정체를 확보해왔다. 여타의 각 장르를 창조적으로 수렴시키니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 여기, 우리들이다. 이 논의를 확산하고 발산하는 시도들이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광주는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를 컨셉 삼았다. 목포는 무엇을 컨셉 삼고 있나? 예컨대 부잔교를 통해 이입되어 재창조되었던 예술세계를 다시 발산해야 하는 의무를 자각하고 있을까.

‘갱번’의 변증법적 인식, 부잔교의 홍어삼합론

나는 목포를 염두에 둔 공연예술의 배경과 기반을 ‘갱번’이라는 인식에서 찾은 바 있다. 강과 바다를 크게 구분하지 않은 ‘갱번’이란 호명방식은 바다를 강으로 생각하거나 강을 바다로 생각하는 다도해 섬지역 사람들과 영산강변 사람들, 나아가 남도 사람들, 더 크게는 한해륙(한반도의 긍정적 호명방식)을 중심으로 하는 황해 전반의 독특한 사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 섬, 영산강의 세 기반, 혹은 바다, 영산강, 내륙이라는 지리 문화 기반의 교직이 바탕에 있다. ‘홍어삼삼론’은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 홍어가 함의하는 것들을 이입시킨 내 이론 중 하나다. 이 구상들이 개펄과 노두, 우실을 넘어 갱번의 변증법적 인식, 곧 주역의 대대성으로 이어졌다. 십여 년 전 제안했던 수상무대 등도 이런 상상의 결과물이다. 한 시기 유력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중국 계림 양슈의 ‘인상유삼저’, 안동의 ‘부용지애’, 백제권역의 ‘사마이야기’와 ‘사비마르’ 등을 주장하곤 했다. 여수엑스포의 메인 공연장, 목포 하당의 바다분수 등도 이런 상상과 다르지 않다. 바다와 강이 결절되고 교섭되는 이른바 장소성을 충족하는 적소라는 점에서 제기한 상상들이다. 근자에 목포 원도심 활성화와 관련하여 지붕 없는 박물관과 스마트한 목포역사(驛舍)를 토론하고 제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목포로 돌아와 말하면, 개항기의 공연예술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중심은 목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이다. 지금 그 중심은 하당 혹은 남악으로 이동했다. 재구성이 필요하다. 부잔교를 다시 내세워 새로운 상상을 주문하는 것이 철 지난 꿈에 불과할까? 이즈음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린 목포 원도심 재생문제를 보며 드는 생각들이다.

남도인문학팁

한해륙 전반을 포섭하는 부잔교의 목포학을 제안하며

목포 외달도는 외월도라고 한다. 1911년 일제가 발행한 지도에는 月島, 外月島(밭달이섬)라고 표기되어 있다. 발음으로 보아 달도, 달섬, 즉 바깥에 있는 달섬이다. 그렇다면 안쪽에 있는 달섬은 없을까?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대목이다. 십여 년 전 나는 ‘밭달이섬’을 외달도로, 일명 ‘안달이섬’을 삼학도로 삼자고 제안한 바 있다. 실천 전략으로는 물위의 공연을 포함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신목포역사 등의 장소 스토리텔링이 부가될 수 있다. 삼학도 즉 ‘안달이섬’은 목포의 정체성 표상에도 그렇거니와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대비하는 공간으로서도 적소라 생각된다. 목포학 혹은 공연예술로만 좁혀 말해도, 무안의 각설이품바, 5.18, 여순, 부마항쟁을 넘어 동남아의 킬링필드까지 인권, 생명 혹은 역사적 부침에 대한 기억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할 소지가 있다. 이른바 남도의 시나위적 감성을 지닌 소재들이다. 오래된 언설, 엘빈토플러는 그의 책 제3의 물결에서 말했다.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나는 적어도 휴머니즘으로서의 인문학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꿈꾸는 일이 우리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교섭의 메타포 ‘부잔교’로부터 랜드마크 ‘안달이섬’의 미래만을 재구성하겠는가. 문화, 정치를 포괄하고 남도와 한해륙 전반을 포섭하는 부잔교의 목포학을 제안한다.

목포시 항운근로자복지회관옥상에서 본 목포 내항과 유달산.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시 항운근로자복지회관옥상에서 본 목포 내항과 유달산. 목포시 제공
목포 삼학도 전경.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 삼학도 전경. 목포시 제공
목포내항 전경.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내항 전경. 목포시 제공
목포 삼학도 전경.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 삼학도 전경. 목포시 제공
목포대교 야경이 대반동 해안도로에 설치된 인어동상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목포시 제공 편집에디터
목포대교 야경이 대반동 해안도로에 설치된 인어동상과 함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목포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