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 비밀 공유하는 예술의 책임과 방식 – ‘프롤로그 공연’에 붙여

박관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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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예술가로서 우리의 책임은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 ‘로마’의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예술이 추구해야할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비밀에 대해 설파한 말이다.

멕시코 출신인 쿠아론 감독이 만든 영화 ‘로마’에는 우리가 아는 전통 깊은 역사와 예술의 중심인 이탈리아 로마가 없다. 감독 자신이 나고 자란 멕시코의 한 궁벽한 시골 마을인 ‘로마’가 있을 뿐이다.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 자신이 아니고 가정부인 클레오이다. 어린 시절에 가정부인 그녀와 감독이 상처를 공유했으며, 이러한 상처는 그대로 멕시코가 안고 있는 상처이면서 동시에 더 나아가 인류가 안고 있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영화 ‘로마’는 순전히 흑백영화이다. 약간의 세련된 영상이미지만 빼면 그대로 1950년대의 무성영화와 닮았다. 필자는 이를 느껴보려고 음성 없이 자막으로만 영화를 다시 봤다. 영화는 구아론 감독의 진술처럼 단순한 50년대의 흑백이 아닌 현대적인 흑백을 통해서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담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읽혔다.

“지금까지 우리는 블랙리스트였고 신용불량자였습니다. 그리고 음악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는 지난 토요일 광주 빛고을문화관 공연장에서 진행된 노래패 ‘프롤로그’의 첫 콘서트 ‘다시 합시다’를 시작하면서 리드싱어 최성식이 보낸 오프닝 멘트다. 얼핏 흥겨운 음악 공연을 기대했다가 잠시 뜨악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연을 통해 블랙리스트와 신용불량자, 음악에게 미안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일제 위안부 소녀상을 보면서 “맨발의 소녀의 그림자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꼬옥 꼬옥 움켜쥔 두 주먹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를 묻는 노래 ‘소녀’가 아릿했다. ‘형광 불빛 담요로 삼아 철제의자 꽃배 띄워/뜬 눈으로 둥-둥 떠다니다/가끔 고인 팔뚝에 침 흥건히 번져오는’ 시노래 ‘푸른 야근’을 잘 모를 것이라며 울먹이듯이 부르는 이들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오랜 활동을 접고 ‘음악에게 미안해서’ 가수 김원중의 조언을 계기로 활동하고 있는 현장 음악인으로서의 배고픔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밀이다.

이미 영화 ‘소공녀’를 비롯해 조안 롤링의 소설을 원작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을 통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한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모국으로 귀국해 멕시코어로 된 흑백영화를 통해서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일어나는 가정 내 불화와 사회적 억압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비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듯이 말이다.

물론 이러한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르다. 프롤로그는 ‘저리 노래하다가 몸에는 무엇이 남을까?’를 생각하게 할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열창하는 싱어 서민정과, 노래는 물론 하려하고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그때그때 변하는 공연장의 조명과 분위기까지 장악하는 박동주의 열창은 충분히 콘서트의 맛을 보여줬다. 이러한 공연의 내면에 구축돼 있는 뼈대와 내장들이 비밀을 이뤘다.

그 뼈대는 우리 사회의 상처와 이의 극복을 기원하는 시들이다.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인 ‘담쟁이’와 이상국의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등을 통해 우리 시대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와, 광주·전남에서 활동하는 신남영, 강회진, 박관서의 시노래들을 통해 곡진한 내장을 공유하는 예술로서의 우정과 자유로움을 보여줬다.

파워풀하면서도 세심한 노래를 매개로 사회적인 메시지와 예술적인 지역성을 더해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영역을 확장해가는 프롤로그의 향후 활동에 기대를 걸면서, 가장 어두운 우리 시대의 비밀을 통해 가장 밝고 찬란한 빛을 만들어내야 하는 예술가로서 책임을 다시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