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다시 감옥에 가야 한다

20일 밤 광주역 불법 발포 후 21일 자위권·진돗개 하나 발동, 그날 11시 신군부 대책회의서 전씨 ‘자위권 강조’는 발포 최종승인 명령. 전씨 하달 전후 광주에 헬기 급파 기동작전 전개, 헬기사격 목격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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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는 여전히 거만했다. 취재진에게 “이거 왜 이래” 라고 버럭했다.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출두한, 노쇠한 89세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형법 제308조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을 앞두고 있다. 이 죄는 ‘허위’ 와 ‘고의성’이 쟁점이다. 허위성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고의성은 사격을 알면서도 회고록에 썼는가 여부다.

전 피고인이 감옥에 가야 할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헬기 등 발포를 최종 승인 명령했고, 헬기 발포를 뻔히 알면서도 없었다고 강변했다.

무장 헬기의 광주 출동은 80년 5월20일 광주역 집단발포에서 시작된다. 그날 시민들은 3공수여단을 상대로 공방전을 벌였다. 수 천 명이 공수부대를 포위하고, 차량을 동원해 진압군에 항거했다. 18, 19일 자행한 7·11공수부대의 잔인한 폭력 진압에 대한 분노였다. 시위 진압 중 공수부대원 1명이 숨지자(16대대 정관철 중사), 대대장들은 발포를 요청했다. 이 때 최세창 여단장은 각 대대에 M16 실탄 반출과 배부를 명령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 속보철. 1980.5.20. 22:27) 이어 12·15대대는 24시께 비무장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김재화(25)씨 등 4명이 숨졌다.

3공수의 발포 후 21일 오전 4시30분~5시35분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재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육군본부는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고, 오전 8시를 기해 전교사 지역(호남)에 진돗개(비상경계령) ‘하나’를 발령했다. 접적(接敵· 적과 교전) 상황인 진돗개 하나가 떨어지자 전 부대에 개인당 90발씩 탄환이 지급됐다. 뒤늦은 자위권 발동은 광주역 불법 발포를 합리화하기 위한 신군부 무마책이었다.

자위권(발포)과 진돗개 하나가 하달되면서 21일 오전 5시10분~오전 11시에 502항공대 무장헬기 500 MD 5대가 광주에 투입됐다. 육군 1항공여단 소속 UH-1H 10대도 급파됐다. 전교사는 오전 9시 2군사령부에 무장헬기 긴급 지원을 건의했다. 그러자 오전 10시45 이후 제31항공단 103항공대 AH-1J(코브라) 2대, 500MD 5대가 추가 배치됐다.

전두환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오전 11시 국방부장관실에서 대책회의가 다시 열렸다. 새벽 4시 계엄사 회의가 공식 지휘라인이었다면, 장관실 회의는 실세 회의였다. 주영복 국방부장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 차규헌 육사교장 등 5명. 광주 진압과 무관한 노, 차 씨가 참여, 수뇌부임을 확인시킨다.

이 때 전두환은 “자위권 발동'(발포)을 재차 강조했다. 신군부 공훈록인 ‘제5공화국 전사’ 제4편 1651~1654쪽에 ‘전 각하, 초병에 대해 난동 시 군인 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기록돼 있다. 전 씨의 자위권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30분 후인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자행됐다. 전두환의 자위권 강조는 사실상 발포 최종 승인이었다.

전두환의 명령이 하달되자 무장헬기들도 기동작전을 전개했다.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은 오후 4시께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전차와 무장 헬기를 동원하여 강경하게 충정작전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무장헬기는 UH-1H 10대, 500MD 5대, AH-1J 2대 등을 투입하여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고 명령했다. (김기석 1996년 진술조서· 황영시 대질심문)

군 작전기록의 무장헬기 기동을 보면 △도심 전단 살포 △20사단 지휘부 등 도청 일대 공중정찰 △전남대 가스 살포 해산 △20사단 병력 공중기동 작전 추진 △시민군 헬기 1대 피격 등이 나온다. 헬기 사격의 흔적은 아예 없다.

근데, 접적 상황에서 전두환-참모차장의 헬기 사격 명령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을까. 조비오 신부를 비롯, 신모 신부, 이광영, 최모, 정모 씨 등은 21일 오후 불로동, 광주천, 백운동로터리, 기독병원, 광주역에서 금남로 쪽, 대의동 등지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21일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3공수여단 불법 발포(20일 24:00)-계엄사 새벽 대책회의(04:30)-자위권 및 진돗개 하나 발동-탄약분배 및 헬기 투입(05:10 이후)-전두환 자위권 강조(11:00-12:30)-전남도청 집단발포(13:00)-광주도심 헬기 기동작전-공수부대 숙영지로 후퇴(17:00)-퇴각 중 금남로 일대 무차별 사격.

광주가 피로 물든 21일, 전두환 합수부장의 자위권 명령 전후로 상황이 확연히 달라진다. 공수부대, 탱크, 헬기 등 모든 무력자산이 총동원돼 학살이 이뤄졌다. 전두환은 광주학살의 최종 명령자였다. 학살은 M16, 클레모아, 무반동 포, 무장헬기까지 동원됐다. 전투기까지 발진시키려 했다. 전일빌딩 193개의 헬기 탄흔, 그리고 금남로는 무장헬기의 총탄 세례를 기억하고 있다.

전 씨는 고 조비오 신부를 넘어 순결한 5월 열사마저 능멸했으니…. 그가 갈 곳은 오직, 감옥 뿐 이다. / 이건상 선임기자 · 이사

 이건상 기자 gslee@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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