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자, 광주 3·1만세운동 참가하다

광산 이씨家 이주상·이윤호·이창호
일곡마을서 수백명의 농민·학생 이끌고
삼일운동 참여… 독립운동 자본금 모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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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일원에 위치한 애국지사 이윤호 공적비(가운데). 공적비를 기준으로 왼쪽에 일곡공 종중의 시조를 기리는 비와 오른쪽에 광산 이 씨 내력이 적힌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강송희 기자 songhee.kang@jnilbo.com
광주 북구 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일원에 위치한 애국지사 이윤호 공적비(가운데). 공적비를 기준으로 왼쪽에 일곡공 종중의 시조를 기리는 비와 오른쪽에 광산 이 씨 내력이 적힌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강송희 기자 songhee.kang@jnilbo.com

“그 당시 대가 끊길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항일 운동에 앞장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광주 인물들입니다.”

지금의 광주시 북구 일곡동은 과거에 전남 본촌면 일곡마을로 불렸다.

이 중 일곡동 서쪽 지역은 과거 광산 이 씨 집성촌이었다.

이곳에서 냉혹한 일제 강점기 시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다 함께 길거리로 뛰쳐나간 삼부자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이주상, 이윤호, 이창호. 3대가 조국 독립을 위해 한목숨 초개 같이 내던진 의인들이었다.

먼저 1917년 일곡동에 처음으로 개신교 교회를 설립한 인물로도 알려진 아버지 이주상(1867-1948)은 광주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따르면 이주상은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 광주면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당시 만세 시위는 양림동 방면에서 기독교인과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며 모여들었고, 지산면 쪽에서 수백 명의 농민이 참여했다. 이들 농민은 일곡리 유지였던 이주상 등이 일곡과 생룡 일대에 많이 거주하던 이 씨와 범 씨, 박 씨 일가 인원을 동원한 결과였다.

또 이주상은 같은 해 6월께부터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전남 기독교인 사이에 조직된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해 회원 모집과 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돼 1920년 6월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만세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21세의 나이로 동생 이창호와 처남 유계문 등과 함께 3·1만세운동에 참여해 수백명의 군중을 지휘했던 이윤호.

그는 광주 시내로 진입하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일경에 붙잡혀 그해 4월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징역 4월형을 받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했으나 기각돼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3·1만세운동 직후 대동단과 연계해 1920년 5월부터 1922년 9월에 이르는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파원인 한준호, 박문용, 신대선 등에게 권총을 가지고 군자금 모집에 관한 취지문을 발송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피체되어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궐석(闕席)재판으로 징역 7년형을 받았고, 그 후 1922년 9월 1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되어 1924년 12월31일까지 옥고를 치렀다.

광주시와 광주 북구가 발간한 ‘광주 북구 지산 향토지리지’에 따르면 그는 대동단과 연계한 노석중, 노석정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으며, 모금 활동에는 그의 아내인 유덕례도 참여해 당시 일곡동에 있던 이들 부부의 집은 군자금 모금 활동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대동단의 신덕영과 최양옥, 노석정이 군자금 모금 활동을 협의했다.

현재 광주 북구 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일원에는 당시 이곳에 터를 잡았던 광산 이 씨 내력이 적힌 유허비와 함께 애국지사 이윤호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대전현충원에 1994년 안장됐다.

이주상의 차남 이창호 (1902-1931)는 숭일학교 재학 중 아버지와 형을 따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됐다. 그해 4월13일 광주지방법원을 거쳐 1919년 8월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이 확정되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현재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이주상은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이윤호에겐 1996년 애국장, 이창호에겐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삼부자가 일본강점기 목숨을 바쳐 항일운동을 전개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일가의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올 뿐 이들을 기리거나 공을 아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광산 이 씨 종친회에서는 현재 이들의 공을 후세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족보에도 공적 사실을 정리해서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광산 이 씨 종가 이병석(북구의회 前의원)씨는 “그 험악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에 힘썼던 이분들이 있었기에 그 정신이 이어져 광주 곳곳에 민주화 운동을 앞당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더 늦기 전 유관기관에서 삼부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광주의 또 하나의 3·1운동을 재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부자의 이야기를 종친회에 전한 전남대학교 김재기 교수는 “삼부자가 농민들을 이끌어 3·1운동에 참가했다는 것이 특히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주의 3·1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이 없다. 광주시가 해당 관련 기록들을 모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으로, 이를 계기로 삼부자를 포함해 여성과 학생독립가 등의 연구도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송희 기자 songhee.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