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해동사. 도마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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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사와 해동사 전경 편집에디터
만수사와 해동사 전경 편집에디터

그것이 왜 거기 서 있을까? 단지한 손을 들고 선생은 왜 바다를 바라보고 계실까? 사람들이 동으로, 해 뜨는 곳으로, 정동진하여 갈 때, 어느 날 나는 남으로 정남진하여, 국토의 남방 맨 끝에서 안중근을 만났다. 토요시장 갔다가 표고삼합 먹고 돌아오는 장흥, 거기서 회진으로 더 내려가 정남진 전망대에 들렀더니, 안중근 선생이 단지한 왼손을 들고 바다를 향해 서 계신 것이 아닌가. 무슨 연유로 황해도 해주 출신인 그의 동상이 멀고 먼 장흥 정남진에 우뚝 서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

장흥군 장동면 만연리 만수마을에는 두 개의 사당이 나란히 있다. 만수사와 해동사. 만수사(전남문화재 71호)는 죽산안씨의 사우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과 조선시대 향학과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원형, 안면, 안정생, 주세붕, 안중묵 6인의 선현을 제향해 오고 있다. 선조들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51년 준공하였는데, 몇 년 지나 바로 옆 자리에 ‘해동사(海東祠)’를 추가로 건립한 것이다. 이 사당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장흥과 안중근, 만수사와 해동사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을까?

안중근(1879~1910)은 아버지 진사 안태훈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사이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몸에 검은 점 일곱 개가 있어서 어려서 응칠이라고 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 토마스는 한자어로 ‘도마’가 되어 그의 호로도 쓰인다. 순흥안씨로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의 26대 손이다. 장흥유림 안홍찬(죽산안씨)옹을 비롯한 안씨 후손들은 안중근 의사의 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당 건립을 결심한다. 뜻을 같이 한 장흥군을 비롯한 도내향교의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1955년 만수사 사당 바로 옆에 작은 규모의 해동사를 완공하게 됐다. 사당 안에 또 하나의 사당을 지은 것이다. 그해 10월 27일 봉안식에는 안 의사의 딸 안현생과 조카 안춘생이 참석했고, 인구 4만의 장흥에서 무려 1만명이 참석한, 성대한 봉안식을 가졌다. 그 뒤에 공간이 좁아 세 칸 규모로 다시 지었다. 해동사 안에는 안중근의 영정과 그가 남긴 유묵 작품들이 걸려있다. 해동사라는 이름은 건립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쓴 대한민국을 비추는 곳이라는 해동명월(海東明月) 편액에서 따왔다.

전국에서 안중근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유일한 사당 해동사.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까, 안중근 동상이 있는 정남진이 중국의 하얼빈역과 동경126도 일직선에 있다는 사실, 안중근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자 장흥 사람들이 찾아낸 인연의 퍼즐이다. 그리고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음력 3월12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사당에 위패를 모시고 배향을 하는 것은 살아서의 정신이 올곧게 전해져 오기 때문에 그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다. 사당은 가문의 명예나 살아 생전 높은 벼슬을 했다고 과거의 영화를 기리는 것이 아니고 빙호추월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니 아무 연고가 없는 장흥 해동사에 안중근의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26일 9시30분 역사적인 운명의 날, 그 날 하얼빈역에 울린 총성은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가속화 시켰고 세계인을 대한제국에 집중케 했다. 안중근은 자기를 버림으로써 오직 나라를 삼고자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회담을 위한 안중근은 저격을 위한 하얼빈이라는 목적지는 같았지만, 이토는 대륙을 집어 삼키기 위해 안중근은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그 목적은 분명 달랐다. 침략의 원흉 이토를 저격하고 품안에서 태극기를 꺼내 외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는 온 국민의 울분을 씻어내는 통한의 소리였다. 안중근은 1910년 2월14일 사형이 선고되었다. 옥중에서 남긴 유묵 200여점 중 26점이 보물 제569호로 지정되었고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과 ‘동양평화론’ 기초를 남겼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어머니가 지어준 하얀 수의를 입고 이국땅 여순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향년 31세였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네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이다. 얼마나 참담하고 억장이 무너졌을까. 안의사 순국 후 조마리아는 연해주와 상하이에서 죽은 자식이 남긴 ‘대한 독립’의 유지를 지키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시모시자(是母是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안중근의 31세 짧은 삶이 결코 누추하지 않는 것은 저 남도의 끝 정남진 장흥에서 오늘까지 그 정신이 살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

11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현재화 할 것인가. 항일국가유공자 중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이는 안중근이다. 그는 의로써 죽음을 삼은 애국정신의 표상이며 북쪽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남쪽 전라도 장흥이라는 정신적 공간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죽산안씨제학공문회 안종덕(75세) 회장을 만났다.

-해동사는 안중근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전국 유일의 사당인데 만수사와 어떤 인연이 있나요?

“우리는 죽산안씨인데 순흥안씨는 큰집이죠, 1952년 무렵 문중의 안홍찬 어르신이 나서서 의로운 분을 그냥 놔둘 수 없다. 우리가 모셔야 하지않겠느냐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1955년 해동사가 건립이 되고 오늘날까지 제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회 어르신들이 쭉 해오신 일입니다. 우리도 그 뜻을 잘 지켜 나가야지요.”

-만수사와 해동사의 제향일은 언제인가요?

“음력 3월12일인데 만수사와 해동사에서 같은 날 거행하고 있습니다. 만수사는 죽산박씨 본손들이, 해동사는 장흥유림과 문중에서 함께 참여합니다. 그런데 해동사에 모신 안중근 선조는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신 날이 3월26일이니 그 날로 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어서 곧 회의를 할겁니다.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날겁니다.”

-2010년은 안중근의사 순국 10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3.1운동 100년입니다. 여러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 최초 안중근 사당 해동사는 역사공간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하면 좋을지요?

“장흥군에서 정말 열의를 가지고 협력해주고 있습니다. 행정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어렵지요. 한 칸으로 시작된 해동사가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세 칸으로 되었고 올해 2019년부터 21년까지 70억 규모 예산으로 안중근의사체험교육관도 짓고, 메모리얼파크를 만들고, 애국탐방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본격 진행 됩니다. 문중에서도 최대한 협력해서 선조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역사교육의 대표 공간으로 잘 만들어가야지요.” 사당 안에 걸린 <孤莫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처럼 외로운 것은 없다’는 안중근의 유묵 작품과 같은 겸손함이 체화된 대화였다. 정남진에 안중근 동상, 장흥에 안중근 사당, 누군가는 의아해 하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일이라 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해동사가 만수사 옆에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19년 올 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1일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한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해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3월26일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이 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이 집행돼 순국한지 109년이 되는 날이다. 국가에서 또 각 지자체에서 과거 100년을 기억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다양한 추모행사와 문화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도마 안중근의 불의에 대한 저항과 평화의 정신은 역사 속 위기와 절망의 시대마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촛불운동과 같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항의와 추모의 시민촛불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안중근의 동상이 해주에서 이만리 떨어진 장흥 정남진에 서 있는 까닭이 아닐까 하는, 해동사를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장흥 해동사에도 봄꽃이 피고 있다.

해동사 가는 만수마을 입구 편집에디터
해동사 가는 만수마을 입구 편집에디터
해동사 들어가는 문(안중근 사당이다른 푯말이 눈에 띔) 편집에디터
해동사 들어가는 문(안중근 사당이다른 푯말이 눈에 띔) 편집에디터
해동사_해동명월(동쪽에서 비치는 밝은달) 편집에디터
해동사_해동명월(동쪽에서 비치는 밝은달) 편집에디터
장흥 정남진 전망대 통일광장에 서 있는 안중근 동상 편집에디터
장흥 정남진 전망대 통일광장에 서 있는 안중근 동상 편집에디터
정남진 전망대 통일광장의 한반도 바닥분수_정남진 정동진 중강진_정남진 중국 하얼빈역과 동경126도로 같은 자오선축에 있다. 편집에디터
정남진 전망대 통일광장의 한반도 바닥분수_정남진 정동진 중강진_정남진 중국 하얼빈역과 동경126도로 같은 자오선축에 있다. 편집에디터
장흥 정남진 통일광장 바닥분수 편집에디터
장흥 정남진 통일광장 바닥분수 편집에디터
1955년에 건립된 최초 해동사 편집에디터
1955년에 건립된 최초 해동사 편집에디터
해동사 편액_해동명월(대한민국을 지추는 달, 동쪽의 밝은 달)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 편집에디터
해동사 편액_해동명월(대한민국을 지추는 달, 동쪽의 밝은 달)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의 안중근 의사 영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의 안중근 의사 영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 안중근 의사 위패(의사안공중근)-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 안중근 의사 위패(의사안공중근)-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 안중근의사 영정과 위패 편집에디터
해동사 안 안중근의사 영정과 위패 편집에디터
4-2.해동사 안 안중근 의사 유묵_고막고어자사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 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는 뜻(겸손하라는 의미) 편집에디터
4-2.해동사 안 안중근 의사 유묵_고막고어자사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 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는 뜻(겸손하라는 의미) 편집에디터
극락_안중근의사 유묵 극락_일제가 나를 가뒀지만 이곳이야말로 극락이라고 생각하겠다. 편집에디터
극락_안중근의사 유묵 극락_일제가 나를 가뒀지만 이곳이야말로 극락이라고 생각하겠다. 편집에디터
만수사와 해동사(오른쪽.1955년 지어진 한칸 건물) 편집에디터
만수사와 해동사(오른쪽.1955년 지어진 한칸 건물)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