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아버지 이어… 목숨걸고 일제에 맞선 3代

I 광주·전남 3·1운동 100주년 <3>광주·전남 3대 독립운동家
10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故김창곤·복현·재호...
단발령 항거, 광주 3·1운동, 임시정부서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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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신정완 가족 사진.가운데가 아버지 김철과 손자 유생군. 아래사진은 중경에서 찍은 김재호씨 부부. 김달호씨 제공 편집에디터
김재호,신정완 가족 사진.가운데가 아버지 김철과 손자 유생군. 아래사진은 중경에서 찍은 김재호씨 부부. 김달호씨 제공

처음엔 할아버지였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의 험난한 길을 걸은 것은.

그런데 두말도 없이 아버지가 그 뒤를 이었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일제와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자 아버지의 아들마저도 홀연히 일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무려 3대가, 호남의 한 일가족이, 무엇하나 바라지 않고 온전히 조국 광복을 위해 나섰다. 허나 그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100년이 흐른 지금 이 시대에서 사라진 영광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의무일지 모른다. 그들의 이름은 김창곤·김복현(김철)·김재호다.

나주 출신인 1대 김창곤은 일본이 친일내각을 앞세워 단발령을 내리자 이에 항거해 의병활동을 일으켰다. 그의 아들 김복현은 3·1운동때 광주 3·1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손자 김재호는 상해임시정부 광복군에 들어가 부인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먼저 김창곤은 1896년, 청일전쟁 후 명성황후 민씨 시해사건과 단발령의 강제시행에 분격해 친일내각 타도 등을 목표로 나주에서 또 다른 아들 김석현과 함께 을미의병에 참여하다 순국했다.

김창곤이 외쳤던 단발령 반대 의거는 실패에 그쳤지만, 전남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으로서 최초의 의거였으며, 항일투쟁사에 한 발자국을 남겼다.

김창곤의 피는 향후 광주 3·1만세운동의 주역 김복현(1890-1969)이 이어간다. 김복현은 광주의 3·1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는 광주에서 최흥종과 함께 광주 대표로 서울에 올라가 광주지역유학생과 만나 광주 3·1만세운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최흥종이 서울에서 체포되자 홀로 광주로 내려와 10여명과 함께 광주 거사를 논의하고 임무를 나눴다.

그는 3·1만세운동 주동자로 검거 돼 최고형인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옥고를 치르고 난 후에도 신간회와 전남건국준비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그가 얼마나 강인한 정신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는지는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김복현의 또 다른 이름은 ‘김철’이다. 3·1운동 주도자로 체포돼 재판에 섰을 때 “주도자는 나다. 내 지시에 따라 행동한 이들은 돌려보내라. 내 이름은 김철(鐵)이다. 쇠는 불에 달구고 두들길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얼마든지 해볼 테면 해봐라”라고 주장해 이때부터 김철로 불렸다.

김철의 아들 김달호(81)씨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알아보고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따라와 그 당시 충장로를 가면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멈춰서 인사를 나누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철의 장남 김재호(1914-1976)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재호는 전주신흥중학교에 재학중 1933년 2월 당시 중국 남경에 있던 김원봉이 만든 의열단에서 파견된 비밀공작원 정의은을 만나 중국으로 밀항한다.

남경에 도착한 김재호는 당시 의열단에서 운영하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교관으로 임명돼 근무했다. 그는 1940년 9월 중경에서 창설한 광복군에 입대해 주로 하남성 낙양전선에 파견 돼 일본군과 싸웠다. 그는 일선에서 생포한 일본군 포로들로부터 일본군의 배치상황과 부대이동등 정보를 빼내는 일을 맡아했다.

또한 1942년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에 아내 신정완과 함께 가입해 열정적인 독립활동을 펼쳤다. 1945년 8월15일 광복이 되자 귀국한 김재호는 이후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등 민주주의 구현에도 앞장섰다.

노성태 국제고 수석교사도 3대에 걸쳐 항일운동을 펼친 이들을 ‘남도 최고의 충절 가문’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김달호씨 밖에 없다.

김달호씨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형의 업적들을 기리고 기억할 수 있는 작업들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1990년 김복현에게는 애족장을, 김재호와 그의 아내 신정완에게는 애국장을 수여,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강송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