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피흘리는 광주 껴안았던 ‘거룩한 바보’

▣ 내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5·18 직후 전두환 면담 등 사태수습 노력
윤공희 광주대교구장에 거액 동봉 비밀편지
광주 참상 ‘동족상잔 비극’ 6·25에 빗대기도
선종 10주기 맞아 5·18기록관서 특별전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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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직후 수감자 구명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는 김수환(왼쪽) 추기경과 윤공희 대주교. 5·18기록관 제공 편집에디터
5·18민주화운동 직후 수감자 구명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는 김수환(왼쪽) 추기경과 윤공희 대주교. 5·18기록관 제공 편집에디터

오는 16일은 고(故)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선종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김 추기경은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온몸으로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 세력의 선봉장이었으며 광주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던 성직자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돌보고, 불의에는 단호히 맞섰던 김 추기경은 스스로 ‘바보’로 불리는 것을 마지 않았다.

선종 10주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추모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광주는 특별한 의미를 두고 김 추기경을 기리고 있다. 39년 전 5·18민주화운동 때 피 흘리는 광주를 껴안았던 그의 행적 때문이다.

● 5·18 사태수습 백방으로 노력

“본의 아니게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20여년 중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광주의 5월’이라고 말한다. 광주에 내려가 시민들과 함께 피 흘리며 싸웠더라면 그토록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전에 김 추기경이 남긴 말이다. 5·18기념재단이 작성한 그의 구술증언채록에는 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김 추기경이 백방으로 나섰던 일들이 회고됐다.

서울에 있던 그가 광주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은 광주대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를 통해서였다. 80년 5월19일 윤 대주교는 금남로 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자리) 6층 사무실에서 계엄군에 의해 시민들이 짓밟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선뜻 저지에 나서지 못했던 윤 대주교는 이날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김 추기경을 만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여긴 김 추기경은 5월20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김 추기경이 ‘유혈사태를 지속시키지 말아달라’는 말을 꺼내려 하면 자꾸만 국방부 등 외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변변한 답변도 듣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했다.

신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생각에 위컴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결국 연결되지 못했다. 주한 교황대사관을 통한 방법도 실패했다. 광주와의 연락선은 끊겨 있었고, 유혈사태를 막을 방법도 없었다. 주교회의 이후 광주로 돌아간 윤 대주교에게 비밀편지를 보내려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 비밀편지에 거액 동봉해 보내

당시 광주는 고립된 상태였기에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협조가 필요했다. 계엄사령부 군종신부가 광주 상무대 군종신부에게 편지를 전했고, 광주대교구 조비오 신부가 국군통합병원에 맡겨진 편지를 윤공희 대주교에게 전달했다.

김 추기경과 윤 대주교의 기억에 의하면 1장 분량의 편지에는 ‘부상자가 많다는 소식에 걱정이 크다. 무력진압을 막아보려 노력하겠다. 광주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 따라서 진실이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 추기경은 편지에 1000만원짜리 수표 한 장도 동봉했다. 그는 함께 넣은 돈을 부상자들을 긴급구호하는데 써달라고 당부했다.

광주를 구하기 위한 김 추기경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 재야논객 천관우 등과 함께 광주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김 추기경의 의지는 광주대교구에도 전해져, 80년 5월23일 ‘광주사태에 대한 전국 신자들에게 기도요청’,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광주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소상히 알린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 등이 작성돼 퍼져 나갔다. 이는 향후 5·18 진상규명에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시초가 됐다.

김 추기경은 그해 6월25일 발표한 ‘6·25 동란 30주년을 맞이하여’ 시국담화문을 통해 5·18을 ‘동족상잔의 처참한 비극’으로 빗댈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간파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잔혹했던 80년이 지나고도 광주의 진실을 위한 김 추기경의 노력은 이어졌다. 로마 교황청을 방문할 때마다 세계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당대 ‘평화의 사도’로 불렸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5·18 현장인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찾아 오월영령을 위로한 것도 김 추기경의 지속적인 권유와 부탁의 결과였다.

● 선종 10주기 추모행사 잇따라

김 추기경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0주년 기념위원회’는 10주기 당일인 16일 오후 2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추모미사를 봉헌한다.

광주의 경우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24일까지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기념 특별전시회’를 갖는다. 전두환 면담 사진, 윤공희 대주교에게 보낸 비밀편지 및 광주 위로금 1000만원 기록물 등 5·18과 관련한 김 추기경의 각종 사진물과 기록물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