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Operation Finale)> / 음악 알렉산드르 데스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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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 포스터 편집에디터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 포스터 편집에디터
김기호 문화평론가 편집에디터
김기호 문화평론가 편집에디터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고 말하는 우루과이 출신의 작가 에두아르노 갈레아노는 학창 시절 역사 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역사 수업은 밀랍인형 진열관이나 죽은 자들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것 같았다. 과거는 적막하고 공허했으며,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우리에게 과거를 가르친 이유는 아무런 의식 없이 현재를 살라는 뜻이었다.”

‘<불의 기억> 3부작’을 통해 기존의 역사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포스트 모더니즘적 방식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서술한 작가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의 기억>이 이런 역사에 숨과 활기를 불어넣고, 말을 되찾아 주기를 바란다. 수세기에 걸쳐 라틴아메리카가 빼앗긴 것은 금과 은, 초석과 고무, 구리와 석유만은 아니었다. 기억 또한 강탈당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존재를 말살한 자들은 망각을 강요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공식 역사는 세탁소에서 방금 찾아온 제복을 입은 영웅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다. 다만 작가로서 빼앗긴 아메리카의 기억, 특히 사랑이 경멸에 내몰린 땅 아메리카의 기억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싶을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기억을 강탈하고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에 대항하여 기억을 되살리고 바로잡고 드러내려는 자들의 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기억의 역사서

얼마 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겠다며 가진 행사에서 극우논객 지만원은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독일 국민들은 기성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히틀러라고 하는 젊은이가 곳곳에서 신선한 내용으로 연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에도 그는 불과 22개월 만에 총통으로 등극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그는 김진태 의원이 젊은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여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길 바란다는 의미의 덕담이라고 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크리스 와이츠 감독의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Operation Finale)>는 이런 설명과 함께 시작된다.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는 ‘국가의 적’이라는 이유로 천만 명 이상을 학살하였고, 그 중 6백만 명은 유럽계 유태인이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히틀러, 히믈러, 괴링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법의 심판을 회피했다. 나머지 홀로코스트의 수뇌부들은 종적을 감췄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소환되지도 않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세상으로부터 잊히기 시작한 SS친위대의 유태인 학살 최고실무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1960년, 프리츠라는 독일의 지방검사가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Mossad)에 찾아온다. 그는 잠적한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지만 모사드의 국장은 이미 지난 일이라는 이유로 이를 묵살한다. 이에 모사드의 요원들은 이른바 홀로코스트의 또 다른 이름인 이른바 ‘최종해결’의 설계자에 대한 제보를 무시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한다.

종전 이후 남미로 도피한 나치의 잔당 중 일부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잠적해 있었다. 도시의 한 회관에 모인 이들은 유태인들이 아르헨티나도 오염시킬 거라며 이들을 비누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무리 중의 한 남자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장남인 클라우스 아이히만이었다. 현지의 모사드 요원들은 클라우스와 교제 중이던 유태인 실비아를 통해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접근한다.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들은 비밀체포작전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왜 아이히만을 현장에서 사살하지 않고 재판에 세워서 유명인으로 만들려 하느냐는 반발이었다. 나치의 학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요원들은 모두 극도의 복수심을 드러낸다.

모사드의 요원인 피터(오스카 아이작 분) 역시 홀로코스트 당시 누나를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이히만 긴급체포작전에 투입된 그는 해나(멜라니 로랑 분)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할 계획을 세운다.

현지로 떠나기 전 이들을 찾은 이스라엘의 총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이히만의 만행이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그자의 전철을 답습할 이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 인류는 역사의 기록을 통해 과거를 기억한다. 이 기억의 역사서는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이를 기록할 펜을 쥐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법적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온전하지 않다. 펜을 쥐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당시에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민중을 학살하고 헌정을 유린한 수괴의 아내는 그가 민주주의의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기록을 완성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다. 이는 광주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역사 전체의 문제이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지 알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앞장서고 부역한 자들을 단죄하지 못했다.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했고 그로 인한 분열과 반목의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마저 미완으로 남긴 채 펜을 놓을 수는 없다.

오퍼레이션 피날레

아이히만은 자동차 공장의 감독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었다. 그의 동태를 감시하던 피터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보며 치를 떤다. 누이의 목을 매달아 두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나치군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피터와 모사드의 요원들은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아이히만을 체포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를 이스라엘로 송환할 항공편에 차질이 생긴다. 비밀안가에 아이히만을 감금하고 감시하는 피터는 수시로 살의를 느낀다. 아이히만은 피터에게 자신은 그저 ‘톱니바퀴’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이른바 ‘최종해결’의 결과를 예측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한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저 사랑하는 조국의 파멸을 막는 것이었다. 당신이라면 나와 다르게 행동했겠는가?”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만원과 일부 의원들의 막말에 대해서 역사해석의 다양한 관점이라고 했다. 그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군위안부는 돈을 벌 기회를 찾던 여성들이었고, 최근 타계한 김복동 할머니 역시 자발적으로 지원했을 거라 주장한다면 역사해석의 다양성으로 용인할 수 있는가? 이들의 참담한 역사의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히만은 유태인이든 독일인이든 우리 모두는 마치 세렝게티 초원에서 남은 먹이를 좀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동물과 같을 뿐이라고 말한다. 피터의 동료인 한나는 아이히만의 궤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동물이었다면 우린 이미 그에게 잔인하게 복수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만행으로 고통 받았지만 이에 대한 보복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요구할 뿐이다.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함으로써 그들에게 깊은 참회의 기회를 주고 있다.

광주학살의 원흉들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를 거부한다. 그들과 동조할 뿐 아니라 그 수괴를 영웅이라고 지칭하는 자들은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또다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유린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소환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하던 아이히만은 피터에게 자신들로 인해 희생된 가족이 있는지 묻는다. 피터는 누나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누나는 내게 선생님이고 부모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름다운 세 자녀가 있었다.”

결국 소환에 동의한 그는 이스라엘의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당시의 재판은 TV를 통해 중계되었고, 역사상 최초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증언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1962년 6월 1일, 아돌프 아이히만은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피터는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났다.

5·18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인 이지현 시인은 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 이렇게 한탄했다. “일제 강점기 36년보다 긴 39년이 지났지만, 천형의 땅 전라도에서 발발한 것이 잘못인지, 분단 조국의 역사적 숙명인지,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수그러들지 않고 노골화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무지에 의한 악행을 경고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더욱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러한 행위를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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