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담아 하늘에 고하다, 청자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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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청자상감상준(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01-청자상감상준(호림박물관)

제사는 자연신이나 조상신 등의 신령에게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등 지배이념의 확립과 조상 숭배를 위해 실시하는 구복(求福) 의식을 뜻한다. 따라서 하늘과 땅 등 초현실적 자연의 힘을 빌려 왕권의 위상을 확립하고 사회 통합과 자손 번영 등을 도모하였다. 모시는 대상에 따라 천신(天神)에게 지내는 제사는 사(祀), 지기(地祇)에게 지내는 제(祭), 인귀(人鬼)에게는 향(享), 공자에게는 석전(釋奠)으로 부르는 등 명칭이 달랐다. 또한, 하늘에 대한 제사는 원구단(圓丘壇), 땅과 곡신신의 제사는 사직단(社稷壇), 농사신에게는 선농단(先農壇), 누에신에게는 선잠단(先蠶壇) 등 모시는 신에 따라 각각의 단을 마련하였다. 왕실의 조상은 종묘(宗廟), 공자에게는 문묘(文廟), 집안의 조상은 가묘(家廟) 등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이러한 구분 없이 모두 제사라 이름하고 있다. 한편, 천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제후는 땅과 산천에 제사를 지낸다는 기준에 의해 왕은 중요한 제사를 직접 주관하였으며, 이외의 제사는 왕을 대신해서 중앙의 관리나 지방의 수령이 실시하였다.

인류는 일찍부터 우주와 자연 등에서 겪는 다양한 변화와 현상에 경이로움을 느꼈는데, 특히 천재지변 등의 고난을 겪을 때는 더욱 큰 공포감을 품어 초월자나 절대자를 상정하고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는 제의를 실시하였다. 따라서 원시시대와 고대에는 제사장이 집단을 이끌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정일치의 사회를 이루었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가 안정되면서 점차 체계화되어 국가 경영과 관련한 제례로 갖추어져 조상 숭배와 함께 의례로 등장하였다.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은 간략하게 남아 있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제사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어 일찍부터 자연숭배를 중심으로 제사를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국가 체제가 갖추어지는 삼국시대에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비로소 고유의 제사 의례가 정착되었다.

고려의 제사는 성종 때 정비되기 시작하여 원구와 태묘(太廟), 사직 등의 제례가 모습을 갖추었다. 이후 예종은 송의 제도와 절충하여 고려적인 예제를 확정하였다. 고려의 국가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종묘와 사직, 문묘, 그리고 도교의 초제(醮祭)와 산천제(山川祭), 성황제(城隍祭) 등이 있는데, 민생과 직접 관련된 도교적 제사가 더 빈번히 시행되고 비중도 높았으며,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불교 의례도 실시되었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고려가 불교를 사상적 주체로 표방하였으나 유교와 도교를 받아들여 서로 어우러진 다원적인 사회 체계를 구축하였음을 알려준다.

고려의 국가 제사는 중요도에 따라 대사(大祀)와 중사, 소사 등으로 나누어 규모와 일시 등을 정하였다. 이외에 국가의 정책과 이념에 속하지 않은 제사는 잡사(雜祀)와 음사(淫祀)로 규정하였다. 대사는 원구, 방택(方澤), 사직, 태묘, 별묘(別廟), 제릉(諸陵), 경령전(景靈殿) 등이 있으며, 중사에는 적전(籍田), 선잠, 문묘 등이 있고, 소사에는 풍사(風師), 우사(雨師), 뇌신(雷神) 등이 있다. 잡사는 성황과 산천제 등의 제사를 비롯하여 사묘(祠廟)의 신명(神明)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문묘 등의 유교 제례가 있었으나 철저히 적용되지는 않았다. 제천례(祭天禮)는 제후국에서는 행할 수 없었지만 고려는 천명사상에 의해 환구와 방택 등의 제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제례에 사용된 그릇은 제사의 중요성과 규모 등에 의해 종류와 수량이 변화하는데, 대사에 사용된 제기의 종류와 수량이 가장 많았다. 중사는 대사에 비해 제사 규모가 축소되고 제사 형식도 대사에 비해 간소하였다. 제기의 종류에는 변화가 거의 없으나 수량이 적으며, 희생 또한 변화한다. 소사는 중사에 비해 제사 형식이 간략하며 제기의 수량도 적고 희생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 제사는 신분에 따라 각각 시기와 절차 등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은 건국하면서 제례와 관련된 제도 정비를 통해 유교 이념을 세우려하였기 때문에 제기의 형태와 무게, 크기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성행과 함께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여 조상에 대한 제사가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으며, 왕실에서는 ‘국조오례의’에 맞추어 체계적인 제례를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의 제사 문화는 사회 전반에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종묘와 성균관 등의 제례에 전승되고 있다.

제기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일상 생활용기와는 용도와 형태 등에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옛날에는 제기를 마련하기 전에 살림에 쓰는 그릇을 만들지 않았으며, 남에게 빌리지 않고 팔지도 않았다. 또한, 살림 그릇과 혼동해서 쓰지도 않았을 정도로 매우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 실내를 장식하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대 용도로 사용되어 소유자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제기는 나무로 만든 것도 있으나 재질상 금속과 도자로 만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제기는 제례를 담당하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매우 중요하면서도 소중한 그릇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목적에 맞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엄숙함을 갖추어야 하였기 때문에 제기 제작자는 조형적 안목과 탁월한 기술이 필요하였다. 제기의 종류는 보(簠), 궤(簋), 변(籩), 두(豆), 준(樽), 뢰(罍), 이(彛), 작(爵), 잔(盞), 찬(瓚), 세(洗), 이(匜), 로(爐), 정(鼎), 형(鉶) 등 매우 다양한데, 그릇에 크기와 형태, 무늬 등에 따라 술과 곡식, 과일, 떡, 생선, 육포, 나물, 국물 등을 담아 제례에 사용되었다. 제기의 형태는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만들고 있어 대부분 중국 고대 금속기와 비슷하다.

청자 제기는 청자의 비약적 발전에도 원인이 있으나 사회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서도 만들어졌다. 청자로 만든 제기는 금과 은 등의 금속에 비해 만들기 쉽고 제작 비용이 적게 들어 사치를 금하는 근검절약의 측면과 무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청동 등의 금속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속기 사용이 규제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쉽게 파손되는 특성을 갖고 있어 금속 제기는 꾸준하게 선호되었다. 청자 제기는 이를 생산하였던 가마 유적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하였던 생활유적에서 꾸준하게 출토되고 있다. 특히, 생활유적에서 출토되는 제기는 제사만을 위한 특수한 형태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잔탁(盞托)과 향로, 귀대접 등의 그릇이 함께 확인되어 제사에 다양한 용기들이 사용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잔탁은 일반적으로 술잔과 잔 받침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제사에서도 술잔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널리 쓰였던 향로 역시 제례용기의 필수품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자로 만든 제기 가운데 동물의 형태를 본 떠 만든 상형 제기는 액체를 담는 용기인 준(尊)과 결합한 코끼리 형태의 상준(象尊)과 소 형태로 만든 희준(犧尊)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그릇은 고려시대에는 원통형 그릇 외면에 소나 코끼리를 그려 의미를 상징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오면 그릇의 형태를 소와 코끼리 모양으로 만들고 있다. 상준과 희준는 술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는데 희준에는 명수와 예재(醴齊) 즉 감주(甘酒)를 담았으며, 상준에는 명수와 앙재(醠齊)라 하여 막걸리를 담아 사용하였다. 보(簠)는 겉은 네모지고 안은 둥근데, 벼와 기장 등 마른 제수를 담아 상 중앙에 진설하였다. 궤(簋)는 겉은 둥글고 안쪽은 모난데, 기장과 메기장 등 마른 제수를 담아 상 중앙에 진설한다. 작(爵)은 술을 올리는데 사용하는데 모양이 새(雀)와 비슷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입술의 한쪽이 뾰족한 배 모양이며, 다리는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匜)는 제관들이 손을 씻는데 사용하는 용기로 한 쪽에 귀때가 달려 있어 손 위에 물을 붓도록 되어 있으며 받침을 갖추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귀대접으로 불리며 차도구로 많이 쓰이고 있다. 말은 기우제를 지낼 때 필수적인 것으로 대부분 철기나 도기로 만들고 있으나 이례적으로 청자로 제작되었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영적 동물로 날개를 달아 천마로도 등장하여 가뭄 때 비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하늘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청자 제기는 쉽게 파손되는 재질적 특성으로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고려인의 염원을 천지신명께 전하는 소중한 도구로 그릇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위엄을 갖춘 그릇으로 시대의 조형미를 반영하고 있어 제기가 쓰였던 시기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02-청자상감상준(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국립전주박물관) 편집에디터
02-청자상감상준(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국립전주박물관)
03-청자분장상준(국립중앙박물관) 편집에디터
03-청자분장상준(국립중앙박물관)
04-청자양각희준(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04-청자양각희준(호림박물관)
05-청자상감희준(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국립전주박물관) 편집에디터
05-청자상감희준(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국립전주박물관)
06-청자분장보(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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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청자분장궤(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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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청자분장작(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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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청자상감유노수금문이(호림박물관)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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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청자퇴화문말(장흥 천관사 출토) 편집에디터
10-청자퇴화문말(장흥 천관사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