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 가짜 혹은 엉터리들이 설치는 세상, 웩 더 도그

김강 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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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스멀스멀 하나씩 다시 기어 나오는 듯하다. 오지게 지렸던 촛불의 양기가 제풀에 다소 사그라져서일까. 악취 나는 시커먼 구멍 속, 한스런 후퇴의 분을 삭이던 그 ‘바퀴벌레’들이 다시 진격의 더듬이를 열병하고 어느새 돌격 모드로 변신한다.

얼마나 참았을까. 롱 잠수의 막힌 숨을 토하듯, 막말을 참말처럼 거침없이 갈겨댄다. 경제파탄, 대선조작, 5·18폭동. 믿거나 말거나 핫한 ‘니튜브’에서 맛깔나게 달궈지면 천지가 흔들린다. ‘욕 배틀’의 아레나다. 하, 거꾸로 가는 참 세상이다.

웩 더 도그. 할리우드 산 미국영화 제목이다. ‘Wag the Dog’를 구글이 아닌 한글로 돌려보면 ‘개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는 뜻이다. 물리적 관계나 언어적 논리를 파괴한 꼴이다. 바로 잡아, 개가 꼬리를 흔들다, ‘The dog wags its tail’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 말은 상식을 저버린 하극상이나 사태의 본말이 뒤바뀌어 주객이 전도된 경우를 풍자적으로 꼬집을 때 사용된다.

주식거래에서 말하는 ‘Wag the Dog’도 유사한 쓰임새다. 묘하게도 선물이 현물시장을 좌우한다. 선물거래는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물건을 나중에 일정한 가격에 팔고 사겠다고 미리 약속한 것으로 위험을 피하는 ‘헤지’의 성격이 강하다. 대입하면, 현물인 주식은 몸통이고 선물은 꼬리다. 따라서 기준 현물이 파생상품 선물에 의해 흔들리는 ‘역전’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개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게 실제로 가능할까? 개를 동물로 여기는 생물학적 영역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개는 의사소통의 표시로 꼬리를 쓴다. 감추면 항복, 치켜세우면 도전이다. 흔들면 우호의 깃발, 늘어뜨리면 무시의 저항이다. 그 꼬리가 거꾸로 개를 흔들다니! 문학적 상상력과 수사학적 비유로는 무한히 자유롭다.

1997년 베리 레빈슨 감독이 제작한 <웩 더 도그>는 영상 이미지와 언론으로 대변되는 대중매체의 파괴력과 함께, 제목의 의미처럼,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현상과 실제적 본질은 서로 동일하지 않으며, 때로는 본질이 왜곡되고 호도되어 우리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헤비급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미국 대통령의 선거책임자 콘래드는 하락하는 지지율 반등을 위한 묘책을 찾으러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찾는다. 콘래드는, 실제 어떤 대통령의 스캔들과 너무도 흡사하게, 백악관을 방문한 여학생을 성추행한 대통령을 여론의 궁지에서 구하기 위해 환기용 뉴스를 언론에 풀어 그 추잡한 행위를 덮어달라고 요청한다. 현실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여 새로운 형태의 가상현실, 즉 영화의 창조자인 모스는 캘리포니아 스튜디오에서 알바니아 전쟁영화를 가짜로 ‘생산’한다. 자극적인 냄새에 홀린 미디어는 광분하고, 정치권의 교묘한 언변은 탐욕스러운 기자들을 희롱한다.

사실적 속임수를 더해 ‘도리토스’칩 대신 고양이를 품은 고아 소녀가 양념처럼 출연한다. 승전가가 울리고, 성폭행범이 영웅으로 둔갑한다. 모든 것이 CG로 만든 허구의 산물이다. 대통령을 향한 비난과 진실의 외침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국가는 그를 ‘다시’ 원한다. 꼬리가 몸뚱이를 통째로 삼킨 것이다. 가짜가 진짜로 뒤바뀌는 기똥찬 사기극을 97분짜리 화면은 ‘마술처럼’ 보여준다.

우리는 살면서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내가 현상의 주체가 아닌 경우에 더욱 그렇다. ‘주’와 ‘객’을 구분하기 힘든 가치혼란의 시대, 아니 가치조작과 인식불능의 함정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불을 더 밝히면, 정상의 왜곡과 부조리는 근처에 만연하다.

매끼만찬 국제예능공방 TV방송. 낙하산 정치베레 집결지 공기관. SKY 캐슬 금수저용 인큐베이터 학교. 이기적 기도의 성지 예배당. 매출 올인 전빵 대학, 그 당연한 이름처럼 ‘보편적’ 지식의 전당을 비우고 생계형 써레질을 전수하는 극한취업의 전답으로 전락한 판이니 사회진보의 진정한 고수를 애써 키울 방도가 절실하다. 게다가 본직을 밑천으로 사탕궤변을 미끼삼아 예측한대로 사욕을 채우는 솔론과 오리들의 황당한 처세가 그런 듯 하고, 세습된 부와 권력의 끄나풀로 네 직장을 내 자리로 새치기한 후, 제 깡통을 숨기려 비호의 아첨과 뇌물을 아이기스 방패로 휘두르며 본래 무적인양 설치는 불량 프로페서널들이 안팎에 출몰한다.

지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속이 겉이 되고, 겉은 다시 은밀하게 속처럼 행세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맥베스> 마녀들의 예언처럼, 선은 악이고, 악은 선일까. 비판적 사리분별에 두 눈 감으면 감쪽같이 속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양지를 지향하며 바르게 살아야한다. 그 벌레들이 모르는, 아니 철저하게 외면하려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