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공대 vs 한전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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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자주 독립을 고수·발전시키고 인류 평화 건설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한다.” 1962년 한국전력이 서울 마포에 2년제인 수도공업초급대학을 설립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전기를 공급하던 경성전기와 대구에서 태동된 남선합동전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전업 등 3개로 나눠져 있던 전력 3사가 그 해 한국전력으로 통합하면서 기존에 보유한 고등학교(현 수도공고)만으로는 전문인력 공급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2년 뒤인 1964년에는 4년제인 수도공과대학으로 개편했다.

60년대 수도공대는 그야말로 꿈의 대학이었다. 기업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이었지만 전교생에게 기숙사와 장학금을 지급해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수많은 인재들이 몰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한국전력의 성장세에 힘입어 취업률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새 과학의 푸른깃발’이라는 수도공고 교가처럼 학생들의 자부심도 높았다. 개교 당시 전기공학과와 기계공학과, 토목공학과 등 3개 전공도 1967년 7개까지 늘어났다. 재학생도 1100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도공대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 국가로부터 재정조달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한전의 보조금마저 줄면서 수도공대는 설립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1969년에는 전자공학과를 신설하고 정원을 40명 늘렸지만 이듬해 학생모집을 하지 못해 정원마저 채우지 못했을 정도였다. 의욕적으로 설립한 야금학과도 별다른 특색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수험생들에게 외면당하면서 결국 1971년 홍익대에 이양됐다.

한국전력이 두번째 시도하는 ‘명문 대학’ 한전공대의 부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한전공대 설립이 본격 시작됐다. 한전공대는 한국전력이 세계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큰 투자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수도공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혁신도시와 에너지밸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의미도 크다. 특히 한전공대가 들어설 나주는 고려시대 이후 1000년 넘게 호남과 함께 해 온 호남의 중심지다. 1000년의 영화를 넘어 광주·전남의 미래 100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에너지가 나주에서 시작됐다. 전남취재본부 부국장

이용환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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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