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예술.

뱅크시 (Banksy, 영국), 천진 난만한 눈 먹는 소년의 반전.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 화려한 꽃의 힘겨운 무게.
문선희, 평온한 땅 아래 묻혀버린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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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반전은 거듭된다.

저녁 뉴스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불편한 보도들, 깔끔하게 차려입은 화이트칼라의 정치관료들의 싸움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고, 화려함으로 치장된 백화점이나 호텔 등의 장소에서 일하는 공공장소의 감정 노동자들이 겪어내는 수많은 부조리함, TV 안 화려한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연예인들에게 가장 많이 따라붙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우리 모두는 화려함 내지는 평온함과 상실의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공존하는 모습에과 홀로 고립된 모습 두 상황간의 간극은 극명하다.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해갈수록 그 공존과 고립의 간극은 더더욱 커져간다. 우리 모두는 ‘나’를 온전히 곧추세우고 가야만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충분한 마음의 힘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림 큐레이션 여섯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반전’의 삶을 생각게 하는 작품들이다.

허름한 도시, 천진난만하게 눈을 먹는 소년의 반전.

지난해 12월, 영국 웨일스의 항구 도시 포트 탤벗의 허름한 차고 벽에 벽화 하나가 그려졌다. 천진난만한 소년이 두 팔을 쫙 벌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작은 눈송이들을 먹고 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혀를 내밀고 신기한 듯 눈송이들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소년의 발치엔 작은 썰매가 놓여 있다. 한겨울 두툼한 외투와 모자를 쓴 소년, 눈까지 오니 얼마나 즐거울지 그 마음이 참으로 순수하기만 하다. 헌데 모퉁이를 돌아보니 완벽한 반전이다. 측면 모퉁이를 따라 눈송이가 시작된 곳은 커다란 상자 안 불타오르는 곳에서 나오는 잿가루이다.

천진난만한 소년이 먹고 있는 것은 눈송이가 아닌 잿가루로 공중에 떠다니며 마치 하얀 작은 눈송이처럼 보여졌다. 이 그림은 영국의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의 벽화이다. 이 벽화는 지난 2018년 8월 이곳의 주민이 보낸 메시지가 계기가 되어 그려졌다. 철강 공장이 매일같이 뿜어내는 엄청난 양의 먼지에 아파하는 주민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달라는 메시지에 뱅크시가 응답한 것이다. 현지 언론과 주민들은 혹시라도 작품이 훼손될까 매일같이 지켰고 술취한 행인이 훼손하려는 통에 벽화 앞에 플라스틱 펜스까지 설치하기도 했다. 헌데 최근 이 작품이 어느 갤러리 주인에게 최소 십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수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철강도시의 공해와 자본주의를 비판한 뱅크시의 의도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벽화의 운명은 반전으니 반적을 거듭하며 뭔지 모를 씁쓸함을 남겼다.

화려한 꽃의 힘겨운 무게

커다랗고 하얀 우아한 자태로 여느 꽃들을 압도해버리는 카라꽃. 어두운 배경위로 풍성하고도 싱그럽게 활짝 피어난 하얀 꽃무더기에 시선은 점령된다. 순간 홀려버린 듯 아름다운 꽃에 시선이 머물고 이후 차차 어두운 배경으로 다음 시선이 머문다. 꽃무더기를 지탱하는 커다란 꽃바구니가 있고 그 아래 두 사람이 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여인은 앞에서 바구니를 막 들어 올리려 하고, 그 뒤로 남자의 손과 발, 그리고 화면 맨 위 끄트머리로 희미하게 남자의 정수리가 보인다.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로 시선을 장악하는 카라꽃과 달리 이를 짊어진 두 사람의 모습은 힘겹기 그지없다.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버릴 저 꽃보다도 더 초라한 신세 같다. 꽃이 아름답고 싱싱할수록 단 하나의 상처도 생기지 않게 꽃을 운반해야 하기에 꽃무더기를 짊어진 무게는 배가 된다. 이들에게 꽃은 아름다움도 아니고 그저 생계수단일 뿐, 싱그러운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그 짓눌린 무게가 너무 크지 않은가. 그렇게 화려함과 힘겨움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평온한 땅 아래 묻혀버린 아우성

그저 평범한 땅의 모습이다. 이제 막 피어난 듯 가녀린 줄기를 따라 작은 잎들이 자라나고 있다. 초록잎은 어두운 땅 위로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또 한 장의 사진, 작은 풀 하나 솟아오른 땅은 그저 평온하기만 한데, 작품의 제목은 그냥 숫자이다. 이 땅은 무슨 진실이 묻힌 곳일까. 자세히 들여다 본 사진 의 희미한 하얀 덩어리들은 바로 동물의 뼈. 최악의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며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구제역으로 무수한 가축 매몰지 사진인 것이다. 사진작가 문선희는 3년이 지난 매몰지들을 찾아다녔다. 시골에서 자란 그녀가 상상할 수 없었던 썩어가는 땅. 그 땅에서 작가는 우리들의 상실된 삶이 묻혀있음을 보았다. 물컹물컹한 알 수 없는 발의 감촉은 너무 생경했고, 그 위로는 끝없이 곰팡이 꽃이 피어났다. 그저 평온한 땅인 줄 알았는데, 땅 아래 묻힌 진실은 너무도 참혹했다. 생명이 매장되어 버린 땅은 인간의 생명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땅은 과연 다시 인간을 품어줄 수 있을까.

뫼비우스의 띠 같은 반전들.

뱅크시가 그린 ‘재를 먹는 소년(눈을 먹는 소년)’은 지난 연말 철강노동자들의 마을에 깜짝 선물과도 같은 벽화였다. 영국 최대 철강공장이 위치한 마을이지만 이 마을은 ‘최대’란 단어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매연과 사투한다. ‘최대’라는 반짝임의 이면엔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이 존재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에도 화려함과 힘겨움이 함께 공존한다. 화려함을 지탱하기 위해 힘겨움이 존재하고, 힘겨움이 있기에 화려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선희의 사진들에도 평온함과 참혹함의 반전은 이어진다. 과연 땅은 다시 살아날까. 평온함과 참혹함이 공존하듯 땅과 인간도 공존할 수 있을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반전의 반전은 끝없이 거듭된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 일면을 포착해낸다. 이렇듯 예술이란 것 덕분에 현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생각한다. 반전의 반전일지라도 공존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뱅크시 Banksy 2018.12. 영국 웨일스 포트 탤벗 차고의 벽화 편집에디터
뱅크시 Banksy 2018.12. 영국 웨일스 포트 탤벗 차고의 벽화 편집에디터
뱅크시 Banksy 2018.12. 영국 웨일스 포트 탤벗 차고의 벽화 편집에디터
뱅크시 Banksy 2018.12. 영국 웨일스 포트 탤벗 차고의 벽화 편집에디터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886-1957. 1942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122x122cm, 개인소장 편집에디터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886-1957. 1942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122x122cm, 개인소장 편집에디터
2312 (가축 2312마리가 묻힌 곳) 문선희 2015 사진전 中. 편집에디터
2312 (가축 2312마리가 묻힌 곳) 문선희 2015 사진전 中. 편집에디터
11800 (가축 11800마리가 묻힌 곳) 편집에디터
11800 (가축 11800마리가 묻힌 곳)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