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세상을 위하여.

샌디 스코글런드 (Sandy Skoglund 1946~), 인간의 공간으로 역습해 온 자연.
정성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다.

375

공존의 세상은 가능한가.
언제부터인가 날씨앱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미세먼지는 어떠한지 체크한다. 약국 안 진열대에는 각종 차단 마스크가 빼곡하게 걸려 있고, 뿌연 대기에 며칠간 야외활동을 제한하는 보도가 지속되기도 한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끼어 울부짖는 거북이의 모습, 필리핀에 불법으로 쓰레기를 팔아넘기려다 다시 국내로 반입될 처지에 놓인 뉴스도 보도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환경’의 역습이 가해진 무거운 보도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은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 위의 군림을 자행했기에, 자연은 다시금 반격을 시작한 듯하다.
과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되돌아감은 가능할까. 다소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그림 큐레이션 다섯 번째 이야기는 ‘환경’에 대한 경고와 메시지를 담은,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게 하는 작품들이다.

인간의 공간으로 역습해 온 자연.
1981년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에 걸린 사진작품 두 점이 현대 사진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국의 사진가 샌디 스코글런드(1946~)의 생경한 두 사진작품 <방사성 고양이>와 <금붕어의 복수>.
초록색과 회색 두 색만이 존재하는 주방, 부부의 모습만으론 특별할 게 없다. 허나 회색빛 공간에 무차별적으로 침투한 초록고양이떼는 공간을 집어 삼킨다. 너무도 태연한 듯한 노부부의 모습과 강렬한 고양이의 색조가 대비되며 작품은 단번에 관람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방사성 고양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방사능에 노출된 고양이들이 유전자가 변하여 인간들을 공격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에 의해 유전자가 변형되어버린 고양이들은 인간을 향해 발톱을 세운다. 물질문명만을 추구해가며 파괴한 자연이 보내는 경고와 함께 미래사회에 닥쳐올 지도 모르는 모습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현실처럼 재현되었다. 또 다른 작품 <금붕어의 복수>는 더 초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은 물고기들이 광폭한 금붕어로 부활하여 인간의 공간으로 침투해왔다. 주황빛 금붕어는 방 전체를 잠식해오고 가운데 침대 위 두 사람은 망연자실하다. 푸른색의 방과 주황빛 금붕어의 색은 강렬하게 보색으로 대비되며 머지않아 일어날 서로간의 충돌을 극대화한다.
작품의 내용과 더불어 ‘연출사진’이라는 새로운 작품형식을 보여주면서 두 작품은 샌디 스코글런드를 현대 사진계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하게 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북극곰 일행, 작은 배에는 곰과 얼룩말, 펭귄, 원숭이가 타고 있다. 둥둥 떠다니는 빙산의 조각들까지, 화려한 뉴욕 도심은 전부 물에 잠겨버린 걸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인간은 보이질 않고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높은 조각상만이 태연하게 그대로인 채 화려했던 도시는 흔적조차도 없다. 머지앉아 모두 저 깊은 곳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정성준 작가는 <젠장! 이게 실화냐? Damn it! Is this reality?>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로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역습이 몰고 온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그려간다. 얼핏 본 그림의 이미지는 밝고 경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불편한 진실들이 서서히 읽혀지며 정곡을 찔러댄다. 지구 온난화로 사라져가는 빙산들, 언젠가는 모두 녹아내리고 갈 곳을 잃은 동물들과 잠식당한 인간사회의 흔적. 상상만이 아닌 실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또 다른 작품 는 플라톤의 명언과 같은 제목의 작품이다. 도심 속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붉은 색의 트램, 그 안에는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 타고 있다. 유유자적하게 도심을 관광하는 동물들, 게다가 곰의 머리 위 반짝이는 황금빛 왕관은 이 낯선 풍경에서 과연 누가 주인공인지 생각게 한다. 작품 제목인 <친구는 모든 것을 나눈다>는 플라톤의 명언처럼 인간과 자연은 친구처럼 모든 것을 나누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연은 아낌없이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내줬지만, 인간은 감사함 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가 아닌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관계,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만 인간은 자연의 역습을, 환경의 경고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환경’이라는 진지하고도 무겁게 각성해야 할 이야기들을 정성준 작가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유머러스하고도 감각적으로 진중한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하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해피엔딩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 아닐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샌디 스코글런드의 사진과 정성준 작가의 그림에서 보여진 환경의 역습은 현재의 삶을 다시 되짚게 한다. 무차별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 용기들, 썩지도 않는 비닐들, 현재의 편함을 위해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모든 것들은 버려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다. 도리어 거대하게 응집되어 다시 우리를 공격해 온다. 작가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장면들이지만, 현재의 무분별한 삶의 결과를 그대로 드러낸다. 현재의 삶을 넘어 미래의 삶을 생각하며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놓아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편히 숨쉬는 일상이 어려운 게 되어버린 요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두 작가의 작품에 담긴 깊고도 큰 울림을 간절하게 되뇌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샌디 스코글런드 1980 편집에디터
샌디 스코글런드 1980 편집에디터
샌디 스코글런드 1981 편집에디터
샌디 스코글런드 1981 편집에디터
Portrait of Sandy Skoglund. copyright A. Baccili 2016사진출처) http://colourstudio.com/color-shock-sandy-skoglund-2 편집에디터
Portrait of Sandy Skoglund. copyright A. Baccili 2016사진출처) http://colourstudio.com/color-shock-sandy-skoglund-2 편집에디터
정성준 260x146cm Oil on canvas 2018 편집에디터
정성준 260x146cm Oil on canvas 2018 편집에디터
정성준 160x107cm Oil on canvas 2018 편집에디터
정성준 160x107cm Oil on canvas 2018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