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담배, 전국 애연가를 사로잡다.

김덕진의 역사속 전라도 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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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1814~1888),'임하필기'. 전라도의 진안에서 나는 연초 진안초(鎭安草)와 전주 상관면에서 나는 연초 상관초(上官草)가 '국중수품(國中殊品)'이라고 적혀 있다 편집에디터
이유원(1814~1888),'임하필기'. 전라도의 진안에서 나는 연초 진안초(鎭安草)와 전주 상관면에서 나는 연초 상관초(上官草)가 '국중수품(國中殊品)'이라고 적혀 있다

전라도 산간과 도서 지역에서 널리 재배하다.
담배의 원산지는 남미로 알려져 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때는 16세기 말~17세기 초이다. 일본이나 명나라에서 들어와서 경상도 동래에서 처음 재배되었고 한다. 이름은 담배 외에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연초(煙草) 등 여러 가지로 불리었다.①담배는 일본말 담파고⋅담바고에서 유래한다. ②남초는 일본이나 오키나와 등 남쪽에서 왔다는 말인데,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쓰인 이름이다. ③남령초는 남쪽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말인데, 병든 사람에게 좋다거나 소화를 잘 되게 한다는 등 신령스럽다는 낭설에서 유래한다. ④연초는 불에 태우는 풀이라는 말인데, 19세기 말에 조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이렇게 보면, 이름을 담배라고 하지 말고 연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초는 전래되자마자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전래된 지 20년 지나 위로는 고위 공직자부터 아래로는 천인까지 안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건강에 백해무익하다고 금연령을 내렸으나 소용없었다. 금작령을 내려도 곡물을 심는 것보다 수입이 더 좋아 나날이 연초밭은 늘어만 갔다. 우리나라의 전라도 동북부 산간지역에서 널리 재배되었다. 밭이 대부분인 전라도 섬에서도 연초를 많이 심었다. 나주 소속 섬(현재 신안군)에서 세금을 연초⋅닥나무로 바치고, 영광 안마도에서 연초⋅닥나무⋅삼[麻]을 심는다는 기사가 보인다. 섬 전체가 죄다 연초 밭이라는 기사도 있다(이영학, 「18세기 연초의 생산과 유통」). 담배의 양육 습성이 산간이나 섬 토양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한 발 앞선 농업경영 안목도 작용했다. 많이만 재배한 것이 아니라 맛도 전국 최고였다. 이옥(李鈺, 1760~1815)은 자신이 쓴 ‘연경(烟經)’에서 전국 4곳의 연초 맛을 평가했다(안대회 옮김, ‘연경, 담배의 모든 것’).
“평안도 산은 향기롭고도 달고, 강원도 산은 평범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고, 전라도 산은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하고, 함경도 산은 몹시 맛이 강해 목구명이 마르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전라도 연초는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했다. 이 맛을 내기 위해 전라도 사람들은 연초 잎을 음지에서 말리는 음건법(陰乾法)이라는 독특한 연초 가공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색과 맛이 아주 좋은 전국 최고의 연초를 생산했다. 전라도에서도 어디 것이 최고였을까?

진안초와 상관초,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
첫째, 진안(鎭安)에서 생산되는 것은 전국에서 품질이 가장 좋았다. 그냥 품질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최고 품질로 인정받았다. 진안의 연초 밭에 대해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안은 마이산 아래에 있는데 토양이 연초에 알맞다. 경내는 비록 높은 산꼭대기라도 연초를 심으면 잘 자라서 주민들은 대부분 이것으로써 생업을 삼는다.”
진안의 토양이 연초 재배에 알맞았다. 그래서 일반 밭은 말할 것 없고 산꼭대기에 심어도 연초는 잘 자랐다. 이로 인해 진안 사람들은 연초 재배로 생업을 삼아가고 있었다. 당시 연초 농사의 이익은 좋은 논 벼농사보다 10배나 될 정도였다. 그래서 진안의 연초 밭, 전주의 생강 밭, 임천⋅한산의 모시 밭, 안동⋅예안의 왕골 밭은 나라 안에서 가장 이익이 많은 곳이라는 기사가 18~19세기 자료 도처에서 발견된다. 어느덧 진안에서 나는 연초는 ‘진안초(鎭安草)’라는 상품명으로 전국에 팔려 나갔다. 당시 진안(鎭安)과 삼등(三登)에서 나는 연초 품질이 전국의 남쪽과 서쪽에서 으뜸이었다. 그래서 이를 합쳐서 이른바 ‘진삼초(鎭三草)’가 전국 최고라고 했다. 진안 연초의 명성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1904년 「황성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鎭安懷仁成川之烟田과 全州之薑田과 韓山林川長城之苧田과 安東之龍鬚田과 開城錦山之蔘田과 靑山報恩之棗田과 尙州之杮田과 濟州之橘田이 爲國內有名者也오”
둘째, 장수(長水)도 연초 주산지였다. 1732년(영조 8)에 부승지 이구휴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30년 전에 전라도를 왕래할 때에 연초를 재배하는 밭을 보니 울타리 밑의 빈터에 불과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비옥하고 좋은 땅은 모두 연초를 재배하니, 장수와 진안 같은 곳은 전 지역이 연초 밭이고, 그 동안 들어보지 못한 섬 지역에서도 모두 연초를 심는다는 것이다. 재배에 적합한 장수와 진안 지역이 연초의 전국적인 명산지로 이름 높았다. 장수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에서 남초를 심었다. 그런데 겨울과 여름을 거치면서도 한 그루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3대 60년간 잎을 따서 피었다고 한다. 19세기 선비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나온 내용이다.

셋째, 전주와 임실 사이의 전주 상관면에서 나오는 연초도 진품이었다. 밭에 모두 연초를 심어 마을 사람들이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곳 연초를 상관초(上官草, 上關의 오기)라고 했다(임하필기, 금광초).

연초를 주제로 전라도 문인이 남긴 글
이처럼 전라도는 조선시대에 연초의 주 생산지였다. 이는 전라도 역사를 많이 바꾸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강진이나 해남 포구에 온 상인들은 너도나도 면포와 연초를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서 제주 특산물로 바꿔서 나왔다. 제주도 토질에 목화와 연초가 맞지 않아 재배할 수 없어서였다.
둘째, 전라도 군현에서는 해난사고를 당해 표류해 온 사람에 대해 양식과 의복 및 선박은 물론이고 일용할 연초도 주어 구호했다. 예를 들면 1860년(철종 11)에 진도의 남도포에 12명이 탄 중국 선박이 떠밀려 와서 50일 이상 머물렀다. 이들에 대해 진도에서는 매일 쌀, 미역, 조기, 전어, 소금, 잡어, 등잔기름, 땔감과 함께 연초를 주었다.
셋째, 연초를 주제로 글을 쓴 전라도 문인이 적지 않았다. 장흥 출신의 위도순(魏道純)이 「남초전기(南草田記)」를 지어 연초 재배술을 선보였다. 보성 출신의 박사형(朴士亨)이 「남초가(南草歌)」를 지어 담배의 약효를 예찬했다. 나주 출신의 임상덕(林象德)이 「담파고전(淡婆姑傳)」을 지었다. 담배를 의인화하여 담배가 병을 낫게 해 준다고 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담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양 출신의 황현(黃玹)도 「이풍헌전」에서 연초를 소재로 다루었다. 그리고 연초를 가사로 하여 부르는 노래도 전라도 안에는 여럿 남아 있다. 전북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담바고 타령’이 있다. 이 노래는 ‘구야 구야 담당구야’로 시작한다.
넷째, 전라도에서는 연죽도 많이 제작되었다. 연초가 유행하자 각종 끽연구(喫煙具)가 등장했다. 연초갑은 “평양에서 나온 것이 최상이고, 개성과 전주에서 만든 것이 그 다음이며, 서울에서 만든 것이 또 그 다음이다.”고 했다. ‘연경’에 나온 말이다. 연죽(담뱃대)을 파는 가게인 연죽전(煙竹廛)이 도내 장시에 들어섰다. 그와 함께 연죽을 만드는 연죽장(煙竹匠)이 전라도 곳곳에서 활동했다. 연죽의 재질과 길이는 우리의 신분과 위상을 반영했다. 빨대가 은색 백동(白銅)으로 되어 있는 것은 부자들이 애용했고, 장죽이라는 긴 것은 양반의 전유물이고 곰방대라는 짧은 것은 서민용이었다. 이 연죽의 주 생산지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였다. 전라도에서도 목기로 유명한 남원 것이 인기였다. 조선시대에 남원은 경상도의 동래⋅통영, 경기도의 안성과 함께 우리나라 연죽의 명산지였다. 해방 전후 동래와 남원에는 연죽장이 1백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장혜영, 「조선조 오동상감연죽에 대한 연구」). 하지만 연초 잎을 잘게 썬 절초(切草)가 사라지고 공장에서 종이로 말아진 궐련이 나오면서, 연죽은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가 실시한 전매제, 대한민국이 이어받다.
개항 이후 연초의 새로운 품종이 들어오고 가공기술도 새로워졌다. 더불어 외국 연초 제품도 수입되었다. 변화하는 입맛에 맞추고자 조선의 정부와 민간 그리고 외국인도 연초 가공 공장을 서울⋅인천⋅부산 등 대도시에 세웠다. 일본인에 의해 목포⋅군산에도 연초 제조회사가 있어 권연초(卷煙草)를 생산했다. 당시 전라도는 여전히 전국 최대 연초 생산지였다. 특히 전북의 고산, 금산, 남원, 무주, 임실, 장수, 전주, 진산, 진안 등지가 주 산지였다. 1902년 통계에 의하면, 위 9개 군은 연간 전국 연초 생산량 500만관의 1/3인 155만관(33만 1500원)을 생산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생산된 연초는 중간상에 의해 수집되어 대도시 공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일제는 우리 주권을 강탈하고서 바로 ‘연초경작조합’을 만들게 했다. 연초의 재배와 유통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매일신보」 1913년 보도에 의하면, 전북은 연초의 주요 산지로 연초 재배의 개량을 위해 전주⋅임실⋅금산 등 3군에는 이미 연초경작조합이 각각 설립되어 있었고, 이제 또 진안⋅장수⋅고산 등 3군에 연초경작조합을 설립에 착수했다. 조합 임원은 친일적인 인물로 구성되었다. 조합원에 대해서는 농공은행에서 저리 융자금을 대출해 주었고, 연초 생산을 늘린 조합원에 대해서는 장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조합원을 늘리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생산된 엽연초는 총독부가 헐값에 수집해 자신들 제조회사에 넘겼다. 조선인 연초 상인과 제조업자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또한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해 경작자에게 ‘연초세’라는 세금을 부과했다. 농민들 수입이 줄게 되었다. 급기야 일제는 1921년에 ‘연초 전매제’를 실시했다. 전매제란 총독부에서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총독부에 전매국이 설치되고, 주요 도시에 전매지국이 설립되었다. 전라도에는 전주에 1921년에 전매지국이 설치되면서 연초 공장도 들어섰다. 전주 전매지국은 전북(무주 제외), 충북 옥천⋅영동, 전남(구례⋅광양⋅순천⋅고흥⋅보성 제외), 경북을 관할 구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연초가 많이 생산되는 진안과 장수에는 수납소나 출장소를 두었다. 무엇보다 수매가를 우등, 1~14등, 등외의 등급제로 지급했으니, 일본인 지국원의 입김이 세고 한국인 재배농의 입지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1921년 4월에 연초 경작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전주의 상관⋅소양⋅구이 3면 1백여 농민이 수납가가 너무 헐가인 것을 분하게 여겨 일제히 손에 담배를 들고 군청으로 들어가 항의한 바 있다. 항의는 몰래 연초를 재배하거나 제조하는 방법으로도 이어졌다(이영학, 『한국 근대 연초산업연구』). 이 전매제도를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도 계속 실시했다. 우리 정부는 전매청(專賣廳, 현재 한국담배인삼공사)이라는 관리 감독청을 두고서 전국 곳곳에 연초 공장을 세워 가동했다.

보성 출신의 박사형(1635~1706)이 지은 남초가. 남초의 효능을 예찬한 노랫말이다. 편집에디터
보성 출신의 박사형(1635~1706)이 지은 남초가. 남초의 효능을 예찬한 노랫말이다.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백동연죽이라 하며,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연죽장이 연죽을 만드는 장면. 문화재청 제공 편집에디터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백동연죽이라 하며,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연죽장이 연죽을 만드는 장면. 문화재청 제공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백동연죽이라 하며,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문화재청 제공 편집에디터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백동연죽이라 하며,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문화재청 제공
담배밭. 뉴시스 편집에디터
담배밭. 뉴시스

사진
1 – 이유원(1814~1888),’임하필기’. 전라도의 진안에서 나는 연초 진안초(鎭安草)와 전주 상관면에서 나는 연초 상관초(上官草)가 ‘국중수품(國中殊品)’이라고 적혀 있다. / 사진의 오른쪽에서 넷째줄 상단의 ‘湖南之上官草’에 동그라미 해주세요. 그리고 여섯째줄 하단에서 일곱째줄 상단의 ‘鎭安亦産草’에도 동그라미 해주세요.
2 – 보성 출신의 박사형(1635~1706)이 지은 남초가. 남초의 효능을 예찬한 노랫말이다.
3 – 연죽장. 연죽장이 연죽을 만드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실으면 좋겠습니다.
4 – 담배밭. 담배가 자라고 있는 담배밭 모습이나 담배를 새끼줄에 엮어 말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