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해년을 맞는 의미와 기대

김형주(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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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편집에디터
김형주. 편집에디터

금년은 기해(己亥)년으로 60간지의 시작인 갑자(甲子)년으로부터 36번째에 해당한다. 기해는 10개 천간의 여섯 번째 순서인 기(己)와 12간지의 마지막인 해(亥)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기는 토(土)에 해당하여 색으로는 황금색이고 해는 돼지이므로 흔히 ‘황금돼지해’라 일컬어진다.
돼지는 멧돼지과에 속하는 잡식성 포유동물로 우리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축인 육축(六畜:소, 말, 돼지, 염소, 개, 닭)에 들어간다. 예로부터 돝 또는 도야지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돼지라는 명칭도 돝아지(도야지)가 변해서 된 것이다. 한자어로는 저(猪)·시(豕)·돈(豚)·해(亥) 등으로 표기한다. 세계적으로 3,500년전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약2,000년 전부터 사육된 것으로 보이며, 지구상에 1,000여 품종이 분포되어 있다. 부족국가인 부여의 관직 명칭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 (猪加)가 등장한데서 이미 친숙한 가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재래종 돼지는 흑색으로 강인한 체질에 질병에 강하지만 몸집이 왜소하다. 따라서 상업적 목적의 대규모 사육에는 부적합하여 외래종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개화기 무렵 흰색의 털을 가진 유럽계통의 품종이 도입되어 주류 품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돼지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로서 집 가(家)자는 갓머리(宀)에 돼지 ‘시'(豕)로 이루어졌는데, 옛날에 도적과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의 아래층에 돼지우리를 설치하고 위층에는 살림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돼지는 밤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면 경계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도둑을 지킬 수 있으며, 또한 뱀의 천적이기 때문에 독사와 같은 위험한 짐승들의 접근도 막아주었다.
여기에서 돼지에 대해 잘못 인식되고 있는 사실의 실상을 추적해보고 아울러 인간에게 좋은 덕목이 될 돼지의 천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돼지는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이 아니다. 흔히 돼지는 불결한 가축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매우 정갈하다. 먹이를 먹는 곳과 배변하는 공간을 나름대로 엄격히 분리하며 잠자는 곳은 깨끗한 볏짚을 깔아두고 생활을 한다. 둘째, 돼지는 지능이 낮고 탐욕스럽지 않다. 돼지는 어떤 것에 대해 기억을 하며 지형지물을 인식하고 다른 개체를 식별하는 등 개나 고양이 보다 영리하며 침팬지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돼지는 탐욕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6개월 정도면 어미가 되는 단기적으로 급성장하는 특성상 1회의 먹이섭취량이 많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한꺼번에 다소 많이 먹기는 하지만, 자신의 적량을 섭취하면 더 이상 먹지 않는 강한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돼지에게 양이 차도록 충분한 먹이를 주지 않으면서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졸라대는 선량한 돼지들을 욕심꾸러기로 전락시키고만 것이다.
예로부터 돼지는 하늘에 바치는 신성한 제물 즉 희생(犠牲)이었다. 하늘의 뜻을 사람에게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달하는 영험한 능력을 지닌 전령사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또한 재물의 풍요로움과 다복함의 원천으로 여겨왔는데, 이는 한꺼번에 10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 다산성과 험난하고 거친 환경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특유의 낙천성에 기인한다.
우리 주변에는 ‘돼지 멱따는 소리’ 등의 돼지가 들어간 속담이나 옛이야기, 지명들이 무수하게 전해지는 데, 이는 그만큼 돼지가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동물임을 보여주는 반증인 것이다. 지금도 제사나 고사를 지낼 때 돼지머리가 필수적인 제물이 되고 있다. 돼지는 위험을 막아주고 안전과 운수대통을 가져오는 영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다부지면서도 포동포동 후덕한 몸집을 가진 돼지처럼 지역민들 모두에게 행복과 건강함이 온누리에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