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누나’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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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면서 유관순(1902~1920) 열사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유관순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었다. 3·1운동으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그는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4월 1일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만세운동 와중에 부모가 일본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 자신도 체포되어 공주 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받고, 뒤에 1년 6월로 감형된다.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며 저항한 그는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했다. 석방을 불과 이틀 앞둔 날이었다.

해방 후 유관순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전영택이 집필한 ‘유관순전’이 박창해가 만든 국어 교과서에 실리게 되면서부터다. 이화학당이 그를 의도적으로 부각했다는 설도 있다. 1946년 이화학당 출신의 박인덕과 이화여중·고 교장 신봉조는 이화학당을 알릴 인물을 찾던 중 3·1운동 때 순국한 유관순을 발견하고 유관순기념사업회를 구성해 그의 행적을 널리 알린다. 유관순을 부각한 이들이 모두 친일파라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화학당이 해방 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 그들이 친일파라고 해도 유관순의 행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관순을 3·1운동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그 상징성을 과대 포장하는 바람에 다른 열사들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3·1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대략 75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모든 사람을 기록하거나 기억할 수는 없다.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17세 소녀의 독립 의지와 억울한 죽음은 우리가 충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가 있다. 독립운동 서훈 3등급으로 저평가된 그의 서훈을 상향시키는 것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뉴욕 주의회가 오는 14일 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유관순의 날’ 제정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다시 조명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유관순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나이를 먹지 않는 17세 소녀, 영원한 누나로 기억돼야 한다.

박상수 주필 [email protected]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