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 그 후… 돌아온건 ‘불이익’ 뿐이었다”

■ 여전히 갈길 먼 공익제보자 보호 <2>
국정농단 고발 노승일 "우울증에 극단 선택까지 생각"
제보자들, 후회는 없지만... 사회적 편견에 설 곳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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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 '돈신과 의리' 에서 노승일 씨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공익 제보로 K스포츠재단의 징계처분을 받은 후 겪은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편집에디터
지난 1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 '돈신과 의리' 에서 노승일 씨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공익 제보로 K스포츠재단의 징계처분을 받은 후 겪은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편집에디터

지난 2016년 대한민국을 바꾼 최순실비리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아니 더 앞서서 엄혹한 시대에 맞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뒤편에는 누가 있었을까?

바로 ‘내부고발자’라고 부르는 공익제보자들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양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기에 우리 사회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변화시킨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살 충동까지 느껴”… 매달 대출금 갚느라 허덕

“공익제보 이후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우울증이 생겨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자살충동까지 느끼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내부고발자인 노승일 씨. 노씨는 기업들의 모금 창구로 이용한 최순실 씨의 K스포츠재단 실무 부장으로,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수차례 재판과 청문회 권력형 비리를 폭로해,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다.

지난해 7월 광주로 내려와 광산구 하남동 삼겹살 전문점 ‘돈신과 의리’를 오픈한 노씨를 만난 것은 지난 1일이었다. 그는 TV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

“2016년 국정농단 폭로 이후 스트레스 탓인지 건강이 나빠졌죠. 2017년 1월부터 몇 달 간 수면장애가 와서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어요. 눈이 뻑뻑해 인공눈물을 넣으며 견뎌야만 했습니다.”

비리를 폭로한 이후 순탄했던 노씨의 삶은 뒤틀어졌다. 곧바로 회사의 보복이 이어졌다. 2016년 12월 이사회에서 징계처분을 받았고, 2017년 7월 달 퇴사 했다. 스트레스 탓인지 몸무게는 몇달 새 15kg이 빠졌다.

엄청난 경제적 빈곤도 찾아왔다. 수입이 없다보니 생활비를 주변에 빌렸고 여기에 대출까지 더해지면서 순식간에 2억원까지 빚이 늘어났다.

취직도 불가능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사회견 편견 때문이었다.

“누구도 써주지 않았습니다. 내부 고발을 한 사람이기에 고용주 입장에선 기업의 문제를 또 사회에 발설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있었던 거죠.”

빚과 생활고에 시달리자 그는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또 밤 11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경기도에 있는 구리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생선을 내다 팔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보니 우울증이 왔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광주로 내려와 고깃집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중이지만, 현재까지도 당장 다음달 지불해야 하는 카드값과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료들 ‘투명인간’ 취급… 사회적 편견 재취업 어려워

“직원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동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지난 2017년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서 발생한 80대 치매 노인 폭행사건을 고발한 ‘공익제보자’인 이명윤(41)씨. 그는 병원 측이 병원 3층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녹화영상을 폐기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외부에 알려 병원의 부조리를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신원이 노출되면서 인생이 곤두박질 쳤다.

자신이 공익제보자라는 것이 알려진 다음날부터 출근길은 ‘지옥’이 됐다. 친했던 동료들은 그에게 모두 등을 돌렸고,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병원 관리업무를 담당하던 이씨에게 병원 측은 어떠한 일도 맡기지 않았다.

“내부 고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등을 돌리고, 사람 취급도 안했어요.”

결국 이씨는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는 재택근무를 하다, 병원 운영 법인이 바뀌면서 2018년 2월 퇴사했다. 퇴직 이후 1년간 구직활동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동종업계에서 소문이 나 재취업을 할 수 없었죠. 지금도 실업자 신세입니다.”

그는 공익제보자를 ‘배신자’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건강악화 등 2차 피해를 겪으면서 “국민신문고 제보로 개인정보가 노출되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장성 모 고교 교무행정사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저 또한 당시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후회는 없지만 공익제보자 보호대책 마련 절실”

공익제보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후회는 없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노씨는 “진실은 진실대로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부당한 상황을 보고 바로잡는 것이 제게 주어진 역할이고, 역할을 잘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범죄 사건인데 덮으려고 하는 자체가 용납이 안됐다. 이대로 끝나면,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내부고발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례가 많으면, 사람들은 범죄행위를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애초 공익제보자들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박수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