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방산서원, 문효공 윤효손

-선비의 '충효'란 무엇인가 보여준 명 문장가
비단옷을 하사받은 목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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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 설악을 거쳐 동해를 끼고 굽이치다가 태백에서 서향하여 지리산까지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 이 땅의 근골을 이루는 한반도 등뼈의 저 아래 꼭짓점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강을 건너지 않고, 끊기지 않고, 산맥으로만 이어지는 큰 줄기에서 1개의 장백정간과 13개 정맥들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온 산하로 펼쳐진다. 그 능선과 계곡의 주름 폭 사이사이에 철 따라 춘하추동이 깃들고, 때에 따라 우리들의 생로병사가 있다. 지금 찾아가는 길은 방산서원. 지리산의 주능선, 천왕봉-장터목-세석-벽소령-뱀사골-노루목-반야봉-노고단-성삼재로 이어지는 1백리 길을 지나, 구례를 향하여 서남방으로 내려간다. 기둥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내려가는 길에 산맥은 아름다운 견두산을 낳고, 그 꼬리에 왕봉을 물고 있다. 방산서원은 왕봉을 주산으로, 오산을 안산으로 하여 문효공 윤효손 묘역 옆에 자리한다. 오른쪽엔 둔사제가 흘러 앞쪽 구만제로 합쳐지고, 다시 서시천을 지류 삼아 섬진강으로 흘러드니, 영락없는 배산임수 명당이다. 구례 운조루와 곡전제 또한 천하명당 ‘금환락지’라 하는데 뒤로는 지리산 줄기가 뻗어있고 서출동류의 섬진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이치가 이와 같다.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방산서원은 조선전기 문신인 추계 윤효손(尹孝孫1431~1503)을 기리기 위하여 1702년(숙종 28) 건립됐다. 1740년 무렵 구례군 중방리의 입향조인 벽송 윤위를 비롯 최연, 이경석, 최언수를 추가 배향하였다. 1865년(고종 2) 훼철되었다가 1985년 중건하여 윤효손을 모셨고, 1994년부터는 윤위와 이경석을 함께 모셨다. 사당 모덕사(慕德祠)와 서재 추모재(追慕齋), 강당, 내삼문(기인문)· 외삼문(경앙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당 뒤쪽으로 500살이 넘은 팽나무가 살아 있다.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추모재다. 올해 전면 해체 보수하여 사당에서 서재로 기능이 바뀌었다. 서원 우측 문효공윤효순신도비가 보물제584호로 사대부 묘역 신도비 중에서 유일한 국가문화재다. 아래쪽이 문효공의 묘, 바로 뒤가 이조판서에 추증된 아버지 윤처관, 맨 위 상단에 어머니 광산정씨의 묘가 곡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효공묘 석등 및 석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다.

윤효손은 세종13년 남원부 중방리(현재 구례군 용방면 용방리)에서 순창군수 증이조판서공 처관과 정부인 광산정씨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이름은 효손, 자는 유경, 호는 추계, 본관은 남원이다. 여섯 살에 조부 참판공으로부터 소학과 효경을 배웠는데 영특한 자질을 지녀 아는 것을 곧 실행에 옮기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에 우애하여 예를 실행하니, 조부가 효손(孝孫)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훗날 목민관이 되어서는 애민정신을 발휘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백성들의 건의로 임금이 당표리(비단옷)을 하사하기도 했다. 효(孝)를 충(忠)으로 이어 일생을 효자와 명신으로 칭송을 받았다.

12세 되던 해 일이다. 의정부 녹사로 있던 아버지 윤처관이 연성부원군 박원형의 집에 갔다가 한낮이 될 때까지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하자, 윤효손은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명함지에 시 한수를 쓴다.

相國酣眠日正高 정승님 해 높도록 단잠 자는데
門前刺低己生毛 문 앞에 명함은 만지고 만져 털이 났오
夢中若見周公聖 만약 꿈속에 주공을 뵙거든
須問當年吐握勞 그대의 토악하던 괴로움 어떻든가 물으소서

옛 주공의 예를 들어 은근히 박원형을 풍자한 시다. 주공은 찾아온 손님을 잠시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뱉어내고 나가고, 목욕을 하다가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손님 맞으러 나갔다고 한다. 이튿날 아버지는 아들이 명함 뒤에 시를 쓴지도 모르고, 그 명함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내밀었다. 박원형이 그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윤효손(尹孝孫)을 불러 크게 칭찬하고는 뒷날 사위로 삼았으니, 인연이 참으로 묘하다. 문장이 뛰어난 그는 스무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스물셋에 문과에 올라 경상도 관찰사·한성부우윤·대사헌·성균관동지사·좌우참찬 등을 지냈다. ‘경국대전’ ‘국가오례의’ ‘성종실록’ 등을 편찬하고, 왕세자의 관복제도를 건의, 시행했다. 전국 문묘에 전사고의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으며, 향음주례와 향사례 등 나라의 예제를 세우고 정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벼슬길 40여년 동안 부모 봉양을 위해 세 번이나 사직을 간청하니 장흥부사,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 외직으로 나왔다. 부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부모를 봉양하고 부모가 드실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았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조석으로 사당에 배알하고 초하루 보름에 잔을 올리고 기제사를 극진하게 지내고 부친이 정해년에 태어났다하여 평생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연산군 4년에는 예조에서 백관 중에 효행으로 칭송받는 신하 네 사람의 이름을 올렸는데, 윤효손의 이름이 으뜸으로 기록되어 있다.

방산서원 사당 모덕사 뒷편 언덕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신목처럼 서 있다. 향교나 서원에는 행단이라 하여 살구,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곳은 팽나무가 행단을 대신한다. 팽나무의 신이 서린 듯한 뿌리는 모든 행위의 뿌리와 같이 효를 근본으로 하는 서원의 상징처럼 보인다. 남원윤씨 문효공파 18세손 윤주호(66세) 회장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 곳, 설 곳이 있어야 해요. 근본이 있어야 하죠. 나무는 위 가지만큼이나 아래 뿌리도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나무 가지와 뿌리의 크기가 같은 거지요. 저 팽나무는 앞으로도 500년 이상 연년세세 장장 할 겁니다. 저 우람한 줄기만큼 땅속에 뿌리가 박혀있다고 생각해 보세요.”하면서 그 팽나무만큼이나 남원윤씨가 길고 오래도록 번성하기를 기원했다.

노나라 애공이 선비의 덕목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아는 것이 꼭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며, 말은 꼭 많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할 말을 했는지를 잘 살펴야 하며, 행동은 꼭 많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옳은 행동을 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는 것이 많거나, 말이 많거나, 행동이 많은 것, 그러니까 뭐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할 것을 했는가가 진짜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 효의 의미는 많이 바뀌었지만, 윤효손의 효가 당대의 모범이 되었으며, 꼭 할 것을 했다는 점에서 선비의 언행일치로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충효가 500년 된 팽나무처럼 여전히 방산서원에 살아 있다. 방산서원을 나서는 길, 멀리 겨울 지리산의 풍경이 아늑하고 후덕하게 펼쳐지고 있다.

보물 제584호 윤문효공신도비

신도비는 고인의 행적이나 사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우는 비를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정2품 이상의 관직에 있는 사람 중 위업을 세웠거나 후세에 모범이 될 때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높이 5.27m의 신도비는 문효공 윤효손 사후 16년이 지난 중종 14년(1519)에 세워졌고 1975년 국가문화재 보물 제584호로 지정되었다. 전국 묘역에 수많은 신도비가 있지만 보물로 지정된 것은 이 신도비가 유일하다. 2013년 왕릉(태조 건원릉, 태종 헌릉, 세종 영릉)에 있는 신도비가 보물로 지정이 되었지만, 사대부 묘역중 유일한 국가지정문화재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한 지대석 위해 거북모양받침돌의 귀부가 있고 머릿돌(이수)에 새겨진 승천하지 못한 반룡은 화강암 속에서 500년 동안 기지개를 켜고 곧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이다. 용의 조각은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당대 석비의 우수성을 알게 해주는 수작이다.
비문은 우의정 겸 대제학 신용개가 지었고 우참찬 신공제가 썼으며 전액은 전라도 관찰사 이언호가 쓰고 비 뒷면의 음기는 대제학 이행이 지었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평생 업적과 자손들의 계보 및 윤효손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글들이 적혀있는데 비명에 부부의 이름을 함께 넣은 점이 특이하다.

1.방산서원 전경_촬영_백옥연 편집에디터
1.방산서원 전경_촬영_백옥연 편집에디터
2.해촌서원 강당_산수유 가지에서 열매로 맺는_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2.해촌서원 강당_산수유 가지에서 열매로 맺는_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3.사당 모덕사_윤효손,윤위,이경석 배향됨_사진촬영 백옥 편집에디터
3.사당 모덕사_윤효손,윤위,이경석 배향됨_사진촬영 백옥 편집에디터
4.추모재와 보호수 팽나무 편집에디터
4.추모재와 보호수 팽나무 편집에디터
5.사당 뒤 보호수 수령504년 팽나무_사진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5.사당 뒤 보호수 수령504년 팽나무_사진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윤문효공신도비_국가문화재보물제584호 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윤문효공신도비_국가문화재보물제584호 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1.윤문효공신도비_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1.윤문효공신도비_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2.윤문효공신도비-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2.윤문효공신도비-촬영백옥연 편집에디터
6-4.윤문효공신도비 이수 반룡조각_백옥연 편집에디터
6-4.윤문효공신도비 이수 반룡조각_백옥연 편집에디터
8.윤효손묘역 문석인_촬영백옥연 (1) 편집에디터
8.윤효손묘역 문석인_촬영백옥연 (1) 편집에디터
8.윤효손묘역 문석인_촬영백옥연 (2) 편집에디터
8.윤효손묘역 문석인_촬영백옥연 (2) 편집에디터
8-1.묘소앞 장명등을 통해서 본 윤효손묘비_촬영백옥연 (2) 편집에디터
8-1.묘소앞 장명등을 통해서 본 윤효손묘비_촬영백옥연 (2) 편집에디터
9.묘소앞 장명등을 통해서 본 윤효손묘비_촬영백옥연 (1) 편집에디터
9.묘소앞 장명등을 통해서 본 윤효손묘비_촬영백옥연 (1) 편집에디터
10.윤효손 묘소_백옥연 편집에디터
10.윤효손 묘소_백옥연 편집에디터
11.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제37호 윤문효공묘전석등_백옥연 편집에디터
11.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제37호 윤문효공묘전석등_백옥연 편집에디터
방산서원 팽나무_보호수지정_수령504년 편집에디터
방산서원 팽나무_보호수지정_수령504년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