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국의 ❲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하바롭스크를 걷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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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하바롭스크를 걷다1

시내 중심가에서 비켜난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하바롭스크의 모터바이크 클럽 ‘릐시 아무르’는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반’씨의 집이기도 하다. 그의 집 앞으로 널찍한 마당이 있고 그 마당의 끝에 두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이곳이 여행자들의 숙소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고 왼편에 정비소가 있다. 집 대문 밖에는 두 개의 간판이 있다. 이 간판을 통해 이곳이 벤츠를 전문으로 하는 정비소라는 것과 바이크 클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비소와 콘테이너 박스 사이에 화장실과 야외 샤워장이 붙어있다. 그의 집과 여행자의 숙소 사이의 중간에 자그마한 방갈로가 있고 이곳에는 간단하게 음식을 요리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재료와 기구들과 식탁이 있다. 여행자들의 대화는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릐시 아무르’에서의 첫째 날
마당의 한편에는 3대의 모터바이크가 세워져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온 바이커 부부와 나는 바이크 위의 짐을 함께 풀었다. 한 대는 클럽회장의 직원이 타고 온 바이크이다. 직원 ‘미샤’의 안내를 받아 콘테이너 박스 안으로 짐을 옮겼다. 숙소 입구와 마주보고 있는 곳에 빈공간이 있어서 이곳에 짐을 쌓아놓고 옆에 있는 침대 위에 앉았다. 소련시절부터 사용해오던 낡은 철제 침대의 스프링이 늘어나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이 소리로 인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침대를 선택했다. 일곱 개의 침대가 콘테이너 박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 짐을 놓을 만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침대 위에 작은 배낭과 옷을 벗어놓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미샤’는 바이크 정비가 필요한지 물어왔다. 나만 바이크 공기압을 체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방갈로에서 차를 마신 뒤 우리는 먹을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이십년 전의 추억을 찾아 며칠 동안 이 도시에 머무르게 될 나에게는 이 집이 도대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택가 골목을 몇 분 만에 벗어나자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왔다. 곧이어 사거리 교차로가 나오고 한편에 있는 경찰서 앞으로 지나게 되는 방향으로 들어서자 트램(경전철)이 다니는 철로가 나왔다. 철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걷자 황금색 돔의 정교회 성당이 나왔다. 이곳이 나 혼자서 바이크 클럽을 찾아갈 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약국과 병원을 지나자 걷기 시작한지 이십여 분만에 ‘삼베리’라는 이름을 가진 대형마트가 나왔다. 넘쳐나는 물건들로 커다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트에서 나는 빵과 요쿠르트와 생수와 생선 간 통조림을 구입했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넘쳐났다. 이것은 유라시아를 횡단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현지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람이 살고 모터바이크가 있는 이 도시에 바이크와 관련한 물품이나 정비소도 있다. 클럽으로 돌아와 서로 구입해온 먹거리를 식탁 위에 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다시 마쉬끼(작은벌레)가 나타났다. 홍차를 마시고 우리는 콘테이너 안으로 들어왔다. 니꼴라이는 벌레를 퇴치하는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불 안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눅눅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둘째 날 아침,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침대 위에 엎드려 매일 매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져온 메시지를 읽고 기도한 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또 다른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 나는 여행 중에 돈을 쓰고 얻게 되는 모든 영수증을 날짜 별로 모아 두었다. 영수증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순서를 기다려 충전이 필요한 기계를 방갈로에 있는 전기콘센트에 연결했다. 와이파이가 있는 곳에서 인터넷이 가능한 아이패드가 항상 먼저 충전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온 부부와 차를 마시고 빵 몇 조각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클럽 회장이 나왔다. 우리를 위해 시내 투어를 해주고 싶다고 말을 했다. 삼분의 일정도 충전 된 상태에서 아이패드를 가방에 넣고 그의 차에 올랐다. 직원 c까지 다섯 명을 태운 SUV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창가에 붙어 주의 깊게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1995년, 나는 이 도시와 처음 만났다.
1987년 나는 대학에 들어왔다. 학과 공부보다는 최루탄 가스를 더 많이 마시고 다녔다. 같은 해, 6월의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게 되었고 나도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12월에 이루어진 대선의 결과를 보고 나는 군에 입대했다. 군 생활 중이었던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루어졌고 제대 후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밖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일본을 첫 여행지로 선택하고 돌아오자마자 휴학을 하고 인도로 갔다. 1991년의 인도는 나에게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는 것이었다.
인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더욱 여행에 빠져 들었다. 자취방의 바닥 위에 내가 다녔던 곳을 점으로 표시하고 연결해보니 나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무척 자랑스러웠다. 나의 시선은 방바닥에서 지도 위로 옮겨왔고 인도로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연결되는 육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서유기와 현장법사와 혜초스님의 이야기를 따라 인도와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옛 실크로드가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지도에서는 시베리아가가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봤던 겨울, 대자연, 러시아 혁명 등의 키워드들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흥분했다. 1991년 12월에 소비에트가 해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1995년 여름방학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베리아를 취급하는 여행사를 찾기 위해 서울을 반복해서 왕래한 다음에야 비자를 얻었다. 그리고 러시아 국적의 비행기에 탑승한지 불과 2시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멀리 있었던 하바롭스크와 만났다. 속옷 차림에 가까운 편안한 복장으로 비행기 안의 화장실 부근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들과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일어나 두 손을 들고 모두가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을 따라 우중충한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와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 앞에서 입국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목적이 투어리즘이라는 나의 답변과 입국카드에 적힌 내용만으로 별 대화 없이 통과했지만 나는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다. 공항 안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덩치의 남자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여행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다음 비행기는 일주일 뒤에 있다. 어찌되었든지 일주일은 버텨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정확하게 보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와 영어로 대화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따라 공항 밖으로 나섰다.

우리 일행을 태운 SUV차량이 하바롭스크 역을 지날 때부터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5년, 하바롭스크에 들어오고 나서 삼주일이 흘렀을 때이다. 나는 ‘알료나’와 함께 하바롭스크 역에 나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그녀의 할아버지를 배웅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날 오전, 나는 신학교에 있던 러시아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알료나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냈다. 그리고 무전여행이다 시피 한 나에게 적합한 숙소를 잡아주고 매일 아침 들러 먹을 것을 나누고 틈이 날 때마다 사전을 들고 와서 서로 막히는 단어를 풀어내면서 도시를 안내해주었던 ‘알료나에게 감사하다’라는 내용이 러시아어로 쓰여 있는 편지와 초콜릿과 꽃 몇 송이를 전해 주었다. 나는 알료나의 집에서 그녀가 고려인 어머니와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말을 사용할 줄 아는 사할린 출신의 고려인인 알료나의 할아버지가 우리 사이에서 통역을 해 주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를 배웅해주기 위해 하바롭스크 역으로 나올 때쯤 우리는 무척 친해져 있었다. 나는 점심식사와 산책을 그녀에게 제의했고 우리는 아무르강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SUV차량이 20년 전에 알료나와 내가 역 앞에서 탔던 버스의 이동로를 따라 시내 중심부를 거쳐 콤소몰 광장에 도착했다. 이 광장에는 러시아 내전 기념비와 성모 승천 대성당이 있고 이곳에서 아무르 강을 내려다보거나 강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광장에서 흩어져 잠깐 동안 서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주어진 시간동안 알료나와 함께 걸었던 강변을 쭉 바라보았다.

하바롭스크에서 셋째 날 이른 아침,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온 바이커 부부가 700Km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돔 크니기'(책의 집)에서 구입해온 지도에서 바이크 클럽, “아무르의 시라소니”가 이 도시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 알료나의 집이 있는 ‘볼솨야’거리에서 불과 사백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알료나와 나는 아무르 강변을 걷다가 다시 그녀의 집까지 한참을 걸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늦게까지 그녀의 아파트 현관의 나무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타깝게 헤어졌다. 그리고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이도시를 찾게 된 것이다. 이십대 청년이 사십대 중년이 되어 그 기억의 장소에 한참을 앉아 있다 일어났다. 나는 이 날 하루를 ‘뚜르게네바’거리에 있던 지마의 집과 시 외곽으로 이사 간 신학교를 찾아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걸었던 거리와 벤치는 기억이 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주소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볼솨야’거리를 벗어나 이 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칼 마르크스’대로로 접어들면서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이 더욱 가까워졌다. 1996년, 러시아 횡단을 위해 가져온 모터바이크를 공항 창고에서 찾기 위해 지마와 걸어 다니며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던 세관 건물을 지나자 다시 1995년, 이 도시에서 첫 숙소가 되었던 ‘투어리스트’호텔이 나오고 푸시킨 동상이 길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사범대학 건물 앞은 사거리이다. 이 길 중의 하나에 철도 대학교 기숙사가 있다. 당시에는 이 기숙사의 일부를 신학교가 임대해서 사용했고 한국인 선교사를 길에서 만난 후 숙소를 이곳 신학교로 옮기면서 나는 알료나와 헤어졌었다. 그녀가 다니는 사범대학과 불과 백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나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와 나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웠는지 알게 되었다. 1996년 신학교가 시 외곽에 건물을 구입하고 옮겨가면서
그녀와의 거리는 멀어져 버렸다. 이사 후에도 신학교의 숙소를 러시아 횡단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제공 받아 한 달 이상을 체류했지만 20년이 지난 2014년, 시 외곽의 신학교도 기억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1995년 아무르 강에서 함께 수영하다가 익사할 뻔한 나를 구해준 유대인 ‘븨딸리’도 사라져버렸다. 레닌동상이 눈에 들어오는 레닌광장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시내 중심가에 들어섰다. 계속 걸었다. 아무르 강이 내려다보이는 콤소몰 광장에서 ‘영원의 불’ 광장 사이를 이어주는 ‘뚜르게네바’ 거리에 있던 ‘화가’지마’의 집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길가에 열려 있는 빨간 앵두를 보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모터바이크 축제를 마치고 하바롭스크로 되돌아와 '아무르의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가진 클럽에 짐을 풀었다. 편집에디터
모터바이크 축제를 마치고 하바롭스크로 되돌아와 '아무르의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가진 클럽에 짐을 풀었다. 편집에디터
하바롭스크의 모터바이크 클럽 멤버들과 함께 편집에디터
하바롭스크의 모터바이크 클럽 멤버들과 함께 편집에디터
콘테이너 박스가 여행자에게 제공되는 숙소이다. 춥고 삐거덕 거리는 낡은 침대임에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편집에디터
콘테이너 박스가 여행자에게 제공되는 숙소이다. 춥고 삐거덕 거리는 낡은 침대임에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편집에디터
2014년 유라시아대륙횡단에 함께하고 있는 짐 편집에디터
2014년 유라시아대륙횡단에 함께하고 있는 짐 편집에디터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하는 알료나의 할아버지를 배웅해주고 아무르 강으로 가기 위해 함께 버스를 탔던 하바롭스크 역 앞 정류장 편집에디터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하는 알료나의 할아버지를 배웅해주고 아무르 강으로 가기 위해 함께 버스를 탔던 하바롭스크 역 앞 정류장 편집에디터
칼 마르크스 도로 한쪽 끝에서 만나게 되는 콤소몰광장의 혁명내전영웅기념탑 편집에디터
칼 마르크스 도로 한쪽 끝에서 만나게 되는 콤소몰광장의 혁명내전영웅기념탑 편집에디터

'아무르의 시라소니' 바이크클럽에서 제공해준 잠자리. 대륙을 횡단하는 것이 낭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편집에디터
'아무르의 시라소니' 바이크클럽에서 제공해준 잠자리. 대륙을 횡단하는 것이 낭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