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의 민간인 면장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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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친구 아버지가 면장이었다. 그 친구는 ‘우리 아버지는 몰라도 면장을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에 빗댄 우스갯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하는 ‘면장’은 면(面)의 행정 책임자를 일컫는 면장(面長)이 아니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인 ‘면면장(免面牆)’에서 유래된 말이란 걸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그 친구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낙하산 면장’이었다. 당시에는 여당의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면장을 임명했다. 주로 자신의 선거를 도와주는 지역 유지가 임명됐다. 전두환의 5공 때까지 그 제도가 유지됐다.

순천시가 행정공무원 사무관 자리인 낙안면장을 개방형 직위로 바꿔 민간인을 선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공모로 선발돼 내년 1월부터 근무하는 신길호(51) 씨는 순천고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다 소령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연 매출 10억 원 규모의 농업회사법인 ‘포항노다지마을’ 대표와 경상북도 마을기업협회 회장을 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순천시는 그에게 낙안읍성이 있는 낙안면을 농업과 관광을 접목한 부자 동네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낙안면장 공모에는 모두 7명이 응모해 낙안면민 100명의 심사도 거쳤다.

도쿄대 법학부를 나와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메릴 린치의 미국 본사 수석 부사장을 역임한 이와쿠니 데쓴도가 일본 시마네현의 작은 도시 이즈모 시장이 된 것은 1989년이다. 그는 재선 시장을 하면서 이즈모 시를 일본에서 살기 좋은 도시 랭킹 1위로 만들었다. 이즈모 시청은 일본의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그의 저서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다’는 한때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지침서였다. 그는 1995년 1월 전남일보 초청으로 광주에 와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신길호 낙안면장이 한국의 이와쿠니 데쓴도가 될 수 있을까. 순천시의 민간인 면장 실험은 과연 성공할까. 신 씨가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포스코 자회사 기획실장을 거쳐 성공한 농업회사법인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질만하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박상수 주필 [email protected]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