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

옥순종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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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종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겸임교수 편집에디터
옥순종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겸임교수 편집에디터

용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상대적일 수 있다. 동의하는 사람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더 넓은 정의, 좁은 정의는 가능하지만 그것 자체로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랑’을 정의하라면 정열이 넘치는 젊은 20대는 남녀 간의 불타는 사랑을 떠올릴 것이고 성직자는 관용과 배려를 강조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은?’이란 질문에 ‘로마네-콩티’라고 답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와인’이란 농담 같은 답도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싼 쟁점 중 하나인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급여가 높은 직장, 연봉이 높지는 않지만 정년까지 보장해주는 평생직장, 주거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일터 등 개인의 성향과 처지에 따라 좋은 일자리 개념은 다를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급여만 가지고 획일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최근 발표된 ‘경상권과 전라권 대학 졸업자의 취업 및 일자리 특성’ 비교보고서(고용동향 브리프 11월호)는 광주지역 대학 졸업자가 광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취업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5년도 지역별 대졸 취업자들의 직장 소재지와 급여(16년 8월 기준)를 분석한 이 자료에 따르면 호남 소재 대졸 취업자들 가운데 지역에 남는 비율은 61.1%에 불과했지만 영남 소재 대졸 취업자는 77%가 고향에 남았다. 호남과 영남의 대졸자 임금수준도 수도권, 지방 가릴 것 없이 호남권 출신이 더 낮다. 저자인 최기성 연구위원은 “호남의 경우 영남과 비교해 일자리가 양적으로 부족해 대졸 취업자들이 대거 수도권 행을 선택 한다’고 진단한다.
일자리 부족은 빈곤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광주전남은 인구가 매년 줄고 있다. 광주시 인구는 14년 149만3천명으로 고점을 찍은 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반면 고령화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잘 세워 출생률을 높인다 해도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계속 유출된다면 지방의 인구 정책은 말짱 도루묵이다. 인구와 세수는 줄고 고령화는 피할 수 없다. 지방 출신은 수도권에 취업해도 높은 주거비용과 고물가로 수도권 출신에 비해 급여의 상대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고민 끝에 나온 고육책이 ‘광주형 일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좋은 일자리 감소와 나쁜 일자리 확대’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로 인한 울산 현대차 조합원의 임금하락, 일감 감소를 우려한다. 일리 있지만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연봉 3500만원에 주거가 안정되고 친구, 부모가 있는 익숙한 환경의 일터는 광주권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일 수 있다. 기존 조합원에겐 나쁜 일자리일 수 있지만 취업준비생에겐 단비일 수 있다. 물론 노조의 사회적 권리 보장에 대한 문제, 경차 제조공장의 지속성 등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는 타당하다. 하지만 이는 신뢰와 산업구조의 문제이지 일자리 의 성격은 아니다.
외환위기를 앞두고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20년 전의 비참한 기억을 소환한다. 현재 노동계의 주력부대인 40-50대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초년생으로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비극을 체험했다. 90년대에 태어난 청년들에게 광주의 일자리 부족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나야 하는 또 다른 IMF 상황일지 모른다. 눈앞에 다가온 국민소득 3만 불은 고용절벽 앞에 선 청년들에겐 먼 나라 일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하나다. 20년 후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